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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6:28:06)
 1. 크라우트락 샘플러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594번 제 목: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1) 올린이:coner (송명하 ) 98/11/04 01:39 읽음:242 관련자료 없음

Julian Cope의 저서 Krautrock Sampler의 번역입니다.
글이 좀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읽어 주세요.
시간이 나는대로 계속 올릴께요..
그럼 올라갑니다...


Chapter 1.

-A Little History of Krautrock Rising

.John, Yoko 그리고 파리 폭동 1967년 독일엔 Rock의 물결이 밀려온다. Rattles는 처음으로 서독에서 세계 적인 히트를 한 "The witch"를 제작 했다. 하지만 사운드 자체는 아직 다른 그 룹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 역시 환각적인 경험을 음악에 수용 하였지만, 그것 은 항상 독일인의 방식 대로 였다. 비록 로마의 역사 학자들이 게르만 민족이 크리스챤이 되기 어렵다고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부활을 믿어 새롭게 크리스챤이 되는 라인강 북쪽의 게르만 민족을 도왔다.
요컨데 1967년 까지 서독은 미국과 영국 문화의 범위에 예속되는 것으로 보 였다. 사이키델릭 문화는 영.미보다 6개월 이후에 찾아왔지만, 영원히 머물렀 다. 1967년 영국의 팝 히트곡은 독일 내에서 1974년 까지 들려졌으며, 독일 록 의 역사에 있어 그들 밴드의 유사한 스타일이 되었다. 1967/8년시기에 레코드 커버에 쓰여졌던 영.미의 광학예술(Op-Art)나 팝 아트, 또는 사이키델릭 라이트 쇼 이미지는 1970년대 독일 언더그라운드에 있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Ono Yoko가 John Lennon와 결혼 할 때, 미국과 영국인들은 그것을 반대하며 눈살을 찌뿌렸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Hip예술가 모임에서는 오 노 요코가 확실하고, 훌륭하며, 영감에 찬 아티스트였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죤 레논에 발탁되어 Beatles Kid의 음악을 그대로 예술적으로 동의 하게 하였다는데에 큰 의미를 두는듯하다. 독일의 많은 아티스트들에 있어 그것 은 록 그룹을 결성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또 1968년 프랑스 폭동의 술렁이 는 학생들은, 러시아에서 알렉산더 두브첵의 체코슬로바키아로 탱크를 보낼 때, 화염병을 경찰들과 공무원들에게 던지며 "석유를 절약하고, 차를 불태우자."라 는 스프레이를 뿌렸으며, 이 사건은 서독의 젊은 히피들에게 자유의 이상을 다 시한번 주장하게 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음악적으로 표현 된 것은 새로운 Freakout음악의 시작 이었다. 베테랑 뮤지션인 Edgar Froese가 이끄는 Acid Freeform그룹인 Tangerine Dream과, 드러머인 Klaus Schulze가 이끄는 베이스 주자 없는 젊은 트리오 그룹인 Psy free 등의 음악은 매우 깊고, 환각적이였으 며, 어지러웠다. Schulze와 모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했던 Psy free의 기타리스트 Alex Conti는 밤마다 "자유를 위한 시간"을 위해 연주했다.
서독의 Pop Festival들은 Montrey Festival에 고무되어 뒤따랐다. 첫 번째 위대한 이벤트는 독일 언더그라운드에 커다란 영향을 준 Frank Zappa의 Mothers of invention과 Ed Sanders의 Fugs가 참가했던 1968년의 Essener Sontag Festival였다. 독일에서도 한 그룹이 페스티발에 연주를 위해 초청 되었는데, Amon Duul이라고 불리우는 정치/음악 공동체였다. Show가 시작되기 전에, 그들 이 살았던 잠시동안의 평화는 결국 끝나게 되었다고 소개 되었고, 실제로 이후 영원히 기록될 Amon Duul I과 Amon Duul II라는 두 개의 다른 그룹으로 그날밤 연주 되었다. 그러한 새로운 scene은 시대에 관계없이 발전되며 계속 되었다.
어느날 Holger Czukay는 그긔 그전 스승인 Karlheinz Stockhausen에 대해서, 그의 제자중 한사람과 얘기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는 젊은 제 자 Michael Karoli는 전혀 감동 받지 않았다. 그는 스승에게 The Beatles의 "I am a walrus"를 들려 주었고, Holger Czukay는 록 음악이 이정도까지 된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 그는 또다른 슈톡 하우젠의 제자인 Irmin Schumidt에게 전화 를 걸어 그들보다 10년 연하인 Michael Kalori와 함께 그룹을 결성 할 것을 제 안했다. 이러한 사이키델릭과 슈톡하우젠의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곧 Can으로 불 리우게 되고, 이후 계속하여 활동하게 된다. (계속)

대전에서 명하.

