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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2 (20:26:27)

 

1.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
2. 프로그레시브 록의 특징
3.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전
4. 브리티쉬 아트 록 대표 앨범
5. 하위 장르 및 대표 앨범
    5.1. Symphonic 
    5.2. Classical
    5.3. Psychedelic
    5.4. Space
    5.5. Electronics
    5.6. Folk
    5.7. Jazz
    5.8. Theatrical
    5.9. Canterbury, Chamber (RIO)
    5.10. Neo-Progressive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의 모습

*이 글은 '98년 7월호 GMV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인데 이 분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SUPERNATURAL FAIRYTALES -THE ERA OF ART ROCK-

록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지도 한 세대가 흘 렀다. 그 동안 대중음악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험이 행해졌고, 나름대로의 훌륭한 성과와 실패 그리 고 진보와 퇴보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과거의 음악 은 새로운 이름과 형식으로 현대에 다시 태어나 또 다 른 진화의 길을 걷는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지닌 음악들 중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생활 의 동반자로서 역할하는 류가 있는가 하면, 사랑은커녕 그 존재에 대한 인지(認知)조차 불투명하여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도 있다. 아래에 장황하게 소개될 아트 록(Art Rock)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 (Progressive Rock)에 포함되는 음악은 분명 후자에 속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과연, 이 음악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또는 느낌에 역행하는 어떤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일 까? 그렇다면 그 맥이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그 음악은 어떤 음악이길래?

1.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

우리가 흔히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어떠한 장르를 얘 기할 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 악 또는 아티스트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물론 이는 개 인의 취향과 음악적 경험에 따른 차이를 가진다. 예컨 대 누군가에게 "헤비 메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헤비 메탈을 듣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메탈 리카를 떠올릴 것이고 좀 더 나이가 든 계층은 주다스 프리스트나 아이언 메이든을 생각할 것이다. 또는 그보 다 더 위의 세대라면 딥 퍼플이나 그랜드 펑크의 음악 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물론 남들보다 많이 듣는 매 니아라면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질 수도 있지만, 대체로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경우란 선구자격의 역할 을 했던 특출한 몇몇에 한정되기 때문에 결국 범위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럼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 거론될 때 사람들은 누구를 먼저 떠올릴까? 이 분 야의 음악을 많이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어느 정도 음 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프로그레시브와 연계하여 손 에 꼽히는 몇 개의 밴드명을 생각해낸다: 핑크 플로이 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예스(Yes), 제네시스(Genesis),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등등. 그리고 이 이름들에 담긴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프로그레시브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석과 같이 되어 있는 이 등식은 요즘에 는 공신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말 을 놓고 요즈음 음악을 '듣는' 이들은 위의 밴드들이 아 니라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나 퀸스라이크 (Queensr che)를 생각한다. "프로그레시브에 푹 빠져 있답니다. 어디 드림 씨어터같은 밴드 있으면 좀 추천 해주세요." 이런 질문이 PC 통신의 음악 동호회에 수시 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건 프로그레시브가 아니다, 왜 아니냐, 그 이상 진보적인 음악 하는 밴드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하는 식의 말싸움이 벌어진다. 그런 논쟁은 대부분 에너지 낭비로 끝나게 된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 이다. 많은 음악들 중 유독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에서 만 늘 이런 류의 논쟁이 그치지 않는 까닭은 장르 자체 의 광범위성 탓이다. 이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뚜렷한 개념 정의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끝날 수가 없는 싸움이 다.
그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데에 있었다. 우선, 프로그 레시브 록에 대해 말하며 단어의 뜻대로 고스란히 직역 을 하여 '진보적인 록'으로 번역한 데에서 논쟁은 생겨 날 수밖에 없었다. 록이 발전하던 시기에, 전에 없던 시 도를 행했다거나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시기에 정말로 동시대의 감각과 사유(思惟)를 앞선 듯 보이는 그 음악들에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이 붙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진보의 기 준은 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대상에 대해 '진보'라는 수식어가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관계 없이 통용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물론 지금 들어도 여전히 진보적으로 생각되는 사운드가 분 명 있긴 하지만-. 그러므로 용어가 지니는 발생론적 차 원에서의 의미는 장르의 토대가 형성된 이래 보통명사 가 아닌 고유명사로서 역할한다고 보아야 한다(따라서 어떤 음악에 대해 '프로그레시브하다'라고 한다면 그건 '진보적이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분위기이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이 젠 더 이상 메이슨(Mason)이란 성씨들이 모두 석공(石工)이 아니고 커틀러(Cutler) 가문이 칼붙이 장수가 아 니듯이 말이다. 아트 록이라는 용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술적인 록'이라는 해석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예술'
에 대한 납득할만한 정의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을뿐더 러 용어의 생성 자체가 의미론적이라기보다는 형태론적 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용어는 당시 '진보적인' 시도를 행했던 많은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아트 스쿨(Art School)'의 학생이었던 탓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아트 록이라 일컬었던 데에서 연유한다. 이후 유럽과 (특히) 일본의 평론가들은 이 두 용어를 즐겨 사용했고 일부에서는 둘 중 하나를 더 상위 개념으로 간주하여 구분을 짓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두 용어에 대한 특 별한 구분을 두지 않겠다. 단, 일반적인 장르 구분상 '록'의 범주에 넣기엔 무리가 따르는 음악들, 즉 전자음 악, 민속음악, 포크, 챔버음악 등에 대한 상위 장르로서 아트 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임을 밝힌다.

 

2. 프로그레시브 록의 특징

프로그레시브 록이란 그 범주에 포함되는 하나의 흐 름 또는 분위기이다. 록을 기본으로 하여 출발했지만 재즈, 클래식, 블루스, 하드 록, 포크 등 타 장르와의 경 계를 허물어 어떤 정형(定型)을 가지지 않으며 때로는 록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장르 보다도 포괄하는 범위가 넓지만, 모든 음악들을 아우르 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르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짙은 색깔이 채색되어 있다. 그것은 연주면에서의 기교 적인 부분일수도 있고, 기술을 요하는 첨단의 악기 또 는 장치의 사용일수도 있고, 극단적인 미학에의 추구일 수도 있고, 장르간의 적절한 크로스오버일수도 있으며 또 지역색의 반영이나 과거-르네상스 시대, 중세 또는 그 이전-로의 회귀(回歸)일수도 있다. 가장 화려한 모 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 지극히 단순한 울림의 연속 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쏟아 져 나온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록 작품들에 담긴 사운드 는 각 앨범들마다 너무도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뭉뚱그려 한두 마디의 말로 표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외형적인 일정한 형식 과 명쾌한 스타일의 곡 전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 도, 장르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사운드와 분위기는 분 명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음악과의 크로스오버 아트 록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사운드는 크로스오버, 즉 록과 서로 다른 장르의 접목으로부터 생겨났다. 물 론 이는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류의 단순한 일차원 적인 시도나 효과와는 다르다. 그것은 화학반응이다. 일 정한 조(調)와 비트(beat)의 유지에서 벗어나 재즈의 즉 흥연주(improvisation)나 클래식의 조곡(suite)의 형식을 도입한다거나 단순한 음률이 주가 되는 민속음악의 선 율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표현을 위한 수단 과 방식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이 지나 쳐 '음악'이 아닌 '의미 없는 음(音)의 나열' 정도로 인 식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여러 실험들의 결과는 장르의 눈부신 발전과 급속한 쇠퇴에 큰 영향을 끼쳤다.

② 키보드, 그리고 멜로트론의 효과적인 사용 음향 합성 장치인 신서사이저가 개발되고 발전하던 때에 그 '악기'를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데 커다 란 역할을 했던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이었다.
기존의 악기가 낼 수 없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냄으로 써 아티스트의 표현 영역은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래 서 키보드, 특히 하몬드 오르간과 무그 신서사이저는 초기 아트 록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로서 기능했는데, 이 장르와 거의 동격으로 여겨지는 장치인 멜로트론 (mellotron)의 등장은 곧 아트 록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각각의 건반에 연결된 릴테입으로부터 흘러나 오는 소리는 가장 신비롭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냈 으며 이후의 어떤 악기나 장치도 이 사운드를 대신할 수 없었다. 70년대 초, 중반에 발표된 무수한 팝, 록 앨 범들에 이 장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역시 아 트 록에서 가장 활발하고 효과적인 사용이 이루어졌다.
이후 아트 록이 쇠퇴함에 따라 록 신에서 이 장치의 사 용 또한 현저히 줄어들었다.

