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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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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Mauro Pelosi |
ALBUM TITLE: | La stagione per morire |
YEAR: | 1972 |
COUNTRY: | Italy |
GENRE: | Rock Progressivo Italiano |
LABEL: | Polydor |
TRACKS: | Side A 1.Paura 2.Cosa Aspetti Ad Andar Via 3.Vent'anni Di Galera 4.Vendero 5.La Stagione Per Morire Side B 1.E Dire Cha A Maggio 2.Che Poi Non E Vero 3.Caro Amico 4.Suicidio |
MUSICIANS: | - Mauro Pelosi / vocals - Danny B. Besquet / bass - Ronnie Jackson / 12 string guitar, acoustic guitar - Mike Logan / mellotron, moog - Gianni Leone / mellotron, moog - Dave Baker / drums, percussion - Osvaldo Colombino / drums, percussion - Gianni Stinga / drums, percussion - Flavio / piano, organ |
원본출처: | http://koreanrock.com/wiki.pl?MauroPelosi |
이탈리아의 싱어 송 라이터인 마우로 펠로지(Mauro Pelosi)는 이탈리아의 폴리도어(Polydor) 레이블을 통해 모두 4장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루치오 바띠스띠(Lucio Battisti), 안젤로 브란두와르디(Angelo Branduaridi), 움베르또 발사모(Umberto Balsamo)등의 내노라하는 이탈리아의 깐또또레등의 정력적인 활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우로 펠로지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가 발표한 4장의 음반 중에서도 데뷔작인 「La Stagione Per Morire」와 두 번째 앨범 「Al Mercato Degli Uomini Piccoli」는 마우로 펠로시의 어둡고 음울한 음악이 충격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발레또 디 브론조(Balletto Di Bronzo)의 두 번째 앨범 「YS」에서 현란한 키보드 플레이를 선보였던 쟌니 레오네(Gianni Leone)가 게스트 뮤지션으로도 참가한 마우로 펠로시의 데뷔 앨범은 허무와 패배에 지쳐버린 고독한 절규를 담고 있다.
- Song Description
- 감상 포인트 및 평가
본작을 지배하고 있는 짙은 절망은 앨범 내내 훌쩍이고 있는 마우로 펠로시의 감정 과잉에 가까운 보컬을 전혀 무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슬프다기보다는 공포스럽고,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매혹적이라 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는 앨범. (조영래, 1999.8, [아일랜드]) ★★★★★
이응민 {Whistler@hitel.net}
옛날엔 제가 이런 생각을 했군요....쩝...
"절망의 대지 위에 핀 희망노래"
MAURO PELOSI - 죽음을 위한 계절(La Stagione per Morire)
숨쉬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 속에서 항상 목마른 사람, 희망의 등불 같은 붉은 태양을 향해 그 목마름을 인내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지 만 스러져가는 자신의 의지를 힘겹게 추슬러야만 하던 사람, "삶은 힘 겨운 여행이지만 그 여행으로 얻게 되는 기쁨 또한 큰 것"이라고 스스 로를 위안하던 사람, 항상 웃음으로 사람들의 지친몸과 마음을 따스하 게 어루만져 주려 노력하던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진실되고 소박한 영 혼을 가진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절망의 연대에 쓸쓸히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초췌하기만 하다.
이 시대에 장밋빛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은 진실한가. 아직까지도 희 망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함없이 제자리에 서 숨쉬고 있고 자연의 법칙대로 자연스럽게 흘러만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높아만가는 자본주의의 휘황찬란한 물질문명의 높다란 벽 앞에 왜소해져만가는 사람들이 있고, 썩어 가는 쾌락의 찌꺼기 더미 아래에 파묻혀가는 연약한 사람들의 가쁜 호흡이 있다. 거리 거리를 가득 메우 던 사람들의 물결과 뜨거운 해방의 함성은 이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빛바랜 사진처럼 사라져 버린 듯 하다. 활화산의 용암처럼 솟구치던 많 은 사람들의 희망의 찬 목소리로 가득 찼던 그날들, 치열한 삶의 흔적 들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날들은 이제 연예인들의 시덥지않 은 사생활, 스포츠의 광적인 열기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일하는 사람 들의 힘겨운 땀방울과 고된 노동의 눈물도 가진 자들의 화려함 앞에서 열등감과 패배감만을 맛볼 뿐이다. 이제 그들은 가진 자의 대열에 합류 하고 싶은 헛된 욕망 앞에서 꺽인 무릎을 일으켜 세울 힘조차 없는 듯 절망하고 있다. Mauro Pelosi! 그의 노래에 가득 가득 녹아 있는 애처 로운 절망과 좌절, 죽음의 유혹을 그가 황량한 사막같이 메마른 목소리 로 토해 낼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절망감을 맛본다.
