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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Osan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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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Italy |
GENRE: | Rock Progressivo Italiano |
ALBUM: | 1971 L'uomo 1972 Milano Calibro 9 1972 Palepoli 1974 Landscape Of Life 1978 Suddance 2001 Taka Boom 2009 Osanna & David Jacson - Prog Family |
MEMBER: | Lino Vairetti (vocals, acoustic guitar, keyboards) Elio D'Anna (flute, sax) Danilo Rustici (guitar, organ, vocals) Lello Brandi (bass) Massimo Guarino (drums, percussion) |
원본출처: |
Osanna
Latte E Miele, New Trolls등과 함께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이태리 Progressive Rock 그룹 Osanna에 대한 이야기는 1984년에 발간된 Undergraound Papyrus Zero에서 이미 소개된바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좀더 자세히 Osanna라는 그룹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Pink Floyd의 무관객 Concert가 나폴리의 산마루에 위치한 Pompeii에서 녹화(Live At Pompeii)되고 있을 무렵, 나폴리 다섯명의 뮤지션들이 특이한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그들의 초창기 무대는 한마디로 연극 그자채였으며 그드르이 출연은 함마디로 충격이었다.
나폴리의 펄럭거리는 하얀 세탁물위에 찬란한 태양이 반사되고, 그 아래에는 가지런하게 돌이 깔린 좁은 길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곳이다. 고대 로마황제와 수많은 예술가들을 탄복하게 만들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폴리인들만의 배타적이고 독특한 성격 때문에 어떻게 미, 영국의 젊음의 문화, Rock문화를 쉽게 받아드릴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Osanna와 같은 수퍼그룹이 나폴리와 같이 근대 문화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탄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많은 평론가들은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구심은 나폴 리가 신성한 것과 신성치 못한 것 사이의 완전한 교차로에 놓여있는 곳이며, 깨져버린 희망, 재발견된 꿈들, 불완전한 신앙, 환상세계의 우월성, 독재의 불균형 등에 의해 생성된 곳이라는 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Lino Varetti(Vocal, Keyboards, Acoustic Guitar), Danilo Rustici(Lead Guitar), Lello Brandi(Bass), Massimo Guarino(Drum)등은 이미 해산된 Citta Frontale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Citta Frontale라는 그룹은 나폴리 진보음악의 선구자적인 그룹이었다. 건반주자 Gianni leone(Leo nero)는 실제로 이 글부에 재적할 당시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 Il Valletto Di Bronzo에 참가한다. 그리고 카리스마적인 플륫주자 Elio D'Anna는 Showmen이라는 그룹에 재적하고 있었다. 그 당시 다른 많은 그룹들로부터 Osanna라는 그룹을 특징짓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그룹들이 지닐 수 없었던 두드러진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들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외모였다. 이러한 독특한 외모아 함께 그들은 “Rock-Teatrale"라는 연극적인 경향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엇다. 물론 영국의 Arthur Brown과 Jethro Tull의 Ian Anderson이 그들에 앞서 이러한 연극적 무대를 보여 주었지만 이태리라는 나라안에서는 확실히 그들이 최초의 그룹이었다. Osanna가 대중들에게 선보인 독특한 화장술은 ”Commedia Dell‘ Arte(예술의 희극성)“가 존재하고 있엇고, 푸치니의 희가극에 위배되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찡그린 얼굴 표정과 독특한 몸짓을 통해 많은 관객들을 모을 수 있었고 쉽게 인기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Hard Rock, Blues, Folk 그리고 Jazz등 광범위한 모든 장르를 넘나들었으며, 실험정신에 몰두하게나 전통음악을 도입하는등 여러 가지 참신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독자적인 음악방향과 함께 Osanna는 무대위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행동을 청중들에게 보여주었고, Caracalla와 Viareggio의 Pop Faestival에서도 역시 그들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게 된다. 그들의 라이브활동이 이태리 국내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것이 당시 열광적인 팬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들의 무대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던지 그룹이 무대에서 표현했던 감정과 힘 자체를 음반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했었다.