③ 고전, 민속악기의 적극적인 도입 아트 록에서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악기는 바이올린 을 비롯한 고전 현악기이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사용은 록의 기본 편성-기타, 베이스, 드럼-에서 창출되는 직 선적인 사운드를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 드는 역할을 했다. 류트, 쳄발로, 덜시머를 비롯한 옛 민속악기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④ 주제의 다양성 다루는 주제에 있어 장르가 포괄하는 범위는 먼 미래 에서 태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내부에서 무한한 우주 에 이르기까지, 눈앞의 현실에서 잊혀진 신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음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주제에 걸맞는 사운드를 위해서 아트 록적인 분위기는 가장 적절한 것 으로 여겨진다. 유달리 이 장르에 컨셉트 앨범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3.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전

앞서 언급했다시피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에 연상되는 이름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른바 '수퍼 밴드'로 불리 우는 그룹들인데, 특이하게도 그들이 록의 역사에서 지 니는 가치라는 것은 놀랄만한 창조가 만들어내는 그 흐 름의 영속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지 극히 배타적인 속성을 띠는 개별성 속에 있다고 보여진 다. 아무리 뛰어나다 인정되는 그룹들이라 할지라도 극 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록의 역사 속에서의 그들의 위상 은 높이 자리매김되지 않는다. 즉 영향력이라는 측면에 서 비틀즈의 부재와 핑크 플로이드의 부재는 차원이 다 르게 생각된다는 말이다. 대중성의 결여, 이는 아트 록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지니는 가 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말마따나 '머리가 없는 괴물'과 같은 성격을 가지는 대중은 그들의 머리 로서 역할할 수 있는 조건을 꽤나 까다롭게 따진다. 그 리고 그 대중들이 살고 부딪는 '현실'이라는 조건을 담 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음 악을 포함한 문화 예술 제분야에서 대중들이 원하는 현 실성이라는 것은 사회 참여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의식(意識)보다는 감각에 더 가까이 접근해 있는 무엇이다. 쓴약이 몸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혀 끝에 달콤한 맛을 전해주는 사탕 을 먹으려 한다. 꿈을 꾸고 은은한 향을 음미하기보다 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원한다. 꿈꾸기 에 좋은 음악인 프로그레시브 록이 간혹 상업적인 성과 를 거두었을지언정 대중적이 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 나는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 태동했던 시기는 60년대 말, 록이 가장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던 때이다. 물론 그 시작과 본격적인 발전이 있던 곳은 영국이다. 시대의 여러 상 황들은 젊은이들의 이상(理想)에 대한 갈망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고, 그 정신적 영역의 많은 부분들은 그들의 예술적 창의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로큰롤에서 발전된 록 음악은 여러 선구자들에 의해 뚜렷한 모습으로 성장 하고 있었다. 이후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 게 되는 비틀즈(Beatles)는 단순한 로큰롤에 민속악기 를 도입하는가 하면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적인 시도로 전에 없던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또한 약물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환각을 담아내었던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 하나의 이야기 구조 위에 오페라 또 는 뮤지컬의 형태를 차용했던 후(The Who)와 킹크스 (Kinks), 본격적인 록의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던 야드 버즈(Yardbirds)와 크림(Cream) 등 위대한 그룹들에 의 해 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미국 의 서부에서 건너온 싸이키델릭 문화의 영향은 대중음 악에 현저하게 반영되어 당시의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 이 음악을 통해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음악들과 더불어 이 후 아트 록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고전으로 남게 될 작품들이 등장한다. 프로그레시브 록계에서 수퍼 밴드 로 인정되는 그룹들의 음악은 제각기 고유의 사운드와 분위기를 가진다.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라는 말 외에 다른 카테고리에 넣어 분류하려면 몇 개의 다른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초기 아트 록의 형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그룹들 은 대부분 미국의 싸이키델릭에서 영향을 받은 사운드 를 구사하였다. 그 범위는 무브(Move), 나이스(The Nice), 패밀리(Family) 등 수퍼 그룹들의 전신(前身) 밴 드나 클럽 등지에서 활동하던 로컬 밴드들에서부터 비 틀즈, 에릭 버든(Eric Burdon), 도노반(Donovan), 아써 브라운(Arthur Brown), 트래픽(Traffic), 크림 등 록사 (史)에 획을 그은 아티스트와 밴드에 이른다. 하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몇몇 밴드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실 험과 그 결과물의 상업적 성공에 기인한다. 클래식 오 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하여 주음원으로서의 멜로트 론의 본격적인 사용, 변박에 의한 일정한 리듬과 비트 의 파괴, 제한을 두지 않는 곡 길이 등, 이전에 없던 이 러한 시도들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이루기에 충분했 으며 그 신비로운 영역으로의 항해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큰 전성기를 맞이한다.
영국에서의 이러한 커다란 움직임은 곧 유럽 전역으 로 퍼지게 되는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영국에 버금가 는 프로그레시브 강국(强國)은 이태리, 독일, 프랑스이 다. 각 나라들은 기존의 그룹들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자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덧입히고 다듬어 그들의 정 체성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당시 록에 있어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이 나라들에서 아트 록의 영향력이 란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큰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이 탤리언 록, 저먼 록, 프렌치 록이라 하면 흔히 아트 록 계열의 음악을 일컫는 말로 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나 름대로의 확연한 특색을 지닌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가 보다 소박하고 텁텁하며 스케일 큰 아름다움을 가지 고 있다면, 이태리의 것은 아기자기함과 서정미 넘치는 선율적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한다. 환각 문화에 보다 큰 영향을 받은 독일은 싸이키델릭과 차가운 전자음악 으로 대표되며, 연극적인 요소의 도입과 프리 재즈의 강한 영향을 드러내는 프랑스의 아트 록 역시 언어가 주는 독특한 뉘앙스와 함께 유러피안 록의 한 계보를 이룬다. 이들 나라들을 주축으로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는 아트 록 밴드가 활발히 활동을 했었다. 그들을 모두 이 지면에 일일이 거론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래에 소개 되는 앨범들은 장르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운 드를 담고 있으며 이미 많은 팬들에게 걸작으로 인정되 는 작품들이다. 프로그레시브라는, 말할 수 없이 방대한 바닷속에서의 한 모금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맛과 향 과 빛깔이 어떠한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 다. 아래의 앨범들을 통해 각 밴드들이 지향한 사운드 와 그것으로 대표되는 (하위) 장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장르의 선구자격인 밴드들의 음악들은 그것 자 체로 하나의 하위 장르 또는 계파(系派)로 이어지는데, 애초부터 크로스오버적인 성격이 강한 장르이니만큼 분 류되는 영역 역시 매우 광범위하다. 앞으로 얘기하게 될 여러 장르들 또는 그 장르에 의한 구분은 다분히 개 인적인 느낌과 관점에서이다. 때문에 이들 중에는 다른 여러 장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그룹, 아티스트 또 는 앨범들이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4. 브리티쉬 아트 록 대표 앨범

위대한 브리튼(Great Britain), 적어도 록 음악을 좋 아하는 이들에게 영국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로움 을 간직한 나라로 기억된다. 웨일즈와 잉글랜드, 스코틀 랜드와 아일랜드는 각각 짙은 지역색을 띤 채 서로 배 타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적어도 음악이라는 범위 내 에서 그것은 '영국'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겨진다. 비 단 아트 록에만 국한되지 않은 브리티쉬 록에는 다른 나라의 음악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푸른 초원을 뒤덮는 따사로운 햇살, 황량하고 거대한 바위산으로부터 불어 오는 서늘한 바람, 음습한 대지 위에 피어오르는 희뿌연 안개, 스톤 헨지의 거석 (巨石)들 사이에서 아련히 스멀거리며 솟아 오르는 신 비로움과 주술적인 공포,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축적 된 꿈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6,70년대 영국 음악의 가 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특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를 얘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 마어마하고 방대한 작업이다. 정말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프로그레시브 앨범들이 존재하지만, 사실상 그 전 형과 그들이 표방하는 음악은 소수의 밴드들로부터 완 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게 될 온갖 종류의 아트 록은 이미 영국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었으며 또 완벽한 계보를 형성했다. 물론 이들의 파급력은 자국뿐 아니라 프로그레시브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대부분의 그룹, 아티스트들에 미친다. 수퍼 그룹들은 제각기 다른 음악 성향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핵심 인물 들이 모두 남다른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기에 이 들의 사운드는 각각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KING CRIMSON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69, Island)
null단 한 번만 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이 인상적인 앨 범 커버는 음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앨 범이 발표되었을 당시 이 음악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아마도 프로그레시브 또는 아트 록을 표방하는 그룹들, 아니 록 그룹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보적인' 집단으 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밴드 킹 크림슨은 데뷔작을 통해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가 가게 될 모든 방향에 대 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리그의 조곡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앨범 타이틀은 물론이거니와 사운드에서의 강렬함 -<21st Century Schizoid Man>-과 서정성-<I Talk To The Wind>, <Epitaph>-, 그리고 신비로움 -<Moonchild>-을 담고 있는 각 곡들의 구성, 시적인 가사는 앨범을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로 자리하게 한다. 마이클 자일스(Michael Giles)의 절제된 드러밍과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의 몽환적인 멜 로트론 연주는 이후 수많은 그룹들에 의해 반복되는 스 타일의 전형을 이루며,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깊은 보컬은 이들의 환상에 가장 적절한 음색을 지닌다. 각 곡들에서 느껴지는 회화적(繪畵的)인 분위기 또한 초기 킹 크림슨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밴드의 모 든 것을 지휘하고 그려내는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의 천재성은 이 앨범을 통해 이미 그 극점에 올라 있 다.

MOODY BLUES / Days Of Future Passed ('67, Decca)
Moody_Blues___Days_Of_Future_Passed_1967.jpg같은 해에 발매되었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도어스의 『The Doors』,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urrealistic Pillow』, 핑크 플 로이드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등 록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앨범들이 짙은 싸 이키델릭의 영향권 아래 있었지만, 무디 블루스는 플라 워 무브먼트나 환각 등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이들 은 시대의 조류와는 관계 없이, 각자가 멀티 플레이어 인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악기들로부터의 자유로 운 사운드 조합을 특징으로 하는 서정적인 음악을 행했 던 밴드이다. 또한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과 더불어 멜로트론의 음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겨 사용했던 마 이크 핀더(Mike Pinder)에 의한 '우주적'인 사운드 역시 무디 블루스라는 색깔을 이루는 요소이다. 하지만 여타 심포닉 밴드들의 작품에서 들을 수 있는 멜로트론과 이 들의 사운드는 커다란 느낌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 들은 스케일 큰 웅장함이 아닌 벨벳과 같은 부드러움과 포근함, 소박함을 담아낸다. 밴드의 실질적인 데뷔작이 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에서부터 그러한 요소는 어김없 이 드러난다. 많은 프로그레시브 팬들이 최초의 '프로그 레시브적' 시도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앨범을 꼽는 이유는 단순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라는 외형적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지는 않지 만 '하루'라는 주된 컨셉트는 아침, 점심, 저녁의 시간순 으로 배치되어 일정한 질서를 따르고 있으며 각 파트에 있어서의 사운드 역시 정연하게 배치되어 부담없이 들 을 수 있는 구성을 이룬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 계>에서 차용한 주제는 오케스트레이션과 멜로트론으 로 재해석이 되었고, 이들만의 독특한 서정으로 표출이 된다.