"...어느 순간인가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 모두 가 패배자이고 실천력이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며 꿈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 의 슬픈 절망의 시작점을 눈치챌 수 있게 해준다. 꺾여 버린 희망을 보 듬기엔 너무 지쳐 버린 그의 영혼,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에 대한 두려 움 앞에 무너져 버린 그의 영혼은 죽음과 절망을 메마른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고 나직하게 뱉어 낼 뿐이다. 그의 쓸쓸하고 허무한 냉소에 드리 워진 짙은 패배주의의 그늘과 멜로트론의 어둡고 차가운 음색은 그의 절망에 더욱 진한 빛깔을 입혀 주면서 이 절망과 상실의 시대를 더욱 싸 늘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듯 하다.
부조리하지만 사랑했던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감내해야할 'Paura (두려움,고통)'에 눈물 흘리고, 'Cosa aspetti ad andar via(길을 가며 기다리는 것)'에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 없는 현실에 대해 차가운 냉 소와 조롱을 뱉어낸다. 처절하게 절규하는 'Vent'anni di galera(20년 간의 감옥생활)'와 달콤한 죽음의 유혹 'La stagione per morire(죽음 을 위한 계절)'를 지나면 그의 목소리는 더욱 메마르고 앙상한 겨울의 나뭇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E dire che a Maggio(그리고 5월을 얘기한 다.)'와 'Che poi non vero'에서의 절망은 회색 도시의 어둠 밑으로 서서히 잦아들고,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음으로 다가오는 'Suicidio(자 살)'를 뒤로하며 그가 노래하는 절망의 독백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절망의 나락 속으로 추락하는 젊은 영혼에게 헌사되는 한 조각의 빛을 보려 한다. 그의 노래를 둘러 싸고 있는 절망과 좌절 아래에 숨죽이고 있는 나약한 희망의 꿈틀거림 을 느끼며, 그가 노래하는 현실도피와 체념의 피난처인 죽음의 그늘에 서 희망찬 우리의 미래를 읽는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 우리들이 꿈꿔 왔던 세상이 아직 우리 앞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지만, 그가 노래 하는 창백한 절망과 잿빛 죽음의 유혹은 그의 노래를 통해 영영 다가오 지 않을 듯한 희망의 도래를 조심스럽게 예언하는 듯하다. 절망과 슬픔 이 아득히 깊고 짙은 만큼 우리의 희망의 기대치도 커져 갈 수 밖에 없 음을 알기에 그의 노래에서 희망을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희망을 꿈꾸고 노래해야 한다. 이 '절망의 대지'
위에 화사하게 피어난 '희망노래'를 부르며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제 부터라도 Mauro Pelosi의 노래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 시대를 위한 '진혼곡'이 아닌,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일어나는 '희망의 노래'로 불리 어져야 한다. Mauro Pelosi여! 이제 희망과 기쁨을 노래할 때가 아닌가?
Whistler...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나만 변했나봐...흑~
{이 글은 하이텔 아일랜드 음악 이야기 게시판(sg150 11 3)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정철zepelin@hanmir.com에게 요청하세요.}
정철 http://my.netian.com/~jongdae/home/data/mp3/mauro.htm 여기서 퍼왔습니다.
현존해온 모든 대중음악사를 통털어 마우로 펠로시의 본작만큼 염세적인 음악은 없다. 그것은 분명 쇼펜하우어나 쉬타르너에 필적할 만한 페시미즘의 영적 발산이다. 그는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매된지 20년이 지난 본작은 자멸과 퇴폐, 허무와 암흑이라는 암울한 영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현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이탈리언 깐따또레 앨범으로 부각되며 연금술적인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두번째 앨범인 {Al Mercato Degli Uomini Piccili}가 극단을 초월한 무감의 경지를 표출했다면, 그보다 1년 앞선 데뷔작 {La Stagione Per Morire}는 공포 배반 자살로 연계되는 극단의 최상을 여과없이 쏟아낸다.