국영 레코드사인 Fonit Cetra는 곧 Osanna를 끌어들였고, 그들의 대망의 데뷔앨범인 “L'uomo"(Fonit Cetra LPX 10)는 3-Folds Gate Cover로 1971년 발매되었다. 벽걸이로 걸수 있도록 고안된 멋진 커버는 음반에 담긴 훌륭한 작품에 걸맞게 아마 이태리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또 하나의 걸작이었을 것이다. 영국그룹 Gracious의 느낌표를 컬러복사기로 수백배 확대한 듯한 그들의 포스터형 커버는 멤버들의 예리하고 독장적인 복장, 분장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또한 그속에는 그들의 커다란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Renzo Arbore와 Fabrizio Zampa는 도입부의 만족스런 멜로디를 작곡하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Grazie Signor P"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Osanna의 폭발적인 강력한 사운드가 적절하게 잘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요소요소에 불균형으로 생긴 음의 분열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의 근본적인 요인은 두 리더 D'Anna와 Rustici의 음악적 다툼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데뷔작에서 Jethro Tull의 Ian Anderson의 거칠은 플륫연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색스폰연주 부분에서 재즈풍의 느낌을 연출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리듬이 뛰어나게 훌륭한 부분에서 기타리스트의 부실한 반복악절과 함께 그들은 Hard Rock의 흔적을 음악에 부여한다.
Osanna의 데뷔작에서 이태리어와 영어로 불려진 가사는 과다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인 방법으로 한인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또한 Vairetti의 노련한 보컬은 과거의 삶과 환상에 대비되는 현실 속에서의 가치를 들려준다.
“L'uomo"는 일부 대중으로부터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판매중합순위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인다. 이 앨범으로부터 싱글 ”L'uomo/In Un Vecchio Cieco(Fonit Cetra SPF 31298, 1971)가 커트되었다.
데뷔 앨범속에서 그들은 기술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동시에 작곡이나 구성에 있어서 어떤 변화성(지나친 자극을 불러 일으키는 혼란스러운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질적으로, “L'umo"는 자유로운 감정의 이입으로 강렬함과 커다란 암시의 순간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Osanna는 작품 전체에서 조화로움에 있어서는 결코 완벽성을 부여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음악적, 천부적 재능은 마치 무질서로써 표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1972년, Osanna는 Luis Enriquez Bacalov와 함께 두 번째 앨범 “Preludio Tema Variazioni Canzona(Fonit Cetra LPX 14)"를 녹음한다. Luis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며 작곡가였으며 또한 영화음악가로도 유명하다. New Trolls와 ”Concerto Grosso"를 완성했던 거장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평론가들과 대중들에게도 커다란 사랑을 받아TEjs 영화 “Milano Calibro Nove"의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Osanna의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Osanna는 그 시기에 매우 유행했던 심포니와 팝음악의 융합에 참여하는데 그쳤을 뿐, 창조적인 것은 모두 Luis Enriquez Bacalov에게 일임되었다. 첫곡 <Preludio>는 [Concerto Grosso]만큼의 성공적인 Classic과 Rock의 융합은 결코 아니었다. 이러한 서로 다른 음향의 융합계획은 작품전체의 동질성을 단지 점검하는데 있었으며, 음악적인 단편성에 보조역할만을 해내는데 그쳤다. 즉, 이 앨범은 Osanna의 역사에 있어 매우 의외적인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1973년, Osanna는 야심에 찬, 매우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 [Palepoli(Fonit Cetra LPX 19)]를 녹음한다. [Palepoli]는 옛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도시를 의미하는 그들의 출신지 Napoli와는 대립되는 단어였다. 옛 것과 새로운 것, 고대와 현대, 전통과 연구사이의 대립속에서 우리는 이 음반의 현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음반은 3개의 긴 작품들이 담겨져 있는데, 현대사회의 모순등을 지적한 작품들이었다. 이것은 현세대들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역할로서, Osanna가 표현한 새롭고도 낡은 내면성(정신성)에 대한 음악적인 연구서인 셈이다. 내면성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일시적인 혼란에서, 우리들의 현재와 과거에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옛 것과 새로운 것을 발견해낼 필요성을 보여해주고, 정신(영혼)의 표현을 중요시하게 될 미래에 대해서 그 필요성을 부여해 준다. 1973년은 이태리 Rock계에, 특히 Osanna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해였다. 그룹은 Gualdo와 Mestre의 Festival 그리고 Osanna 자신들이 기획한 옥외 공연으로 펼쳐진 Napoli의 Be-in 행사에 참여한다. 그러나 Osanna는 커다란 성공을 눈앞에 두고 돌연 해산되었다.
