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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5 (01:50:50)
원본출처: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4회
British Psychedelia - 2부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 Bohemians - The Lost Generation
640wi.gifBohemia로부터 서구유럽으로 짚시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이었으며 이들은 Bohemian으로 불리웠다. 1848년, Thackeray의 소설 "Vanity Fair"를 통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뜻은 순수한 짚시라는 뜻에서 “현대사회속의 짚시”를 지칭하게 되었고 1949년 Henri Murger의 작품 “Scenes De Vie De Boheme"에서 보헤미안의 뜻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가난하고 정열적인 예술가들을 일컬었다. 이 단어는 1910년 들어서면서 가난하며 고집이 세고 행실이 좋지 못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을 지칭하는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후 전위예술가도 그 범주안에 넣어 부르곤 했다. 유럽의 보헤미안들은 주로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생활했다.
1890년, 미국 뉴욕의 보헤미안들의 경우는 유럽의 보헤미안들이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처럼 생활비가 적게들었던 Greenwich Village에 모여 살았다. 그러나 Greenwich Village에서 생활했던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1차 세계대전후 그 곳을 떠났다.
1926년, Ernest Hemingway는 소설 “The Sun Also Rises"에서 1차 세계대전동안 젊은 성인으로 자라난,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던 세대들을 The Lost Generation으로 표현했다. 그후 Lost Generation은 Beat Generation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Hep, Hip, Hipster, Beat 그리고 Hippie
1900년초 Jazz Musicans들 사이에서 hep이라는 단어의 뜻은 “세련된”이라는 의미였단. 그러난 1931년372.jpg에 들어서면서 이단어는 종종 hip으로 발음되면서 결국 1945년경에 hip으로 정착되었고 당시 hipster라는 뜻은 미국 서부지역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던 Progressive Jazz를 행하는 뮤지션들을 가르켰다.
1957년 새로운 타입의 젊은이들을 가르키는 말로 대문자 B로 시작되는 Beat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단어는 멋진 젊은 대학생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전후세대, 원자폭탄 세대, 그리고 부와 명예를 등지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주장했던 젊은이들을 총칭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 서서히 불붙기 시작하여 1960년대말에 대폭발을 일으키게되는 사이키델릭 문화는 Beats작가들과 시인들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Jack Kerouac(1922~1969), Allen Ginsberg(1926~1997) 그리고 Gregory Corso(1930~2001)등이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이라할 수 있는 Beats의 대표적인 문학가들이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Beatniks라고 불리웠으며, 이 단어는 1958년 4월 2일 샌프란시스코의 코로니클지 Herb Caen의 시사컬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1957년 10월에 발사되었던 인류최초의 러시아 인공위성 “Spuntnik"과 최고의 행복감을 뜻하는 ”Beatific"으로부터 유래되었다. Allen Ginsberg는 1955년 자신의 시 “Howl"에서, Jack Kerouac은 1957년 소설 ”On The Road"에서 Beat에 대한 언급을 시작했다.
allen_ginsberg.jpgBeats작가들은 인간 내면의 평화는 사회의 인위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들을 놓고 토론하거나 관심을 갖는 청중들에게 시를 낭송하거나,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등 대중들과 잦은 접촉을 가졌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때는 줄곧 Cool Jazz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Cool Jazz가 분위기를 맞추는데 가장 적절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Cool Jazz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그들의 Beat 문화작품에 가장 걸맞는 배경음악이었다.
같은해 Beats계는 엄청나게 불어나는 수요로 Hipster들의 지지를 받게되었고, 이ㅣ러한 Hipster들은 처음으로 Hippies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 1960년대초, 모든 사람들은 사회와 결별한 문제아들을 히피라고 불렀다. 생활이 자유분방하고, 누더기 옷이나 낡은 청바지를 입고 샌달을 신고 다니며 간이 침랑속에서 잠을 자는 이른바 1960년대 길거리의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당시 기성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히피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과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성세대들은 Hippie들의 온상지로 불리웠던 Hashbury지역에서 벗어나려했는데 이 지역는 샌프란시스코의 두 거리 이름들 “Haight"와 ”Ashbury"를 합성한 구역이름이다. 물론 이 지역의 이름으로부터 은어 Hash와 Hashish가 파생되었다.
사랑과 평화를 주장했던 히피들의 추종세력들은 히피를 가르켜 ‘Flower Children'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히피를 가르켜 Beatniks라고 불렀다.
1950년대중반까지 Beats의 삼대 거목들인 Jack Kerouac, Allen Ginsberg 그리고 Gregory Corso의 활동무대는 뉴욕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반,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게 된다. 이때 샌프란시스코에는 Kenneth Rexroth(1905~1982), Lowrence Ferlinghetti(1919~), 그리고 Gary Snyder(1930~)등이 Beat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라나 그들의 Beat운동은 문학계로부터 지탄을 받았으며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고 폭력사태로 무너지게 된다. 이때 Allen Ginsberg만이 뉴욕으로 되돌아왔으며 나머지 작가들은 대중들과의 만남과 공연을 중지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남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Beat운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959년에 종식되었다. 그러나 Beat운동의 사상은 1960년대 히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히피들의 Flower Power는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젊은이들의 음악, 패션, 언어 그리고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이러한 영향은 Psychedelic Music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영국런던의 Notting Hill
미국의 Psychedelic Music이 마약 병폐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베트남 전쟁의 반대 반전사상을 이슈로 내걸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술적, 정신적 자유를 내세웠고 메세지보다는 사운드 전달을 중요시 여겼던 미국의 경우 대규모 집회 대형 야외 콘서트들(Woodstock, Monterey)을 통하여 넓게0p1.jpg 확산된 반면, 영국의 경우는 소규모의 클럽, 선술집등의 조그만 공간에서 서서히 확산되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서부지역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정착되었고, 동부지역에서는 규모면에서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작았지만 뉴욕 East Village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영국은 런던(지난호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Carnaby Street)특히, Notting Hill 지역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지역적으로 Notting Hill은 집세가 저렴하여 가난한 뮤지션들이 생활하기에는 가장 좋은 보금자리였다. 또한 Notting Hill은 영국 흑인음악의 메카였으며 병폐문화의 지하 거래처였다.
International Times
미국 뉴욕에서 발간되는 Village Voice나 East Village Other가 당시 미국의 사이키델릭과 언더그라운드 인쇄 문화의 산실이었으면 영국의 경우는 당연히 International Times(IT)가 그 역할을 해내었다. IT는 영국인 Mile Hopkins와 John Hopkins가 미국인 출판인 Jim Hayens와 함께 설립한 언더그라운드 신문이다. Jim Hayens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서점과 극장 그리고 런던에 예술연구소를 세운바있는 기업가였다. Miles형제는 그에게 Indica서점의 지하를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배려를 해주었고 세명의 출판인들은 동업으로 영국 언더그라운드 세계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게될 전문지를 구상하게 된다. 그들은 새롭게 발간될 언더그라운드 신문의 이름을 찾다가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문장 “What Should We Call It?"의 인칭 대명사 ”IT"를 신문의 이름으로 채택했다.