BARCLAY JAMES HARVEST / Once Again ('71, Harvest)
19558.jpg 이른바 '목가적' 또는 '전원적'인 사운드를 구사했던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는 중후반기의 보다 록적인 사 운드로 전환하기 이전까지는 영국적인 향취를 듬뿍 담 은 전형적인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 밴드였다. EMI 산 하의 프로그레시브 전문 레이블인 하베스트(Harvest)
소속 시절의 앨범들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 는데,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관악기, 그리고 멜로트 론의 사운드는 밴드 초기의 트레이드마크를 이루던 요 소들이었다. 하지만 여타 서정파 심포닉 그룹들과의 명 확한 차이점은, 이들의 음악에는 마치 포근한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은 기운이 서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건 분명 햇살 가득한 한낮도 별빛 반짝이는 밤도 아니 다. 멤버들의 개인기는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이지만 그들의 어우러짐은 가장 은은한 아름다움이 되어 퍼진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인 이 작품에서 그러 한 요소들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후에 에니드(The Enid)를 결성하는 로버트 존 갓프리(Robert John Godfrey)가 앨범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했으며, 여덟 곡의 수록곡들이 지니는 서정성의 농도는 이루 말할 수 가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초기 걸작인 대곡 <She Said>의 멜로트론 사운드와 수백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명곡 <Mocking Bird>에서의 브라스, 스트링, 기 타, 드럼의 급박한 질주가 빚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양은 무한으로 치닫는다.

GENESIS / Nursery Cryme ('71, Charisma)
?module=file&act=procFileDownload&file_srl=2457&sid=7847c0d0f4f090d117f1805a0f95530e후배 그룹들-특히 네오 프로그레시브 계열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밴드 중 하나인 제네시스는 일찌 기 무대에서의 연극적인 장치와 분장을 사용한 공연 즉 씨어트리컬 록(Theatrical Rock or Rock Th tre)의 형 태를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것의 완성은 더블 컨셉트 앨범인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74)
에서 이루어졌다고 여겨지지만 그 시작은 통산 세 번째 작품인 이 앨범에서이다. 이들에게는 늘 (특히 르네상 스 시기의) 귀족과 같은 고상한 기품이 배어 있는 듯하 다는 인상을 가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커버의 영향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꼭 빅토리아 여왕 통치시대 의 상류층의 모습을 그린 일련의 커버 아트워크들-『 Nursery Cryme』, 『Foxtrot』('72),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3), 『A Trick Of The Tail』('76)-이 아니더라도 이들의 음악에는 영국 특유 의 전통적인 멋이 어려 있다. 그건 고요함 속의 역동성 이며 명쾌하게 떠오르는 옛 꿈과 같은 그런 것이다.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과 밴드의 창의력이 최고 조에 달해 있던 시기에 발표된 이 걸작은 제네시스의 본령(本領)을 담고 있는 앨범으로, <The Musical Box>와 <Seven Stones>, 그리고 특히 <The Fountain Of Salmacis>에서의 멜로트론의 사용이라든 지 곡 전개에 있어서의 완급 조절 등은 이후 이태리의 PFM이 자신들의 모델로 삼은 스타일이기도 하다. 다분 히 신화와 동화적인 내용의 가사와 완전한 형식의 확립 이 돋보인다.

PINK FLOYD / The Dark Side Of The Moon ('73, Harvest)
dark_side.jpg 이 앨범이 아트 록 뿐만 아니라 록사(史)에서 차지하 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 다. 빌보드지의 앨범 차트에 얼마나 오랜 기간 올라 있 었다느니 판매량이 얼마나 된다느니 하는 것은 중요하 지 않다. 프로그레시브라는 카테고리에 있으며 이토록 오랜 기간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요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발매된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꾸준히 팔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앨범의 사운드에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밴드의 다른 앨범들, 즉 『The Wall』('79)이나 『Wish You Were Here』('75), 『Animals』('77) 등과 같은 앨범이 지니 는 위상 또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우선 이 앨범을 통해 이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완벽한 멤버들간의 조화를 이루었다 고 평가되며 이는 정신적으로 가장 원숙한 시기의 안정 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여진다. 닉(Nick Mason)과 릭(Rick Wright), 로저(Roger Waters)와 데이빗(David Gilmour) 각자의 이토록 확실한 역할 분담과 화합은 이후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컨셉트 앨범 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앨범의 가치는 더해진다. 일반적 인 개념으로서의 '음악' 이외의 소리에 대한 밴드-특히 로저-의 관심은 내면의 광기, 소외, 죽음, 영속(永續)이 라는 내용에서의 컨셉트와 더불어 사운드에서의 컨셉트 를 이루어냈다. 심장의 박동소리, 기분 나쁜 웃음소리, 호흡소리, 발자국소리, 금전등록기의 소리 등, 이 일련 의 비트(beat)들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결국 음악과 소음의 경계는 의미를 잃게 된다. 각 멤버들이 사용한 첨단 악기와 장치들에 실린 재능은 알란 파슨스의 멋진 솜씨로 혼합되고 다듬 어져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꿈으로 재창조되었다.

YES / Close To The Edge ('72, Atlantic)
Close%20To%20The%20Edge_front.jpg예스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뛰어난 연주인들의 집 단이다. 각 멤버들의 개인기는 이들의 모든 앨범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며, 가장 단순한 밴드명과는 달리 가장 복잡한 사운드 구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들 또한 많 은 멤버 교체를 겪으며 사운드의 변화를 이루었는데,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스티브 하우(Steve Howe),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 빌 브루포드(Bill Bruford), 릭 웨이크만(Rick Wakeman)이라는 최상의 라인업으로 활동했던 2기 시절-이 앨범을 비롯하여 전 작인 『Fragile』('71)과 『Yessongs』('73)까지-은 그 야말로 최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였다. 짜임새 있는 구성 과 빈틈없는 연주, 그리고 곡들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이들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되는 앨범은 『Fragile』이 라 할 수 있지만,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와 선율적인 아 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전작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최초의 한 면짜리 대곡인 타이틀곡에 서의 각 파트별 진행은 독립적인 사운드들의 완벽한 조 화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으며 <And You And I>의 화려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멜로트론 사운드는 가 장 '예스적인' 서정미를 보여준다. 예스를 얘기하며 빠 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커버 아트이다. 전작 에 이어 로저 딘(Roger Dean)이 표현한 또 하나의 환 상은 '떠 있는 섬(Floating Island)'이다. 재킷을 펼쳤을 때 눈 앞을 가득 채우는, 구름 속의 신비로운 섬의 환 상적인 모습은 <And You And I>의 회화적 형상화인 것만 같다.

CAMEL / Moonmadness ('76, Deram)
moonmadness.jpg 소위 '서정파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에 포함되는 그 룹들에 있어 그들의 사운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악 기는 바로 키보드이다. 가장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아트 록 밴드 중 하나인 카멜 역시 키보드의 사운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그룹이다. 밴드의 통산 네 번째 작품인 이 앨범에서도 어김없이 그 화려한 음(音)의 물 결은 커다란 강이 되어 흐른다. 그 주인공은 피터 바든 스(Peter Bardens)로 초, 중기 카멜 사운드의 핵심을 이룬 것은 그의 풍부한 키보드음의 향연과 앤디 레이티 머(Andy Latimer)의 여성적이고 깔끔한 기타 사운드였 다. 물론 오랜 기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모든 앨범에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포근함이 공존하며 듣는 이를 편안한 감정으로 이끌지만, 이들의 후기작들에서 늘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역동성의 부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피터 바든스 재적 시절의 작품들에 담긴 넘치는 활력은 초기작들을 후기작들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을 이루고 있다. 대곡 지향의 구조와 록적인 사운 드로 사랑받았던 『Mirage』('74)와 클래시컬하고 짜임 새 있는 『Snowgoose』('75)와 더불어 이들의 최고작 이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은, 수려한 곡의 진행과 탄탄 한 멜로디 라인에 실린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를 특징 으로 하는 작품이다. <Lady Fantasy>와 함께 가장 사 랑받는 초기 명곡 <Song Within A Song>의 서정성은 최고의 감흥을 전해주며, <Chord Change>의 중반부에 서 들을 수 있는 앤디의 아름다운 기타와 피터의 하몬 드 오르간, 키보드가 이루어내는 감미로운 분위기 또한 일품이다. 리듬 파트 역시 강약의 적절한 조절로 멜로 디를 탄탄히 뒷받침해준다. 또 하나, 앤디 레이티머의 잔잔한 플루트와 쏟아지는 멜로트론, 아름다운 기타와 보컬 머신을 사용한 몽롱한 보컬이 혼연일체가 되는 <Air Born>에 이르면 그 짙은 향내가 온 방안에 가득 퍼져 공간을 채운다.

EMERSON LAKE & PALMER / Trilogy ('72, Island)
re_Trilogy-Front.jpg록 음악에 있어서 무그와 피아노 등 키보드 신서사이 저의 본격적인 도입과 정착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 들 중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는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재능을 유감없이 쏟 았던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등장은 여러 면에 서 큰 의의를 지닌다. 크림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 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등에 의해 완전히 정 립된 '3인조'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록 밴드'는 이후 키보드를 중심으로 하는 아트 록 밴드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는데, 이태리 의 라떼 에 미엘레나 오르메, 트립, 독일의 트리움비라 트, 네덜란드의 트레이스 등이 모두 EL&P로부터 큰 영 향을 받았던 것이다. 나이스, 킹 크림슨, 어토믹 루스터 (Atomic Rooster) 등 이들의 화려한 전적을 굳이 말하 지 않더라도 이 3인의 재능은 각 앨범들을 통해 충분히 드러나고 있으며 그 정점에 위치하는 앨범이 바로 『 Trilogy』이다. 역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전작 『Pictures At An Exhibition』('71)에서 보여주었던 다 소 '과도한' 실험과 즉흥성은 이 앨범에 이르러 완전히 안정된 상태로 접어들었고, 각 개인기의 멋진 조화 역 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The Endless Enigma> 의 2부작이라든지 <Trilogy>에서의 완벽한 소리의 구 축미는 이들이 수퍼 그룹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듯한 차가운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의 음울한 울림, 가 벼운 타악기 리듬과 어두움을 증폭시키는 신서사이저의 하나됨: <From The Beginning>은 과연 명곡으로 불 릴만하다. 이 앨범에서 '빈틈'이란 찾아볼 수 없다.