1974년, 앨범 [Landscape Of Life(Fonit Cetra 1974 LPX 32)]가 그들의 마지막 작품으로 발매되었지만, 이 앨범은 가치없는 곡들을 모아놓은 앨범이었다. 영어와 이태리어로 불려진 곡들은 어떤 면에서는 흥미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테마의 결속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지않았다. 그 반면, 음반의 화려한 앨범커버는 Vairetti와 Guarino가 직접 붓과 연필로 그려낸 칭찬할 만한 작품이다. 그룹의 해산 이후 D'Anna와 Rustici는 새로운 그루블 조직하기위해 유명한 퍼쿠션 주자 Tony Esposito와 접촉하게 된다. 뒤이어 드러머 Enzo Valicelli가 거세하여 새로운 그룹 Uno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1974년, 런던의 Trident스튜디오에서 Uno는 데뷔앨범을 녹음한다. 판매 촉진을 위해 그들은 커다란 예산을 기획했다. 이 앨범으로부터 싱글 ‘I Cani e La Volpe/Popular Girl(Fonit Cetra spf 31312)이 싱글로 발췌되었다. 그들의 작품속에서 색스폰에 할애된 많은 부분과 함께, 기타리스트 Rustici에 의해 재공되는 위엄있는 보컬 덕분에 옛 Osanna의 발자취를 연상시킨다. 또한, 음향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노력이 엿보이며, 편곡에 있어서도 다양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라이브 무대위에서 Uno라는 그룹은 앨범에서 느껴지는 혼합된 분위기를 재현하지 못했고, 결국 혹평을 받았다. 그룹에는 Cervello의 전기기타리스트이자 Danilo의 친형제인 Corrado Rustici가 참여했는데, Corrado는 Osanna의 “Landscape Of Life"의 녹음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지원은 라이브 공연에서 특히 Uno에게 신뢰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러나 그룹이 창작열에 불타오르기 시작 할 무렵, 그룹은 또 다시 해산위기를 맞는다. 밀라노 출신의 베이시스트 Luciano와 Valicelli가 Franco "Dede"(Circus 2000과 Duello Madre의 드러머였던 인물)로 대치되면서 여기에서 또하나의 새로운 그룹 Nova가 탄생하게 된다. 이 글부은 초창기에는 영국에서 자리를 굳히려 했지만 끝내 정착하지 못했고,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Jazz-Rock을 행하면서 Phill Collins, Narada Michael Walden과 Percy Johns등의 유명한 뮤지션과 세션을 하게 된다.
Osanna의 해산이후 Vairetti와 Guarino는 옛 시절의 그룹 Citta Frontale를 재결성하게 되는데, 기타에 Saint Just의 멤버였던 Gianni Guarracino, 플륫에 Enzo Avitabile, 건반에 Paolo Raffone, 그리고 베이스에 Rino Zurzolo등을 가입시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1975년, 그들은 앨범 “El Tor(Fonit Cetra LPX 45)"를 녹음했다. 그룹의 스타일은 지난 시절의 그룹과 비교해서 주목할 만큼 변모햇고, 음반 전체에서 탁월하게 Acoustic한 곡들과 Funky와 재즈에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한느 곡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아래 Rino Zurzolo와 Enzo Avitablie는 새로운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실력을 담았다. 연주곡 ‘Mutazione'에서 그들은 Jazz-Rock의 대담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유능한 뮤지션들의 기술적 재능의 명백한 본보기를 제공하는 반면, 가사에서는 그룹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그후 Citta Frontale의 재결성은 Danilo Rustici와 함께 Osanna를 재결성하려는 두 리더 Vairetti와 Guarino의 의지를 남겨둔 채,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1977년, 확인과 부인을 거듭한 몇 달 후에 Osanna는 D'Anna(건반주자 Fabrizio D'Angelo에 의해 대치된다)와 Brandi만이 탈퇴하고 Enzo petrone가 가세하여 재결성된다. 부활된 Osanna의 앨범 “Suddance"가 CBS(CBS 82449)로부터 발매되지만 그룹 멤버들 자신이나 옛 팬들의 기대에는 좀처럼 미치지 않은 졸작이었다. 이 작품속에서 그 옛날의 정열도, 전성기 때의 뜨거운 열기도 결코 찾을 수 없었다. ”Sunddance"는 그 이전의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던, 주제일치-동일성등을 발견할 수 없고, 종합된 형태를 내세우고 있다. 아무튼 냉정한 대중들은 다시 돌아온 그룹 Osanna에 대하여 결코 환대하지는 않았다. Osanna 멤버들 자신들도 그것에 대하여 침묵으로 수긍하는 것 같았다.
Rustici와 D'Anna는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제작자의 입장으로 이태리로 되돌아온다. 그들은 더 이상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 간접적으로나마 1980년대의 레코드시장에 나폴리의 음악적인 환상을 부활시키려고 노력했고, 그 기회들을 후배 그룹들에게 넘겨 주었다.