첫곡인 와 네번째로 수록된 , 그리고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비관적인 목소리와 절규가 극에 달하면 모든 두려운 것들과 절망적인 것들에 대한 공포 역시 극을 치닫는다. 그러한 내면적인 흐름이 의 체념을 거쳐 타이틀 곡인 에 이를때, 그는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앨범의 마지막에서 자살 (Suicidio)한다. 아홉곡의 질식할 것 같이 전개되는 영적 절규들에게 음악적인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것은 로니 잭슨 (Ronnie Jackson;Guitar), 레오 네로(Leo Mero) 등의 탁월한 연주력이다. 특히 멜로트론과 무그를 연주하고 있는 레오 네로(=Gianni Leone;본명)는 일 발레또 디 브론조(Il Balletto Di Bronzo)의 건반주자로 잘 알려진 이탈리언 록계의 귀재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염세주의와 빛이 제거된듯한 사운드는 음악의 참다운 가치를 위협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우로 펠로시의 음악 속에는 표현을 넘어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거짓없는 영감의 받아쓰기이다. 그것이 본작이 지니는 중요한 예술적 위업인 것이다.
98.4.12 bongsan
2001/11/15
강정훈 {BUDGE@hitel.net} 고등학교때까진 시완레코드가 압구정동, 부루의뜨락 강남점이 있어서, 자율학습 몰래 빠져 나와 앨범을 사러가곤 했다.
이 앨범을 산건 따뜻한 봄 이었던것 같다. MAUTO PELOSI의 1집인 LA STAGIONE PER MORIRE는 그의 2집과 더불어 명반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내게는 2집보단 1집이 더 맘에 든다.
처음들은 MAURO의곡이 VENT'ANNI DI GALERA이기 때문인것 같고, 멜론트론과 무그를 GIANNI LEONE(IL BALLETTO DI BRONZO)가 담당한 이유도 크다. 처음 이 앨범을 시완에서 봤을땐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집에 그냥 돌아왔다. 일본 라이센스 였는데 23000원이었다.
학생인 내겐 앨범을 살때마다 돈이 여유가 있는게 아니라 항상 앨범을 살때면 고민을 하곤 했다. 뭘 먼저 사야할까? 지금 사지 않으면 나중에 사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 여러분도 잘 아시 겠지만 그런 경우가 엄청많음.. 한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집에 돌아와서는 드라이버에 머리가 박혀있는 MAURO의 모습이 너무도 아르거려 그의 노래가 담겨있는 테이프르 듣고듣고 또 듣고.. 결국은 착한 우리누나를 포섭해 돈을 얻자마자 또 자율학습 을 도망쳐서 손에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 기쁨.. 음악은 감정이 듬뿍들어간 깐따또레였다. 혹 간단하게 들릴수 있는 음악 이지만 그속에 들어있는 강한 염세를 느낀다면 그다지 어설픈 음악은 분명 아니다. 진짜 대단한 앨범이다. 강렬하진 않지만 음악이란 기교로만 하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있다. MAURO는 음악적 철학가인 것이다. 얼마전 이 앨범이 국내에 나온걸로 아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은것 같다. 클라투5집은 엄청 팔리던데..
너무 아쉽다. 라이센스를 너무 남발(?) 하는 바람에..이런 앨범이 객관적이 평가를 못 받는것 같다. 5,6년전에만 해도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3-4만원을주고도 사는 앨범이있는데 , 지금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아도 1/3 값인데도..
어쨌든, 내가 가졌던 감동을 다른 사람도 많이 가졌음...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진 분도 많겠지만..