RENAISSANCE / Scheherazade And Other Stories ('75, BTM)
Scheherazade.jpg 꽤나 독특한 역사를 가지는 르네상스는 최초 밴드명 이 사용된 이래 약 30년 동안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를 내세운 세 개의 그룹으로 맥을 이어 왔 다.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인 키스 렐프(Keith Relf)와 드러머 짐 맥카티(Jim McCarty)에 의해 결성된 1기 르 네상스가 시도했던 클래식과의 접목은 거의 완벽한 새 로운 음악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이름은 클래시컬 아트 록의 대명사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애니 해슬럼(Annie Haslam)으로 대표되는 2기 르네상스는 1기의 클래시컬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 수많 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표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변주곡인 이 앨범 은 2기 르네상스의 네 번째 작품으로, 전작들과 마찬가 지로 그들의 고전적인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 다. 국내에서는 이들의 대표곡으로서 많이 알려진 <Ocean Gypsy>가 사랑받았지만 앨범에서 가장 주목 되는 곡은 24분여의 조곡 <Scheherazade>라 할 수 있 다. 앨범의 성격을 극명히 드러내는 이 곡은 총 아홉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과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 애니의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 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서사적인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구조를 지니는 이야기라는 <천일야화>를 표현 한 작품답게 뛰어난 양식미를 자랑한다. 1기의 제인 렐 프(Jane Relf)가 지닌 소박함과 3기의 스테파니 아들링 턴(Stephanie Adlington)의 파퓰러한 감각의 장점을 고 루 갖춘 애니 해슬럼의 하늘을 나는 듯한 목소리가 귓 가를 맴돈다.

 

5. 하위 장르 및 대표 앨범
 5.1. Symphonic

적어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굴 되고 소개되기 이전에 프로그레시브 록은 심포닉 록과 동일시되어 있었다. 비교적 잘 알려진 대부분의 초기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음악 양식이 웅장하고 스케일 큰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그레시브 의 많은 하위 장르 중에서도 심포닉으로 분류할 수 있 는 밴드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 음악은 고전음악, 그 중에서도 교향곡의 형식과 내용의 충실한 계승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앞서 언급된 무디 블루스의 교향악적 시도처럼 본격적인 오 케스트라를 도입하는가 하면, 다양한 키보드군(群)이 이 루어내는 풍성한 소리를 특징으로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장르에서 가장 중시되는 악기는 키보드 파트이다.
전형적인 교향곡이나 조곡, 협주곡 또는 소나타의 형태 를 취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현란한 악곡의 전개와 멤버 들의 개인기를 중시하는 경우 또한 흔하게 볼 수 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초기 제네시스나 킹 크림슨, 무디 블루스, 예스, 카멜 등 대부분의 수퍼 그룹들을 이 범주 에 넣을 수 있는데, 수많은 이태리의 수퍼 밴드들과 유 럽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밴드들, 그리고 미 국과 일본의 여러 밴드들이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범 주에 포함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METAMORFOSI / Inferno ('73, Italy, Vedette)
METAMORFOSI___INFERNO.jpg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의 키보드의 중요성은 앞에서도 수차례 언급되었다. 키 보드 연주가 주(主)가 되는 무수한 프로그레시브 걸작 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탈리안 프로그레시 브 록 신에서 최고의 심포닉 앨범을 꼽으라 할 때 많은 팬들은 메타모르포시의 2집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 을 치켜든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현대 사회 라는 시점에서 각색하여 음악화한 컨셉트 앨범이며 동 시에 완벽한 한 편의 록 오페라이다. 건반 주자 엔리코 올리비에리(Enrico Olivieri)의 다양한 키보드군(群), 즉 피아노, 무그, 하몬드 오르간, 교회 오르간과 멜로트론 의 화려한 사운드들이 시종일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이는 방코나 라떼 에 미엘레, 무제오 로젠바하 등이 들 려준 심포닉 사운드를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기복 없이 텁텁하게 전개되는 지미 스피탈레리(Jimmy Spitaleri)의 투박한 보컬이 지닌 약점-물론 그것이 이 태리 밴드들의 매력일 수도 있지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각종 키보드와 드럼의 어우러 짐에 귀를 맡기고 있노라면 40분이라는 시간은 단숨에 몸으로 녹아든다.

MUSEO ROSENBACH / Zarathustra ('73, Italy, Ricordi)
MUSEO_ROSENBACH___Zarathustra.jpg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인 이 앨범의 타이틀 조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놀라움과 흥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프로그레시브가 뭔지도 몰랐고 그룹 이름도 무 슨무슨 바하였다는 기억만을 가지고 레코드 숍을 헤맸 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한 중고 가게에서 이 앨범을 발견했다. 심장은 요동하기 시작했 고 호흡까지 가빠지는 듯했다. 조심스레 집어 들고 주 인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눈을 치켜 뜨 며 흘끗 쳐다본 주인이 되묻는다. "살거야?" "예..." "10 만원 있어?" "..." 조용히 내려 놓고 가게 문을 나선 나 는 이 나라를 원망했다... 음악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학생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던 이 앨범에는 단 한 번 재능을 불살랐던 밴드의 음악적 혼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니체의 초인(超人) 사상을 음악화한 이 조 곡의 빈틈없는 구성과 하드 록적인 전개, 심포닉한 분 위기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며, 무 엇도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쉴새없이 난타 하는 드럼, 하몬드 오르간과 멜로트론의 완벽한 조화는 가장 돋보이는 부분인데, 놀랍게도 이 곡은 원래 플루 트와 색소폰만을 위해 작곡되었던 것이라 한다. 아마도 니체가 살아서 이 곡을 들었다면 그는 바그너보다는 무 제오 로젠바하라는 밴드에 더 매료되었을지도 모를 일 이다.

PULSAR / Halloween ('77, France, CBS)
PULSAR_HALLOWEEN.jpg얼마 전 미국에서 실시된 대중음악에 관한 설문조사 중 '기억에 남는 후렴구나 리프'에 대한 항목이 있었다.
가장 많이 답해진 곡은 놀랍게도 데렉 앤 더 도미노스 (Derek & The Dominos)의 <Layla>였다. 그럼 아트 록 팬들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곡들이 등장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잔잔히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스캣 <Halloween Song>이 아련히 떠 오를지도 모른다. 1분이 갓 넘는 짧은 부분이지만 이 곡이 남기는 여운은 무엇보다도 강렬하기만 하다. 프랑 스의 서정파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 펄사의 세 번째 앨범은 커버의 음울한 색채와 캐릭터의 표정에서 드러 나듯 가을 저녁의 쓸쓸한 감상(感傷)과 같은 분위기로 가득하다. 각각 네 개와 다섯 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조곡은 프랑스식의 뒤틀린 (듯이 느껴지는) 감 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어로 불리워지는 가사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사운드 자체는 매우 영국적이다.
하지만 어두움, 공포, 환상 등의 이미지로 가득함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이나 세련되어 있다. 자끄 로망 (Jacques Roman)의 키보드와 멜로트론은 격한 감정과 고즈넉한 슬픔 사이에 위치한다. 도입부의 <Halloween Song>은 실비아 엑스트룀(Sylvia Ekstr m)이라는 소 녀에 의해 불리워졌고 그 원곡은 북아일랜드의 민요인 <Londonberry Song>이라 한다.

TRIANA / Triana ('75, Spain, Movie Play Gong)
Triana.jpg '플라멩코 록(Flamenco Rock)'으로 통칭되는 스페인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분파는 트리아나와 그라나다로 대표된다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전통적인 요소를 보다 더 내포하여 완벽한 융합을 이룬 그룹으로 평가된다.
원래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기원을 두는 집시 무곡의 일종인데, 이 민속 춤곡의 요소를 록에 접목시 킨 결과로서 탄생된 트리아나의 데뷔작은 이들의 모든 앨범들 중 가장 '정열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퓨전 재즈계의 명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를 사사(師事)한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Eduardo Rodriguez)가 들려주는 플라멩코 기타의 명징한 울림과 예수 델라 로자(Jesus De La Rosa)의 멜로트론, 무그 를 비롯한 짙은 키보드군, 그리고 후앙 호세 팔라치오 스(Juan Jose Palacios)의 타악 리듬의 어울림은 여타 유러피안 아트 록 앨범들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 위기를 이루어낸다. 국내에서도 사랑받았던 9분여의 대 곡 <Abre La Puerta>를 비롯한 모든 곡들은 전형적인 심포닉으로 채색되어 있다. 보다 록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이는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역시 남국(南國)의 열정과 이국적인 분위기로 일관하는 이 데뷔작에 가장 많은 손이 가게 된다.