 

 2. 독일, 독일락에 대한 횡설수설

독일이란 나라/게르만족 또는 아리아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일종의 경외심을 가지는 부분이 있다 산업 전반에 걸쳐서 세계최고수준에 이른 과학기술때문도 아니고, 유럽연합의 중심국이라는 정치경제적 영향력 때문도 아니다. 2차대전의 전범을 스스로 처단하고 유태인과 유럽인들에 대한 죄값을 지금까지도 치뤄내고 있다는 점이 그들을 정말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들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독일락을 본격적으로 열심히 찾아듣게 된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을 좋아할만한 이유가 전쟁에 대한 스스로의 단죄말고도 또 생긴 것이다.

 

Kraut Rock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무수히 많은 독일 그룹들 중에서 누가 크라우트락스러운 음악을 하고 누구까지인지를 명확히 선긋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크라우트라는건 바다 건너 영국인들이 독일인을 비하하여(마치 우리가 바다 건너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듯이) 부르는 속어요 별명이다. 그런 크라우트(독일병정)이란 말이 어쩌다가 독일 특유의 하드프로록에 붙여지는 별명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어쨌든 독일을 경멸하는 국민정서는 그렇다치고, 독일의 프로록 시장은 매우 크고 넓었기에, 영국 애들도 독일 시장을 빼놓곤 판장사가 안되었다는 야그다..영국 원판보다 독일 발매판이 더욱 호가가 높은 BigSleep같은 애들이 있는가하면 아예 독일로 넘어가서 그곳에서만 음반을 낸 친구들도 있을정도다. 그런데도 왜 이리 독일의 그룹들이 한국에서는(지금은 다죽긴했지만 한때 프로그 늦바람이 일본 전성기 이상으로 활발했던 시장)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는건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모든 아트락/프로록은 자신을 통한다...라는 유명한 어록(?-_-)을 남긴 성모박사가 이탈리아 음악의 반만큼만 독일 음악을 좋아하고, 결정적으로 이땅의 프로록 애호가들에게 진실로 순교자적 역할을 하고싶었다면(별로 그런다고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나부지...) 지금의 한국 프로록, 아트락 애호가들은 독일 언더락 밴드들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랐을거라 생각한다. 약간 빈듯하고 허전한 느낌, 어설픔과 빈 자리와 같은게 독일 락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먼가 비어있는듯한 느낌, 그 느낌이 더 정이 간다는것이다. 100%동의할만한 의견은 아니긴 하지만 특히나 언더그라운드가 탄탄하게 형성되었던 독일의 경우 남미 그룹들이 가진 그것과는 또 다르게 여백의 미가 있는건 사실이다.

 

동독의 그룹들에 대한 정보나 지명도는 그나마 서독출신들보다 더욱 심각한 편인듯 하다..PUHDYS란 초대형 그룹이 있다..동독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을 왕성하게 활동해왔고 초기 앨범들은 컬렉터스아이템에 꼽히는것도 있다. 수십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인기와 명성을 그토록 오래 유지했지만 국내엔 별로 알려진 바는 없는것 같다. 허긴 무슨 상관이랴...대한민국이 전세계 프로그락의 중심지는 아니니까...

 

가장 많은 불법레이블이 버젓이 판을 치는 나라도 독일이다...Second Battle....불법레이블이라고 생각해왔는가? 놀랍게도 사장이 저작권 시비에 휘말려 도망다닐 처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쯤되면 Spalax니 Garden of Delights니 모두 사기꾼들같아 보인다. --BrainSalad

 

Faust의 IV앨범 첫곡 제목이 Kroutrock이지요 아마. --거북이

 

SPALAX는 아니요. 그러나 똘아이지, 5년전부터 단한장도 수입 안해주고 되려 이상한 빛갈을 띠는^^ 음반커버와 금줄 답배갑 포장으로 이루어진 어설픈 COPY본을 뿌리고서 잠적했던 원뮤직의 박강원 사장이 최곤줄 알고 무조건 박사장 윤허를 받아야 자기네들이 음반수출을 할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바보들이지. 세컨드 배틀은 사장이 도망다니긴 하는데 실질적인 사장은 따로 있지 -FVI-



 

2012.10.19 (08:24:48)
밝은슬픔

독일음악은 발음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어려움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 허술함에 동질감과 독특한 발음이 어떤때는 더 울림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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