{이 글은 하이텔 언더그라운드 동호회 아트락 게시판(under 14)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정철zepelin@hanmir.com에게 요청하세요.}
정철 http://myhome.shinbiro.com/~idealism/discreview/Mauro_1.htm 여기서 퍼온 글입니다. 굳이 까뮈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죽음은 경험되어 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살아있는 자들에게 늘 경외의 대상이거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인간은 과연 죽음으로 완성되는가?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마우로 펠로시의 네 번째 작품 La Stagione Per Morire는 바로 그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79년 공개된 이후 꾸준히 청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본작에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아트랙 밴드였던 Il Balletto Di Bronzo의 키보디스트 Leo Nero의 멜로트론의 한시의 오차 없이 치열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태리 아트락/깐또우또레의 많은 펜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마우로 펠로시는 71년 폴리돌(Polydor)의 이태리지부에서 픽업되어, 72년 자신의 이름으로 타이틀을 발매했고, 73년 두 번째 작품 Al Mercato Degli Uomini Piccoli(이작품 역시 시완에서 CD化되어 발매되어있다)이후 4년의 공백이 있었으며, 77년 다시금 자신의 이름으로 3번째 앨범을 만들었으며, 그리고 79년 바로 본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앨범 첫 곡 장식하는 Paura를 들어보면 마우로 펠로시의 고통의 목소리가 얼마나 절실하고 진지한지 느껴진다. '빠우라, 빠우라, 빠우라' 앨범을 전부다 다 듣고도 귓속에서, 혹은 입안에서 맴도는 그의 목소리.... Vent Anni Di Galera는 앨범의 게스트로 참여하는 지오니 레오네 즉 레오 네로의 전율적인 멜로트론 솜씨가 화려하게 뿜어져 나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음울하게 뿜어져 나온다. 무디 블루스나 킹 크림슨을 말하지 않더라도 멜로트론은 70년대 가장 기계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Vendero같은 곡을 들어보면 어쩐지 그가 이미 죽어버린 닉 드레이크가 생각나게 한다. {단순함의 진지한 전달} 역설적이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음악의 언어가 아닐까? 본작의 타이틀곡인 죽음에 이르는 계절 역시 앞의 곡들의 암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다소의 경쾌함이 낯선 E Dire Che A Maggic는 이태리의 많은 아트락밴드의 사운드의 표준에 근접하고있지만, 그의 경쾌함은 반전을 꿈꾸기보다는 더 깊은 내면의 얘기를 위한 도약 같다. Caro Amico는 현악파트가 추가된 그러나 지극히 간결한 색채를 보여주고 있으며, 마지막곡 Suicidio(자살)은 서두에 꺼낸 '죽음이 과연 인간의 완성인가' 라는 질문에 고약한 대답처럼 들린다. 마우로 펠로시는 흥미 있는 인물이며, 그의 행적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이 그러하며, 또한 그가 다루었던 음악적 주제 또한 독특하고 신비롭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색채는 의외로 대가들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태리의 아트락에 선구자적인 존재였던 루치오 바스띠스(Locio Battisti)이래 줄 곧 실험되었던 악기들의 조화로움이 그러하고, 아니 그 {압축} 또한 놀랍다. 그의 멜로디는 이태리의 전통적인 깐또우또레/칸초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영/미의 음악들의 일반적인 패턴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이태리 음악은 색다른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에는 영/미의 영향권 안에 있더라도 그러한 시도 자체들은 우리에게 상당히 모범적이다. 록음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뒤로하고 몸으로 부딪쳤던 이태리의 수많은 아트락 그룹들은 아마도 그래서 아직도 우리들의 많은 매니아들의 어필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태리음악을 많이 듣지 않고 있지만, 몇 그룹의 추억에 대해서는 한 두 마디 적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써본다) ::: 2001/11/15
제 목:[MAURO PELOSI] LA STAGIONE PER MORIRE 관련자료:없음 [2141] 보낸이:강정훈 (BUDGE ) 1996-04-11 10:43고등학교때까진 시완레코드가 압구정동, 부루의뜨락 강남점이 있어서, 자율학습 몰래 빠져 나와 앨범을 사러가곤 했다.
이 앨범을 산건 따뜻한 봄 이었던것 같다. MAUTO PELOSI의 1집인 LA STAGIONE PER MORIRE는 그의 2집과 더불어 명반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내게는 2집보단 1집이 더 맘에 든다.
처음들은 MAURO의곡이 VENT'ANNI DI GALERA이기 때문인것 같고, 멜론트론과 무그를 GIANNI LEONE(IL BALLETTO DI BRONZO)가 담당한 이유도 크다. 처음 이 앨범을 시완에서 봤을땐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집에 그냥 돌아왔다. 일본 라이센스 였는데 23000원이었다.