IL BALLETTO DI BRONZO / YS ('72, Italy, Polydor)
2balletB.jpg이 앨범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는 것은 좀 무리인 듯도 싶다. 전형적인 서정미와 유연 한 멜로디의 전개가 아닌 극도의 긴장감과 전위적인 불 협화음이 주가 되는 이 앨범은 하지만 가장 '프로그레 시브한' 앨범 중의 하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도 의 긴장 상태와 극적인 진행을 이루는 작품은 흔치 않 다. 시종일관 숨이 가쁠 정도로 내달리는 키보드와 베 이스, 드럼의 혼연일체된 사운드는 듣는 이의 넋을 빼 앗아버리며 마침내 마약과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의 컨 셉트를 이루는 것은 '사랑의 여신(YS)'이지만, 사운드면 에서 그 이름만으로 연상되는 일말의 낭만성이나 부드 러움 따위는 애초부터 끼어들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울한 베이스의 울림과 코러스, 신비로운 멜로 트론의 소리가 전하는 것은 혼돈과 공포이다. 이는 다 분히 키보디스트인 지안니 레오네(Gianni Leone)의 영 향으로 보이는데, 그의 어두운 면은 마우로 펠로시 (Mauro Pelosi)의 앨범이나 그의 솔로 앨범에서도 확연 히 드러난다. 여하튼 앨범은 흠잡을 데라곤 없을 정도 의 완벽한 구성을 보이며 11분의 대곡인 <Epilogo>에 서 온 몸을 훑는 전율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STEVE HACKETT / Voyage Of The Acolyte ('75, UK, Charisma)
Voyage.jpg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 제네시스 사운드의 핵을 이루 었던 스티브 해킷은 밴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수퍼 그룹 출신 멤버들의 솔로 앨 범들은 대부분 '덜' 프로그레시브한 경향이 많지만, 이 앨범은 여느 어정쩡한 아트 록 밴드들의 음악을 뛰어넘 는 완성도를 지닌 걸작이다. 음악적 동료인 제네시스의 두 멤버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마이크 러더포드 (Mike Rutherford)가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누이 샐리 올드필드(Sally Oldfield)도 참여하였다. 이후 스티브 해킷의 모든 앨범 커버를 도맡게 되는 킴 푸어(Kim Poor)의 신비롭고 몽 환적인 그림은 앨범의 분위기를 적절히 잘 표현해내고 있다. 각각의 곡들이 지니는 이미지는 모두 타로 (Tarot) 카드로부터 차용한 듯하다. 유대교의 여제사장: <Hands Of The Priestess>, 그리스 비교(秘敎)의 사 제: <Shadow Of The Hierophant>, 연인: <The Lovers>, 은둔자: <The Hermit>, 탑: <A Tower Struck Down>, 별: <Stars Of Sirius>, 마법 지팡이의 에이스: <Ace Of Wands> 등 모두가 타로 카드에 등 장하는 캐릭터들로서, 그의 상상력이 빚어낸 사운드로 채색되어 있다. 샐리 올드필드의 아름다운 보컬이 감동 을 주는, 브리티쉬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The Lovers>와 <Shadow Of The Hierophant>의 접속곡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빛난다.

KLAATU / Hope ('77, Canada, Capitol)
klaatu_hope_front.jpg테리 드레이퍼(Terry Draper), 디 롱(Dee Long), 존 월로셕(John Woloshuck)이라는 3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비틀즈의 멤버들이 결성한 밴드라는 소문이 무 성했던 캐나다 출신의 그룹, 클라투의 두 번째 앨범이 다. 실제로 이들의 데뷔작에서의 몇몇 곡들은 그러한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한' 비틀즈 스타일의 연주 를 담고 있었으며, 두 번째 앨범의 첫곡 <We're Off You Know>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더욱 프로그레시브한 면모를 보이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고 있다. 초반부의 두 곡에서 전작에 이은 록적인 성향이 드러난다면 <Around The Universe In Eighty Days> 에서의 웅장한 요소와 A면의 끝곡인 대곡이자 명곡 <Long Live Politzania>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이 앨범을 충분히 심포닉 프로그레시 브의 대열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의 진짜 매력은 B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The Loneliest Of Creatures>와 <Prelude>의 접속곡을 통 해 들려지는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멜로디의 진행과 클 래식 소품을 연상케 하는 간주 부분, 그리고 다양한 코 러스의 사용과 완벽한 곡 구성 등은 음악 듣는 즐거움 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국내에서 사랑받 았던 타이틀곡의 서정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장 손 이 많이 가는 앨범들 중의 하나이다.

 5.2. Classical

사실상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와 '클래시컬 아트 록'에 대한 장르의 명확한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하지만 여기서 프로그레시브와 아트 록이라는, 두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차이와 단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둘 사이에서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뉘앙스와 분위기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데, 보다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느낌이 드는 음악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에 포함시킨다면 클래시컬 프로그레시브는 기존의 클래식 악곡의 변주나 보다 서 정적이고 섬세한 감성을 드러내는 음악 또는 바하나 베 토벤, 비발디 등의 스타일을 융합한 음악이라 할 수 있 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분위기'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 니다. 클래식 연주가들의 연주에서 볼 수 있는 기교나 클래식의 방법론을 차용한 작품들도 이에 포함된다. 후 자의 경우에는 나이스로부터 비롯된, 키보드 주자가 주 축이 되는 3인조의 형태를 취하는 밴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1, 2기의 르네상스, 에니 드를 비롯하여 이태리의 많은 서정파 그룹들, 네덜란드 의 트레이스(Trace)나 엑셉션(Ekseption), 코다(Coda), 그리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을 꼽을 수 있다.

LOS CANARIOS / Ciclos ('74, Spain, Ariola)
Ciclos.jpg 재화 가치로서 음악을 바라보았던 이들에게 이 앨범 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물론 이 지면에 소개되는 많은 앨범들이 예전에 음반 중개상들의 주머니를 꽤나 불려 주었을 터인데, 이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던 그 시절에 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앨범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 유가 있었겠지만, 음반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뒤틀린 시장 구조하에서의 그러한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쓴웃 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앨범이 외국에서도 고가에 거래되었던 까닭은 앨범 자체의 희귀성이라는 요인 외에 뛰어난 음악 자체에 그 원인이 있었다. 커브 드 에어, 스카이(Sky), 앙그라(Angra), 그리고 국내 가 수 이현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음악적 모티브로 사용했던 바로크 시대의 명 곡인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작품을 완전히 재해석하여 한 편의 록 오페라로 만들어 놓은 이 앨범으로 까나리오스 는 자국인 스페인은 물론 전세계의 아트 록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지루하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주 훌륭한 아트 록 앨범이라 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제 선율의 변주와 록적인 즉 흥 연주, 적절한 보컬과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이루 는 심포닉한 분위기 등에 매료된 이들에게는 오히려 무 지치(I Musici)의 연주보다 더 정감 있게 느껴질 수 있 기 때문이다.

LATTE E MIELE / Passio Secundum Mattheum ('72, Italy, Polydor)
Miele_front.jpg아직도 많은 아트 록 팬들은 이 앨범이 국내에 발매 되었을 때의 그 흥분과 가슴 설렘을 잊지 못할 것이다.
90년대 초반, 프로그레시브 록의 물결이 국내의 음악 팬들에게 밀려 닥쳤을 때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이태리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음악들이었고 그 중 최상위에 위치해 있던 앨범이 라떼 에 미엘레의 데 뷔작이었다. 이탤리안 프로그레시브를 얘기하며 결코 빠질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인 이 앨범을 들으면,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아련한 감동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 터 아스라히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발매 당시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했던 이 앨범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작품으 로, 치밀한 구성과 흠잡을 데 없는 연주, 그리고 오케스 트레이션과 코러스 등이 완벽하게 조화된 걸작이다. 음 악의 형태는 약간의 프리 재즈와 하드 록의 요소가 포 함된 전형적인 클래시컬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인데, 놀 라운 것은 이 방대한 스케일을 이루는 모든 것이 단 세 명의 멤버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며 더군다나 이들이 당시 10대의 소년들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앨 범의 어디에서도 미숙한 구석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종교적인 경건함과 숙연함에서 오는 감동은 바하의 <마태 수난곡>에 버금갈 정도이다. 최후의 만찬과 유 다의 배신, 체포와 골고다 언덕으로의 오름, 절망과 부 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고행(苦行)이 때론 격한 감정 으로 때론 한없이 슬픈 눈물로 형상화되어 음악에 실린 다. <Il Calvario>와 <Il Dono Della Vita>로 이어지는 종장(終章)은 아트 록을 듣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주 고 있다.

 5.3. Psychedelic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영향은 영국에서 프로 그레시브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60년대 말에 등장했던 많은 그룹과 아티스트들의 음악에는 이 싸이키델릭의 향취가 배어나는데, 발생지인 미국의 것 과는 달리 보다 짙은 몽롱함을 담고 있었다. 핑크 플로 이드의 데뷔작에서 들을 수 있는 극도의 환각은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Grateful Dead)의 '스며드는 듯한 은근함'과는 다른 것 이었고, 블루스적인 감성을 담은 에릭 버든이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의 실험성 역시 영국만의 독특 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싸이키델릭의 영향을 극명하게 드러냈으며 그것이 새로운 형태로서의 록의 주류로 등장했던 나라는 바로 독일이다. 아트 록 신에 서 독일의 음악은 아래 소개될 전자음악과 더불어 싸이 키델릭으로 대표된다 할 수 있다(이 두 장르는 물론 서 로 커다란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 통분모를 지닌다). 그래서 우리에게 알려지거나 그렇지 않은 많은 독일 밴드들은 싸이키델릭의 영향권에서 벗 어나지 않았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환 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음악을 들라면 아래의 앨범들 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GROBSCHNITT / Ballermann ('73, Germany, Brain)
63344.jpg '...안녕하시오, 친애하는 친구들! 여기 내가 다시 음 악을 가지고 왔소. 자, 이 매우 멋진 앨범을 가지고 여 러분께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오...'
혀를 돌돌 굴리며 초등학교 1학년생이 교과서를 읽듯 또박또박(혹은 장난스레) 말하는 에록(Eroc)의 막걸리 트림같은 목소리로 앨범은 시작된다. 가장 '독일적인'
사운드와 음악 스타일을 들려주는 밴드 그롭슈니트는 실험정신과 정통성, 완고함과 유머를 동시에 갖춘, 전형 적인 싸이키델릭과 심포닉한 면모를 동시에 가지는, 차 가운 전자악기로 따스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 악 집단이다. 독일 록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에는 이 앨범에 수록된 <Nickel-Odeon>과 이후의 작품인 <Anywhere> 정도 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밴드는 독일 북부의 작센 지 방에서 결성되었으며 1차 대전 당시의 베스트팔렌 군악 대의 명칭을 그대로 밴드명으로 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이 앨범은 독일 록사상 손꼽히는 걸작의 하나로 인정된 다. 독일 싸이키델릭의 산실인 브레인(Brain) 레이블을 통해 두 장의 LP로 발표되었으며 음울한 환각미와 서 정성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두 번째 LP의 앞뒷면을 가 득 채우는 대작 <Solar-Music>만으로도 그 가치가 인 정되고 있다. 후에 록 떼아트르의 형식으로 공연되었던 실황은 『Solar Music-Live』('78)로 발표되는데, 이 앨범의 라이브 버전이나 원곡이나 모두 지독히 싸이키 델릭하다. 그것은 가슴 속의 짜증을 단번에 씻어주는 그런 환각이다.