Cover Art-Palepoli
Osanna의 세 번째 앨범 커버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레코드 커버를 보다보면 그들의 신선한 의도와 불같은 시도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Osanna는 “Palepoli"와 함게 ”지중해풍의 팝음악“이라는 뚜렷한 주제를 확인시켜 준다. 그들의 ”지중해 팝“은 이미 앨범 ”L'uomo"에서 비롯되기 시작했고, 이 세 번째 앨범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Elio D'Anna는 “이 앨범은 나에게 음악적인 내용으로 질질 끌도록 만들지 않는다.. 음악, 가사,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음악적 화제들은 상상속에서 우리들만의 표현력에 연결되어 충분한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와 같은 중요성을 연주하고 사진이나 그림 인쇄의 능력을 음악뿐만 아니라 때때로 커버와 함께 기술적으로 잘실현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처음에 이 앨범을 위해 사진작가 Gianni Cesarini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그후 Osanna는 Umberto Telesco에게 커버를 요청했었다. Umberto는 이미 Saint Just앨범 커버의 이미지와 Alan Sorrenti의 화려한 사진을 맡았던 인물이다. Umberto는 나폴리태생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잘 표현할뿐만 아니라 가장 유능한 평론가중의 한 사람이다. 이태리에서는 유명한 레코드수집가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에서 약 4년동안 일했고, 오랜 연습기간동안 그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얻었다. 가공할만한 음악감상 시설외에도 그는 트럼본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연주할 줄 안다. 물론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사진 작업이다. Telesco는 혼자 있을대 가끔 트럼본을 연주한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것보다 음악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일을 더 좋아한다.
그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Osanna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극장을 배경으 로 하는 커버, 풍자극을 연상시키는 작은 극장의 모습은 나폴리의 옛 조상인 “Palepoli"의 사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Osanna의 LP에서 표현된 연극의 동작이 전개되는 것이다. 나일론 줄에 의해 길이를 충분히 유지하고 있는 높이에서 두 개의 형상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2개의 상징적인 여인상, 수호신, 뼈, 꽃, 다른 상징들). 인형극처럼 Elio D'Anna의 자극적인 분장(변장), 다른 멤버들의 변장, Brugel의 그림에 의해 독특한 배경 게다가 이상한 여러 가지 사물들과 사진들이 담겨있다.
Umberto Telesco는 그의 이러한 생각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Ipotesi, Gruppo D'Alternativa의 표지를 Fabio Donato와 공동으로 제작했던 아트 디렉터 Carlo De Simone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부인 Lauro Mancini에게 도움을 받은 De Simone는 완전히 적절하고 결정적인 표지로 발전시켰다. Osanna 작품의 연극적 성격에 매우 근접했고 진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점에서 개혁에 가까운 이 커버는 표현하기에 너무나 어렵지만 애착이 가는 일이어서 심사숙고하여 표현했다.
Osanna는 이러한 LP에서 모든 것을 응시하고 있다. 이태리의 평가해볼만한 그룹들에게 오히려 외국에서 항상 관심을 갖는 일이 종종 있다 현재 LP는 음반 그 자체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들 때문인지 잘 팔리고 있다. 내용을 담고 있는 커버 판매를 촉진시키는 형태와 잘 만들어진 광고 또한 판매 촉진에 기여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커버는 보다 더 즉각적인 판매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며 오늘날 아티스트들의 음악 연주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요소이다. 응급대책의 결과로 Carlo De Simone는 Umberto Telesco의 생각과 상상을 이용하여 다행히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실현해 주었다. 그는 처음 생각들과 비교할 때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작품의 보다 더 경제적인 변형 커버를 위해 모든 것을 재적용했다. 어쨌든 이 앨범커버는 작가들의 경험으로 잘 만들어진 것 같다. 특히 내부가 훌륭한 이 커버는 기묘하고 극적인 의미와 완전한 협화음을 이룬다. 바로 이러한 점이 Osanna의 음악과 무대예술(연극적 성격)의 특징이라 할수 있겠다.
Cover Art-massimo Guarino와 Lino Vairetti의 “Landscape Of Life"
절단된 부분들을 일어버리니채 분해된 고래는 자신의 인위적인 내부구조를 헐벗은 채로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은 생물의 기계적인 변형을 가정하면서 파괴적인 불꽃의 붉은 혹성을 중심으로 우주의 궤도 공간을 방황하는 돌고래는 완전히 파괴된 인간성과 멸망한 세계의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흔적이다.
Lino Vairetti의 내부 이미지, Massimo Guarino의 외부 이미지 이렇게 두 개의 이미지를 지닌 Osanna의 네 번째 앨범은 어떤 자양물이 결여된 나무들로 무섭게 변해버린 인간의 형상으로 분해된다는 동일한 테마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