Psychedelic Music의 지침서
110_L.jpg미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와 구별짓기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로 분류하는데는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른다. 1960년대말경에 활동했던 각 장르의 연주자들 대부분이 한번쯤은 Psychedelic Music에 접근하는 시도를 행했기 때문이다. 1984년 Vernon Joynson의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Babylon Books)이라는 조그만 책자가 영국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자는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을 구분하여 그룹별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사이키델릭 지침서였는데, 어느정도 국가별, 지역별 분류는 잘 이루어져 있으나 서문에서 저자가 못내 아쉬워했던 것처럼 자료의 궁핍은 이 지침서의 가치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특히, 영국파트에서는 그룹선정과 해설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 Vernon Joynson은 첫 번째 책자에 내용을 보강시킨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line Productons)이라는 책자를 내놓았으나 역시 자료적인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rline Productons)

British ART ROCK Groups Guide(Psychedelic Ear : 1967~1970)
지면관계상 Super Group과 국내에 잘 알려지 있는 그룹들 그리고 AR에서 자주 다루었던 그룹들은 부득이 본란에서 제외 되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H-Z
Herbal Mixture
Groundhogs의 멤버들이었던 Tony Mchphee와 Peter Cruickshank가 재적했었던 그룹이다. 이들은 1966년 7월 단 두장의 싱글들을 발표하고 해산되었다. Manfredd Mann의 곡 Machine이 담겨있는 두 번째 싱글은 우수한 사이키델릭 넘버로 기록되었다.
Tony T.S. McPhee (guitar, vocals) 
Pete Cruickshank (bass)
Mike Meekham (drums)


The Human Beast
Gillies Buchan을 중심으로 결성된 3인조 Heavy Psychedelic Band로 이들은 Decca로부터 Volume One이라는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Gillies Buchan (guitar, vocals)
Edward Jones (bass, vocals)
John Romsey (drums)
Album :
Volume One (1970)

ICE
1970년대중반에서 활약했던 Passport레코드사 소속의 동명그룹과 별개의 그룹, 1967년에 데뷔한 5인조 Psychedelic 그룹 ICE는 Decca레코드사가 크게 기대했던 그룹이었지만 레코드사측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이들의 데뷔 싱글은 강렬한 오르간연주가 돋보이며 그룹명의 싱글은 Guitar Work이 매우 뛰어나 보인다.
Kevin Martin (saxophone, vocals, synthesizers), 
Justin Broadrick (guitar)
Dave Cochrane (bass)
John Jobaggy (drums)
Lou Ciccotelli (drums)
 

Man
마치 Pink Floyd처럼 Psychedelic시대를 거쳤던 Progressive Rock그룹이다. 영국 웨일즈 남동부 항구도시 Swansea출신의 The Bystanders가 이들의 전신그룹이다. 이들의 초창기 사운드는 마치 미국의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를 연상시킨다.
Micky Jones (lead Guitar, vocals)
Clive John (keyboards, vocals)
Roger Leonnard (Guitar, vocals)
Jeff Jones (drums, percussions)
Ray Williams (drums, vocals)

 
Tangerine Peel
싱어송 라이터인 Mike Chapman이 이끌었던 Nicky Chinn과 공동으로 출범시킨 듀오그룹 Tangerine Peel은 1969년 2월 MGM사로부터 데뷔싱글이자 대표작 “Never Say Never Again/Thousand Miles Away"로 데뷔했다. 이들은 2년동안 5매의 싱글과 한매의 앨범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들이 Psychedelic 범주에 놓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Album :
Soft Delights (1970)

Toby Twirl
본래 Shades Of Blue이름으로 1965년부터 1966년동안 3매의 싱글을 남겼던 5인조 그룹명을 바꾸면서 Decca레코드와 계약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또다른 3매의 싱글을 남기고 해산되었다.
David Holland (vocals)
John Reed (drums)
Barry Sewell (organ)
Stuart Sommerville (bass)
Nick Thornburn (lead guitar)



아티스트 소개부분은 싱글앨범만 발표한 그룹외 다른그룹들은  앨범 자켓이미지와 함께 ARTIST, REVIEW에 링크하였습니다.
Art Rock Magazine No. 8 (1995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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