AMON DUUL II / Wolf City ('72, Germany, United Artists)
Wolf.jpg 독일의 아트 록은 단순히 음악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아트 록이라는 형태는 수많은 '표현 방 식'들 중의 하나이며, 그것을 통해 방대한 양의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개인 또는 집단 의식을 숨김없이 드러 내기도 한다. 애초에 뮌헨에 근거를 둔 음악 공동체로 출발했던 아몬 뒬은 집단 내부의 사상적 차이로 두 개 의 그룹으로 분열이 되었다. 사회 참여적인, 정치적 노 선을 견지했던 아몬 뒬 I(Eins)와 순수 음악을 지향하 려는 II(Zwei)로 나뉘어진 이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음 악적 방향 역시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I가 보다 급진 적인 형태-싸이키델릭과 즉흥성에 바탕을 둔-의 음악 을 행했다면 II는 더 환상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에 가 까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물론 재즈적인 즉흥성과 무 정부적 혼돈은 두 팀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기도 하다. II의 여섯 번째 앨범은 그룹의 음악적 변화가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밴드가 지향하 는 사운드의 보다 구체화된 모습은 이전의 몽환과 혼돈 에서 서정과 질서로의 전이(轉移)를 이루었고, 그것은 전작들에 비해 더욱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을 통해 확고해진다. 여성 싱어 레나테 크뢰텐슈반츠 크나 우프(Renate "Kr tenschwanz" Knaup)의 히스테릭한 보컬이 빛을 발하는 <Surrounded By The Star>의 아 름다움과 한 편의 환상을 보는 듯한 몽롱한 연주곡 <Wie Der Wind Am Ende Einer Stra e>, 심포닉한 면모를 보이는 <Deutsch Nepal>, 그리고 전형적인 싸 이키델릭 곡 <Wolf City> 등 독일적인 감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OSANNA / Palepoli ('73, Italy, Fonit Cetra)
Palepoli.jpg 수많은 이태리 출신의 밴드들 중에서도 이들만큼 다 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실험을 행했던 그룹은 드물다.
치타 프론탈레(Citta' Frontale)와 우노(Uno), 그리고 노 바(Nova)의 세 팀으로 분열되기 이전에 이들이 발표했 던 네 장의 앨범들에는 각 작품들마다 서로 다른 색깔 이 채색되어 있다. 데뷔작 『L'uomo』('71)에서의 퓨전 적 감성에 실린 폭발적인 에너지와 『Milano Calibro 9 』('72)의 고전적 아름다움, 『Landscape Of Life』 ('74)에서의 하드 록적인 감수성이 그것이다. 물론 세 번째 작품인 이 앨범 『Palepoli』에서도 다른 앨범들과 구별되는 강렬함이 생생히 전개된다. 무대에서의 분장 과 의상, 연극적인 요소 등 씨어트리컬 록을 표방했던 이들의 사운드에 분명 심포닉한 분위기는 포함되어 있 지 않다. 엘리오 다나(Elio D'anna)의 거친 플루트 연 주는 제스로 툴의 이안 앤더슨의 그것에 비해 훨씬 섬 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표출해내며 다닐로 루스티치 (Danilo Rustici)의 기타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열 정적인 힘을 내뿜는다. '옛 도시'라는 의미의 타이틀은 이들의 출신지인 나폴리(Napoli; 새로운 도시)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 라도 하듯 <Oro Caldo>와 <Stanza Citta>에서 외쳐대 는 가사는 나폴리의 토속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다. 앨범에는 단 세 곡이 담겨 있지만 곡의 수는 그다 지 중요하지 않다. 민속적인 색깔과 강한 록적인 요소 와 전위적인 진행, 변박과 조바뀜 등의 다양성은 곡의 구분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 립과 모순들, 즉 토속적인 리듬과 극히 진보적인(전위 적인) 선율, 마치 불협화음과도 같이 진행되는 여러 악 기들의 울림과 평온함을 전해주는 멜로트론의 향기, 그 리고 모든 것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주술적인 분위기는 이 앨범을 아트 록계의 가장 독특한 작품의 대열에 위 치시킨다.

 

 5.4. Space

저 먼 우주를 유영하는 듯, 아름다운 환상과 지독한 환각의 경계에 서있는 듯한 음악이 스페이스 록이다.
초기 스페이스 록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A Saucerful Of Secrets>를 통해 우리는 스페이스 록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 혼돈과 질서의 혼재(混在), 무의 식과 의식의 충돌, 꿈과 현실의 교차, 그리고 점차 흐릿 해지는 명징(明徵)한 사고(思考)...

ARTHUR BROWN'S KINGDOM COME / Journey ('73, UK, Polydor)
1973.jpg그의 초기 밴드인 크레이지 월드 오브 아써 브라운 (Crazy World Of Arthur Brown)이라는 그룹명에서부 터 어느 정도 짐작이 되지만, 아써 브라운이라는 인물 은 영국의 록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인(奇人)
이다. 초기의 히트 싱글 <Fire>의 프로모션을 위해 불 이 붙은 헬멧을 쓰고 TV에 출연할 정도였으니 당시 그가 불러일으켰을 충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 기괴한 무대 분장과 행위들은 이후 씨어트리컬 록으 로 분류되는 장르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일부에서는 그 를 쇼크 록(Shock Rock)의 창시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블루스에 기반한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들려줬던 첫 밴 드의 해산 후 결성했던 킹덤 컴은 이전에 비해 키보드 의 영향력이 더욱 강조된 하드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 는 음악을 선보였다. 세 번째 앨범이자 최고작으로 평 가되는 『Journey』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록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SF적 상상력과 효과음의 연속, 그리고 넓은 공간을 비행하는 듯한 우주적 구성의 탁월함은 이 앨범을 여타 스페이스 록 작품들과의 확연한 구분을 이 루었다. 한때 국내 심야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그래서 (썰렁한 자켓의) 해적 라이센스로도 발매되었던 작품으로 명곡 <Time Captives>와 <Superficial Roadblocks>가 담겨 있다.

 5.5. Electronics

독일의 록 음악에 공통적으로 배어 있는 요소는 '차 가움'이다. 이것은 그들 특유의 민족성과 기계공업의 강 국이라는 음악 외적인 요소의 반영이기도 하다. 70년대 의 독일 록 음악을 일컫는 '크라우트 록(Kraut Rock)'
이라는 별칭에는 독일만의 그러한 특색이 잘 드러난다.
전자악기의 기계적인 사운드로 따스한 감정을 표출했던 반젤리스나 장 미셸 자르와는 달리, 독일의 전자음악가 들은 당시 서구사회에 유행처럼 번지던 신비주의와 명 상의 요소를 음악에 실어 마치 '의식의 흐름'과도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결코 선율적이지 않으며 극적인 구성을 가지지 않는다. 언뜻 지루한 효과음의 끊임없는 나열처럼만 보이는 초기 그룹들의 사운드는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칸(Can) 등의 혁신자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클라우스 슐츠(Klaus Schulze)나 탠저린 드림, 초기 포폴 부 등의 음악이 우 주적이고 종교적인, 보다 정신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한 다면 이들은 거기에 '감성'을 담아내었다. 하지만 그 감 성은 인간의 것이 아닌 인격화된 기계의 것으로 생각된 다. 기계문명 사회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진보의 결 과에 대한 답을 미리 제시하려는 듯. 2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이들은 테크노와 포스트 펑크 성향을 따르는 아티스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또는 그 장르의 선구격 으로서 현대에 와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다.