학생인 내겐 앨범을 살때마다 돈이 여유가 있는게 아니라 항상 앨범을 살때면 고민을 하곤 했다. 뭘 먼저 사야할까? 지금 사지 않으면 나중에 사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 여러분도 잘 아시 겠지만 그런 경우가 엄청많음.. 한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집에 돌아와서는 드라이버에 머리가 박혀있는 MAURO의 모습이 너무도 아르거려 그의 노래가 담겨있는 테이프르 듣고듣고 또 듣고.. 결국은 착한 우리누나를 포섭해 돈을 얻자마자 또 자율학습 을 도망쳐서 손에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 기쁨.. 음악은 감정이 듬뿍들어간 깐따또레였다. 혹 간단하게 들릴수 있는 음악 이지만 그속에 들어있는 강한 염세를 느낀다면 그다지 어설픈 음악은 분명 아니다. 진짜 대단한 앨범이다. 강렬하진 않지만 음악이란 기교로만 하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있다. MAURO는 음악적 철학가인 것이다. 얼마전 이 앨범이 국내에 나온걸로 아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치 않은것 같다. 클라투5집은 엄청 팔리던데..
너무 아쉽다. 라이센스를 너무 남발(?) 하는 바람에..이런 앨범이 객관적이 평가를 못 받는것 같다. 5,6년전에만 해도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3-4만원을주고도 사는 앨범이있는데 , 지금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아도 1/3 값인데도..
어쨌든, 내가 가졌던 감동을 다른 사람도 많이 가졌음...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진 분도 많겠지만..
깐따우또레 MAURO PELOSI - La Stagione Per Morire 자-먼저 레코드의 겉면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그곳엔 본 전이 생각날 정도로 너무도 단순한 일러스트가 있다. 파랑 색과 노랑색 사이에 떡 하니 놓인 긴 머리 총각 마우로 펠 로시-그러나 그 머리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발견될때면 이전의 그 단순함은 이내 섬뜩함으로 돌변하여 우리의 시야를 자극한다. 현실과 이성사이에서 고뇌하는 그 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는 자신과 동시대 에 살던, 확실한 자아를 상실한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 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표지의 하단부에는 '죽 음에 이르는 계절' 이라는 이태리 원문이 장식되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그가 이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죽음에 이른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자뭇 철학적 명 제처럼 받아들여 지기까지 하는 이것을 규명하기 전, 그의 의도를 더욱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서 그가 본 작품을 발표 한 직후에 행했던 한 음악 잡지와의 인터뷰 기사중 그 일부 를 발췌해 보았다. "저는 한때 허위정치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너무 속였어요 어느 순간인가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이며, 그 모두가 패배자이고 실천력이 없는 비현실 적인 것이며 꿈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저에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 듯 공부하기 싫어하는 산만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교와 시험에 진저리를 쳤지-S실제로 지금도 저는 학교의 제도 교육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PoP음악을 좋아하는데, Pink Floyd, Deep Purple,그리고 포크 뮤지션인 Joan Baez, DoneVan등을 좋아합니다.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로는 음악이 주는 느낌과 다양함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곳에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의 꿈과 현재의 나는 너무도 떨어져 있음을 느낌니다. 사회적 규범 아래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새 롭고 진지한 방식으로, 진짜 존재로 나아가는 단계를 노래 하려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처한 한 젊은이로서의 마우로 펠로 시에게 본 작품이 차지하는 의의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음악 을 통해서, 한 인간에게 부여되어졌고 주어졌던 사회에 대 한 죽음, 근원적 생명에 대한 인식을 떠나버린 논리적, 정서 적인 것들의 죽음, 즉 기성의 모든 과거적 현실들에 의해 그 것이 단순히 참인 나인줄만 알았던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볼 때 본 작품이 의미하는 죽음은 생물 학적 죽음이 아닌, 영흔의 자기 발견을 의미하며, 잃어버렸 던 자유를 보상받고자 하는 개인의 소망으로 해석되어져야 옳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자신의 소망을 본 작품안에서는 비극적 구조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것도 먼 과거에 나르키수스가 죽어갔던 연못을 교묘한 트릭으로 옮 겨놓음으로써.... 그의 정신상태를 대변하듯 불안감을 동반한 12현 기타의 아르페지오와 함께 그가 미리 준비해 놓은 죽음의 연못을 향한 첫 걸음은 시작된다. "바닥에 쓰러질까하는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 당신의 허영과 망상들을 견디어 내고 현실속에 있다. 나를 죽일 정 도로 당신은 항상 내게 얼마나 많은 말들과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 마침내 모든것은 충분하니까 당신곁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 첫 곡인 Paura 에서 그는 이전까지의 자신의 모습과 앞 으로 이루고자 하는 모습 사이에 놓여져 있다. '당신'과 나란 바로 이런곳에 위치해 있는 자아의 이원론적 갈등에 대한 상징이다. 본 작품 전체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곡이 다.