ASH RA TEMPEL / Ash Ra Tempel ('71, Germany, Ohr)
ash_ra_tempel_ash_ra_tempel_front.jpg혼돈(Chaos). 질서(Cosmos)가 있기 이전에, 생명과 빛과 물질과 의식(意識)이 있기 이전에 존재하던 유일 한 형태(또는 상태)는 혼돈이었다. 태초의 혼돈에 대해 서 완벽하게 무지(無知)한 인간은 모든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던 중에 혼돈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이성(理性)과 논리의 영역과는 전 혀 별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느끼고 또 그 모습 을 그려내기 위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유일 한 통로는 무의식과 감성과 꿈의 영역의 확장이었다.
논리적 사고(思考)에 익숙해지기 이전의 인간들이 가졌 던 우주관, 고대인들의 신앙에는 놀라운 꿈이 담겨져 있다. 무한(無限)에의 갈망과 유한성의 인정이라는 모 순된 두 명제의 공존과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 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개념 으로 정립하기에 이른다. 모든 존재의 본질은, 사물과 현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분명 거기에 있을 터였다. (음 악이라는) 가장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여 '그곳'에 다가 서려는 노력이 한 세대 전 독일이라는 땅에서 일련의 음악인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 선두에 선 이들, 하르 트무트 엔케(Hartmut Enke), 마누엘 괴칭(Manuel G tsching), 그리고 클라우스 슐츠의 3인이 표출해내는 혼돈으로의 대항해. 현재가 과거 속으로 질주하고 의식 은 무의식과 교감하며 질서의 우주가 원시의 혼돈으로 역진화한다. 비트는 파괴되고 선율은 해체되며, 남은 것 은 태초의 혼돈과 정적 뿐이다. 환각의 정도와 그 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5.6. Folk

6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포크의 위상은 다른 어느 장 르보다도 더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피트 시거를 위시 하여 우디 거스리, 존 바에즈, 밥 딜런으로 이어지는 반 체제적인 가수들은 통기타를 둘러매고 하모니카를 불며 사회에 대한 항변을 토로했고 대중들은 그들에 열광했 다. 그리고 그 단순한 형태에 록이 덧붙여졌을 때 포크 음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밥 딜런 과 버즈, 버팔로 스프링필드와 닐 영 등이 포크에 기반 한 새로운 록 음악을 선보이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포 크가 전혀 다른 모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도노반은 신 조류인 싸이키델릭 문화에 매료되어 신비주의적이고 환 각적인 분위기와 사운드를 지향했으며 알 스튜어트와 캣 스티븐스 역시 어떠한 '메시지'보다는 음악미학적인 소리의 '구축'에 더 열중했다. 온갖 실험을 마다하지 않 던 영국의 포크 뮤지션들과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에 프 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담아내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조곡의 형태를 도입하는가 하면 고유의 민속 적인 선율에 즉흥성을 가미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이때 유행처럼 등장했던 밴드의 형태는 바로 바이올린과 여 성 보컬의 본격적인 참여이다. 많은 포크 밴드들은 청 아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 싱어를 전면에 내세워 아름다 움을 강조했고 심지어는 록 밴드들의 전유물로 여겨졌 던 멜로트론을 이용하여 아련한 꿈과 같은 사운드를 만 들어내기도 하였다. 정통성을 강조한 영국의 포크와는 달리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지의 포크 밴드들은 자국 의 특성을 담아 더욱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SPIROGYRA / Bells Boots And Shambles ('73, UK, Polydor)
Bells.jpg 예술가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육체적인 힘이 나 권력에 비견할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의 장(場)을 지배하며 제어하는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힘이다. 그것 은 신으로부터 전해지는 천부의 재능이요 노력으로 이 룰 수 없는 위대한 선물, 즉 카리스마(Charisma)이다.
카리스마를 표출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그래서 보는 이 를, 듣는 이를 압도한다. 아트 록계에서도 어김없이 대 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종종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포크라는 장르에 포함되지만, 하드 록보다도 강렬 하고 웅장한 심포닉 록보다도 큰 힘이 느껴지는 음악을 행했던 밴드 스파이로자이라는 마틴 칵커햄(Martin Cockerham)이라는 인물의 카리스마 아래 존재했던 팀 이다. 세 장의 앨범들을 통해 이들이 들려준 음악은 여 느 포크 밴드나 록 밴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요소가 담겨 있었다. 바로 광기(狂氣)이다. 마틴 칵커햄이 뿜어 대는 광기의 양은 매 앨범마다 넘쳐났다. 데뷔작 『St.
Radigunds』('72)에서 극에 달했던 광기는 마지막 작품 인 이 앨범에서 모양을 달리 했다. 격한 에너지의 주체 할 수 없는 듯한 질주에서 내면의 이상(理想) 혹은 꿈 으로의 침잠(沈潛), 동(動)에서 정(靜)으로의 전이, 한껏 드러내었던 외침은 침묵으로 화(化)했다. 그의 카리스 마에 압도된 옛 친구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반려 자의 역할을 했던 여인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하지만 바바라 가스킨(Barbara Gaskin)의 맑은 목소리가 전하 는 포근함만은 여전히 '오래된 술'과도 같이 곁에 머무 른다. 커버에 담긴 깊은 바다빛 우울함은 <The Furthest Point>의 쓸쓸한 관악기 사운드를 통해 드러 나고, 모든 아련한 기억들과 꿈들은 <Old Boot Wine> 에 잠긴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 <In The Western World>를 끝으로 신은 선물을 거두었다.

EMTIDI / Saat ('72, Germany, Pilz)
EMTIDI___Saat.jpg독일의 뮤지션들이 유달리 신비주의(Occultism)를 위 시하여 인간의 정신적 영역으로의 접근에 관심을 쏟았 던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에서 발전을 이룬 싸이키델릭 과 전자음악, 그리고 이들, 엠티디를 비롯한 브뢰셀마신 (Br selmaschine), 횔덜린(H lderlin), 비튀저 운트 베스 트룹(Witth ser & Westrupp) 등이 들려준 신비주의 계 열의 포크는 모두 인간의 내면-꿈, 환상, 환각-이나 우 주를 향한 형이상학적인 관심을 (조금씩이나마) 드러내 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천상의 선율을 만들어낸 바하 로부터, 밤을 찬미하던 낭만시인 노발리스나 괴테로부 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인지도 모른다. 아트 록 계열의 포크 밴드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 껏 담아내는 그룹 엠티디의 음악에도 어김없이 우주가 담겨 있다. 신비롭기 그지없는, 은은히 빛을 내뿜으며 하늘거리는 저 우주화(宇宙花)는 귓가에 들리는 이 아 름다운 음악의 창조 주체인 것만 같다. 소리의 풍성함 과는 달리 이들은 대규모 그룹이 아닌 혼성 듀오이다.
마이크 허쉬펠트(Mike Hirschfeldt)의 어쿠스틱 기타와 나즈막한 보컬, 그리고 캐나다인 여성 싱어인 달리 홈 즈(Dolly Holmes)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멜로트론, 키보 드 연주가 이루는 분위기는 무한한 고요와 같은 신비로 운 시정(詩情) 또는 꿈결같은 한없는 부드러움 그 자체 이다.

 5.7. Jazz

이미 재즈에서의 실험적인 경향은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등 몇몇 '전 위적인'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이후 프 로그레시브 또는 아트 록계에서 볼 수 있는 재즈의 영 향은 바로 즉흥연주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 들리는 코드의 반복과 변환, 그리고 예측 불허의 곡 진행이 그것이다. 일정한 멜로디나 화음은 아예 존재하 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많은 밴드들이 자 신들의 음악에서 재즈적인 즉흥 연주를 포함하고 있지 만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여러 장르들, 즉 심포닉, 싸이 키델릭과 민속음악 등에 이르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사실상 소프트 머신 등과 같은 캔터베리 계열의 밴드나 여타 '실험적인' 경향의 모든 아티스트 및 밴드들의 음 악에는 재즈의 영향 및 요소가 드러난다.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혁신적인 시도 이래 그런 경향은 하나의 필수요건처럼 되어버린 듯.

 5.8. Theatrical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듣기에 가장 껄끄러운 구성을 보인다. 우선 언어 자체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강 한 콧소리와 각 음절마다의 절제된 울림, 그리고 특유 의 억양은 록 음악에 적절하지 않은 듯하며, 그들 고유 의 정서가 담긴 멜로디는 커다란 호소력을 전해주지 않 는다. 그래서 이 나라 출신의 수많은 아트 록 밴드들 중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룹은 이태리나 독일에 비 해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몇몇 서정파 심포닉 밴드 들과 아래 소개되는 씨어트리컬 록 밴드들의 경우는 다 른 어느 그룹들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을 들려준다. 연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록, 즉 록 떼아트르(Rock Th tre)로 불리는 이 장르는 이미 아써 브라운에 의해 시도되었고 제네시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오잔나, 그 롭슈니트 등도 시도했던 음악이다. 프랑스에서 본격적 으로 활성화를 이룬 그룹은 바로 앙쥐와 모나 리자 (Mona Lisa)인데, 이는 공연 무대에서의 의상, 분장, 행 위 등에 의한 분류이기 때문에 음악 자체가 다른 장르 와의 커다란 차이점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심 포닉 록의 스타일을 따른다.

ANGE / Au Del Du D lire ('74, France, Philips)
Ange___Au_dela_du_Delire.jpg망상의 저 너머... 다분히 '프랑스적'인 타이틀에서부 터, 그리고 어딘지 모를 불안과 불균형으로 가득한 커 버에서부터 앨범의 성격은 드러난다. 프랑스 아트 록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그룹 앙쥐의 세 번째 앨범은 프랑스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전형을 제시했음은 물론 동시에 록 떼아트르의 걸작으 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곡들에서 이들 특유 의 (뒤틀린 듯한) 감성이 드러나는데, 앨범의 극적인 분 위기를 주도하는 악기는 바로 기타와 키보드 파트이다.
특히 언어상의 특색으로 인해 다소 거북하게 들릴 수 있는 크리스티앙 드깡(Christian Decamps)의 힘찬 보컬 라인에 어우러지는 멜로트론의 풍부한 음향은 앨범의 전체적인 짙은 향기를 보기 좋게 채색하는 역할을 한 다. 초반부부터 듣는 이를 휘어 잡는 <Godevin Le Vilain>과 전형적인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형식을 따 르는 <Exode>에서의 화려하고 강한 전개도 멋지지만, 역시 앨범의 하일라이트를 이루는 부분은 그야말로 쏟 아지는 멜로트론의 물결에 귀를 내맡길 수 있는 <Fils De Lumi re>와 가장 아름답고 또 드라마틱한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대곡 <Au Del Du D lire>의 접속곡 이다. 정말로 뮤지컬을 보는 듯한, 크리스티앙의 읊조리 듯 '열연하는' 보컬과 후반부의 급작스런 반복 후렴구의 등장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5.9. Canterbury, Chamber (RIO)