두번째 곡인 Cosa Aspetti Ad Andar Via (무엇을 기대 하고 떠나려 하는가)는 기타의 울림위로 애수에 찬 바이올 린 소리가 돋보이는 곡으로 현실에 대한 그의 조소가 섞여 있다.
세번째 곡은 'Vent' anni Di Galera (20년간의 감옥생 활)이다. 여기에서 감옥이란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징으로 풀이된다, 피아노 연주위로 황 량한 마우로 펠로시의 음색이 놓여지고 이내 잔니 레오네의 장대한 멜로트론이 가세한다. 구성상의 단순함에 비해 이상 하리만치 필자로 하여금 애착을 갖게하는 곡이기도 하다.
"당신은 매우 아름다웠고 매우 특별했다.. 정말로 이상하다. 시간과 함께 당신은 변해갔고 나를 즐겁게 해주고는 도망쳤 다.. 당신은 나의 인생을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벌을 주 어야 할 것같다.. 나의 인생에서 빛과 바람과 색깔을 훔쳐 갔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당신은 행복한지 부자인지, 그 래서 만족하고 있는지를 알고싶다.." 이상을 통한 의지가 들어나 있는 소곡 'Vender'o', (팔것이 다)가 지나고 나면 본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Suicidio'와 함께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곡 '로 La Stagione Per Morire(죽음에 이르는 계절)이 흘러 나온다. "소멸에 이르 는 계절은 봄이다. 당신은 1년동안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 다려 왔다. 네 송이의 꽃을 위해 가치있는 것만을 믿는다. 매일 일어나서 거울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그 모습속에서 당신은 혼자임을 발견한다. 속이 텅 비어있는 꽃들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도취적인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기와의 대화를 이루고 있고 타이틀 곡답게 가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다 시한번 잔니 레오네의 매력적인 멜로트론 음향이 울려퍼지 고 나면 A면은 끝을 맺는다. B면의 첫 곡은 'E Dire Che A Maggio (5월의 상상)이 다. 본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희망이 충만한 분위기를 자아 내는 곡인데, 소박한 봄날의 아지랭이를 보는듯한 훌륫음을 시작으로 많은 현악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밝은 조곡에 비 해 가사는 현실체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채롭다.
두번째 곡 'Che Poi Non E Vero (거짓인가 진실인개' 에 서 그의 정신은 극도로 분열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종일관 횡설수설하며 끝을 맺은 이 곡은 비극의 결말을 짐작케 한다. "나는 길에서 지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을 본 다. 그 사람들은 매일 나를 억압했고 무력하게 만든다.. 최 소한 지금은 주머니안에 어떤것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 실이 아니다..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여인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를 소유하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 무것도 아닐 수 있다. 나는 그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사 실이 아니다." 세번째 곡 Care Amico (친애하는 친구여)는 이전과는 달리 하프시코드로부터 진행된다, 그리고 가늘게 신음하듯 현악기가 울려퍼지고...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듯 과거에 중요시했고 사랑했던 존재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에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위 어져 버린 현실에 대한 인식은 그것들에게 작별을 고하게 한다. 본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Suicidio (자살)이다. 구태의연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국내의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곡이기도 하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분위기의 기타음으로 시작해서 종국에 이르기까 지 아방가르드하고 몽환적인 음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이것은 Il Balletto Di Bronze의 Y.S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잔니 레오네가 본작에서 차지 하고 있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게한다. "내 앞에서 춤추고 있는 많은 이상한 것들을 본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 었다. 하루가 지나자 많은 것들이 바뀌어 버렸다. 정말 그것 들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믿고있다. 어떠한 자극도 아니 며 사랑이 아니며 술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여러 색깔을 띠우고 있는 강렬한 빛들... 내 마음속에서 얼어붙는 소리들... 읽기를 포기해버린 추리물... 내 마음속에서 시들 어버린 꽃들...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길게 놓인 길... 출구 도 없고 문도 없는 나의 방... 나는 떠나버렸다. 나의 머리가 터질것만 같다." 그의 독백은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순간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 앞에는 물음이 던져져 있디. 그의 '자살이 의미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이 비극을 간접체험한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존재한다. 각자의 내적인 감흥에 의해서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이미지로 변화해서 말이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주어진 것을 자기 자신안에서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러한 자세가 배제되어서는 올바른 비극의 감상은 이루어질 수 없을 뿐더 러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른 비극이다, 글 : 조남걸 (A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