샌 프란시스코의 싸이키델릭이나 LA의 메탈, 씨애틀 의 그런지 등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을 일컬을 때 그대 로 지역명이 붙듯, 캔터베리 역시 60년대 말 발생한 한 계파의 음악을 지칭하는 장르명이다. 영국의 동남쪽 켄 트주의 한 도시인 캔터베리 출신의 일련의 아티스트들 에 의해 탄생된 이 음악은 아마도 가장 '영국적인' 사운 드를 표출해내는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짙은 영 국식의 발음과 때론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럽게, 또 때론 난해하게 전개되는 음악들이 지니는 향기는 이들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진다. 와일드 플라워스(Wild Flowers), 소프트 머신과 매칭 몰(Matching Mole)을 이끌었던 로버트 와이어트(Robert Wyatt)를 위시하여 케빈 에이어스(Kevin Ayers), 리차드 싱클레어(Richard Sinclair) 등이 그 핵심에 있던 인물들이다. 챔버 록은 소규모 실내악단의 규모와 유사한 편성으로 붙게 된 이 름이지만, 클래시컬해 보이는 장르명과는 달리 음악 자 체는 오히려 20세기 초반의 현대음악이나 아방 가르드, 프리 재즈를 연상케 하는 구조와 스타일을 따른다. 이 장르에 속해 있는 밴드들의 음악에는 '감성'이라든지 '서정' 하는 따위의 말들은 들어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사실상 헨리 카우나 아트 베어스 같은 그룹들은 캔터베 리 신에서도 대표격인 밴드들로 인정되는데, 이는 두 영역이 지니는 공통 분모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후 일 련의 사회 운동 또는 체제에 반(反)하는 성향을 띠는 이들 집단들의 모임은 록을 통한 저항 운동이라 할 수 있는 RIO, 즉 'Rock In Opposition'으로 형상화를 이룬 다. 헨리 카우 패밀리-프레드 프리스(Fred Frith), 크리 스 커틀러(Chris Cutler) 등을 비롯한 슬랩 해피(Slapp Happy)의 다그마 크라우제(Dagmar Krause), 아트 베 어스 등-를 비롯, 프랑스의 아르 즈와(Art Zoyd), 벨기 에의 위니베르 제로, 프레장(Present), 스웨덴의 잠라 맘마스 만나(Samla Mammas Manna) 등으로 대표되 며, 지극히 '전위적'인 사운드를 통해 표출되는 이들의 음악은 마치 음(音)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나 복잡한 건 축물과도 같다.

CARAVAN / In The Land Of Grey And Pink ('71, UK, Deram)
Caravan___In_The_Land_Of_Grey_And_Pink.jpg이걸 과연 '프로그레시브'라 할 수 있을까? 핑크빛 가 득한 앨범 커버가 주는 이미지처럼, 이 앨범은 밝고 화 사하고 또 꾸밈없이 소박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이건 그다지 특별하지도 뛰어나 보이지도 않는다. 참 서정적 이고 목가적이며 물 흐르듯 부담없는 소리들이 부드럽 게 흐르지만, 너무 싱겁다. 그러나 캔터베리 음악의 매 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비록 소프트 머신의 난해한 재 즈 지향성의 음악이나 헨리 카우의 전위적인 스타일이 들려질 때의 부담감이란 건 있지만, 적어도 카라반의 음악은 누구라도 쉽게 들을 수 있다(물론 '쉽게'라는 말 은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단숨에 쏙 들 어온다는 뜻은 아니다. 캔터베리 음악에서 '아름다운 멜 로디'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비교적 파퓰러한 성향을 띤 캔터베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 품은 밴드의 통산 세 번째 앨범이다. 보통 이들의 최고 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애수어린 선율이나 극적인 구 조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팬들에게는 작품의 완성도나 평가에 비해 그다지 높은 반응을 얻고 있지는 않다. 듣 기 쉬운 네 곡의 중, 단편들과 LP 한 면을 가득 채우는 22분여의 조곡 <Nine Feet Underground>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자기한 관악 사운드와 기복 없는 선율은 앨 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Nine Feet Underground>의 끝부분을 수놓는 싸이키델릭한 분위 기와 '무덤덤한' 멜로트론의 진행은 매우 인상적이다.

 5.10. Neo-Progressive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프로그레시브 록은 새로운 사회의 조류와 대중들의 기호의 변화, 그리고 아티스트 들의 창작력의 고갈로 쇠퇴기를 맞는다. 그리고 80년대, 대중음악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헤비 메탈이 새 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며 뉴 웨이브와 댄스 음악이 득세 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프로그레시브는 그 생명력을 다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일련의 밴드들에 의해 이 장 르의 음악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선배 밴드들 의 음악을 듣고 자라온 후배들은 그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사운드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말 그대로 세대 교체를 의미하는 이 신 조류는 (비록 많은 팬들이 마뜩찮게 생각하기는 했지 만) 당당히 성공을 거두며 한 시대를 장식하기에 이른 다. 펜드래곤(Pendragon), 트웰브스 나이트(Twelfth Night), 아이큐(IQ), 팔라스(Pallas), 그리고 마릴리온 (Marillion) 등이 그 자리에 위치한다. 연주 실력이나 작곡 능력과는 별개로, 이들이 과거의 '전설'들과 같은 평가를 못 얻었던 까닭은 완벽한 환상을 창조해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또 하 나의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테크 닉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의 모습

80년대의 네오 프로그레시브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골 수 팬들의 외면을 받고 스스로 도태되어 더 이상의 가 능성을 보이지 않고 90년대를 맞았다. 그런데 복고 또 는 과거로의 회귀(回歸)라는 시대의 경향은 아트 록에 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이태리와 스웨덴 등을 중 심으로 속속 등장한 몇몇 밴드들이 들려준 음악에는 한 세대 전의 향취가 그대로 묻어 있었고 정통 프로그레시 브의 팬들은 환호했다. 프로그페스트(ProgFest)와 같은 행사가 매년 개최되어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 을 하기도 했고, 80년대에는 들을 수 없었던 멜로트론 이 다시 등장했으며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일관하던 음 악 스타일은 다시 옛 무게를 되찾았다. 과거로의 완전 한 회귀를 이룬 것이다. 이는 한편으론 이 음악의 한계 를 단정적으로 보여준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대 에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것은 과거의 음악인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음악 이 여전히 듣는 이들의 꿈을 자극하고 환상을 키워주며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만 한다면 용어니 시대 구분이니 하는 것들은 저 멀리 치워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DEVIL DOLL / Sacrilegium ('92, Italy, Hurdy Gurdy)
Sacrilegium.jpg 90년대에 등장한 아트 록 밴드들 중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사랑받았던 그룹이 바로 데빌 달-데뷔작이 비록 '89년에 발표되었지만-이다. 밴드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미스터 닥터(Mr. Doctor)라는 인물 은 결코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신비감을 증폭 시켰고, 발표하는 앨범들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커버와 변형 자켓 등을 한정 제작함으로써 화제를 모으기도 했 다. 물론 그러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은 음악 자체가 뒷 받침되지 않는 한 말할 거리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정통 프로그레시브와의 직접적인 연계 성을 가지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류의 '사악한' 느낌을 주었던 음악은 야쿨라(Jacula)나 고블린(Goblin), 그리고 아트 베어스를 위시한 몇몇 챔버 록 밴드들의 것이었지 만 이들과는 성향 자체를 달리 하기 때문에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데빌 달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창 조했다고도 보이지 않는 이유 또한 명백하다. 각 사운 드들의 조합은 기존에 있던 형태의 차용이기 때문이다.
통산 세 번째 앨범인 『Sacrilegium』 역시 사운드와 스타일 모두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미스 터 닥터의 악마적인 보컬과 웅장한 교회 오르간, 피아 노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스케일 큰 사운드를 담고 있다. 메탈풍의 강한 기타 리프의 삽입은 진행을 지루 하지 않게 하며, 그가 애용하는 서커스 음악은 전작에 이어 다시 등장하여 그로테스크한 정취를 불러 일으킨 다. 여러 가지 비판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이 앨범은 의심할 여지 없이 90년대의 걸작 중 하나이다.
이미 『Dies Irae』('96)에서 그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 매너리즘 또는 한계를 뛰어 넘는다면 앞으로 가장 기대 되는 밴드가 바로 데빌 달이기도 하다.

SPOCK'S BEARD / Beware Of Darkness ('96, USA, Radiant)
Beware.jpg 프로그레시브 록의 불모지로 일컬어지던 미국에서, 90년대에 새로이 프로그레시브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90년대의 새로운 프로그 레시브'를 표방하는 밴드들-섀도우 갤러리(Shadow Gallery)과 마젤란(Magellan), 심포니 엑스(Symphony X) 등-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정통 프로그레시브가 아 닌 헤비 메탈의 범주에 포함되는 음악들이다. 오히려 레이저스 엣지(Laser's Edge), 키네시스(Kinesis), 신포 닉(Syn-Phonic) 등의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등장한 그 룹들의 음악에서 간혹 옛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밴드가 캘리포니아 출신의 스팍 스 비어드이다. 프로그레시브의 부흥을 열망하는 팬들 의 연례 행사인 프로그페스트에도 매년 참가하여 호평 을 받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정통성의 완전한 회복'이다. 복잡하고 강한 텐션이 돋보이는 곡들 의 구성은 예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데, 특히 곡의 중 간 중간 살짝 등장했다 뒤로 숨는 멜로트론 사운드는 『Fragile』과 『Close To The Edge』 시절의 릭 웨 이크만을 연상케 한다. 물론 곳곳에서는 비틀즈에서 핑 크 플로이드, EL&P, 뉴 트롤즈에 이르는 많은 영향이 느껴지지만 단순한 카피 밴드와는 차원을 달리 하는 정 체성을 지닌다. 밴드의 멤버들은 모두 유명 아티스트들 과 함께 활동했던 경력을 지닌 스튜디오 뮤지션들이며, 때문에 각 파트별 연주의 안정성과 전개의 유연성은 여 타 네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게서 볼 수 없는 요소이 다. 앞으로의 활동이 가장 주목되는 신세대 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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