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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7133
2008.12.29 (21:39:40)
Ratings: 
 
ARTIST:  World Of Oz 
ALBUM TITLE:  World Of Oz 
YEAR:  1969 
COUNTRY:  U.K 
GENRE:  Folk Rock 
LABEL:  Deram, Si-Wan 
TRACKS:  1. The Muffin Man
2. Bring The Ring
3. Jackie
4. Beside The Fire
5. The Hum-Gum Tree
6. With A Little Help
7. We've All Seen The Queen
8. King Croesus
9. Mandy-Ann
10. Jack
11. Like A Tear
12. Willow's Harp 
MUSICIANS:  Tony Clarkson - Bass
Rob Moore - Drums
Geoff Nicholls - Guitar, Organ
Christopher Robin - Guitar, Piano, Vocals
David Kubinec - Guitar, Organ
David Rea - Drums 
원본출처:   



버밍햄출신의 4인조그룹 World Of Oz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많은 레코드 콜렉터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그룹은 Barry Class가 매니저로 활동했고 1960년대말 사이키델릭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3매의 싱글들을 Deram으로부터 발표했었다.
먹고 살기가 좀 나아졌는지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는 가운데, 요즘은 누구나 젋게 사는 것이 목표인 것 같다. 진시황의 불로초를 모두들 어리석다 비웃으면서도, 자기일로 닥치게 되면 금새 눈이 머는지라 무엇이든 안가리고 먹으려 든다. 이모두가 결국 마음이 젊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결코 젊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시절 만났던 오즈의 마법사는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World Of Oz의 음반은 우리의 마음을 해 맑은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적어도 40분 이상의 지속효과가 보장된 더 없이 좋은 청량제인 것이다.

그룹 World Of Oz 1969 Barry Class(매니저)에 의해 결성된 영국의 4인조 스튜디오 그룹으로, 멤버들 자신이 직접 프로듀서는 물론 엔지니어까지 겸하였던 이색적인 그룹이다. 발매 역시 이색적으로 스테레오와 모노 음반 두가지로 나누어 선보임으로 구매자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속지가 파란색은 스테레오 음반, 빨간색은 모노 음반으로, 자켓 뒷면의 작은 구멍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작은 그룹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테마를 따온 컨셉트 앨범으로 보컬의 Feel Bee Gees Gibb형제와 Herman's Hermits Peter Noone을 믹스해 놓은 듯 한 인상이며, 전체적으로 밝은 멜로디에 더해 비브라폰등 맑은 악기를 사용함으로 듣는이의 마음에 붙은 무거운 군더더기들을 깨끗이 털어내 주고 있다.

2년후 같은 Deram속으로 데뷔하게 되는 Whistler는 이들에 비해 한층 가다듬어진 아름다운 사운드로 팬들을 매료시켰는데, 아마도 선배격인 World Of Oz가 거울이 되지 않았던들 Mellow Candle과 더블어 Deram이 자랑하는 Folk Rock의 명반 Whistler의 ‘Ho Hum'은 탄생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


'오즈의 마법사'라, 으∼음, 내 머리 속의 가물가물해져만 가는 기억 공간을 이리저리 뒤져보고 조각 모음을 반복해서 뇌리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으니, 읽어봤다는 거짓으로 나의 무지를 숨기는 부끄러운 짓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할 듯 싶다.
못생긴 마녀는 악, 아름다운 마녀는 선을 상징해야만 한다는 기본 공식에 충실했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 기억의 한 모퉁이엔 아직도 어렸을 적에 보았던 이 흑백영화(?)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영화의 초반부, 귀엽게 생긴 한 어린 소녀의 갑작스런 행위로 얼떨결에 마녀는 허무하게 녹아 내린다. 아직도 오즈란 단어에서 왠지 껄끄러운 앙금이 느껴지는 걸 보면, 그 장면이 그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도 무섭고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무서움을 무담담하게 즐길 정도로 커 버린 나이에 보게 된 데이비드 린치의 ‘광란의 사랑’, 그 영화에서 보여진 마녀의 모습(?), 사실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상상을 뛰어넘은 갑작스런 과거로의 비행에서 왠지 낯설음보다는 좀 더 친밀해진 공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오즈의 마법사는 내겐 어린 시절보다는 성숙해 가면서 친숙해져 버린, 마음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게 된,그런 이국적인 동화가 아닌가 싶다. 그럼, 여러분은 이 앨범의 주인공인 오즈, 그 단어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비록 저처럼 책을 안 읽었을지라도 우리는 오즈의 마법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무지개 저 너머’란 곡이 귓전을 간지럽혔던 바로 그 영화로, 만화로 또는 연극으로 그 흥미진진한 모험을 지금도 생생히 머리 속에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세월이 흘러 동화에서 멀어져 가면 갈수록 이해가 점점 더 되는 것 같은 동화 ‘오즈의 마법사’, 어린 소녀 도로시와 그녀의 토토가 이야기의 축을 함께 이끌어 나가는 세 친구들과 함께 힘을 합쳐 희망을 이루게 된다는 지극히 동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세 친구는 이미 사고의 틀이 굳어져 버린 기성세대란 스펀지에 흡수되기 시작한 우리 자신들의 시각에 맞추어 봤을때 과연 누구일까? 나! 왠지 자꾸 나일까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잘못이 다 내 탓이요, 내 탓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다 커 버린, 퇴색되는 현대사회의 그림자에 가려 글 빛마저 잃어버린 아니 그 빛을 잃지 않기 위해 오히려 다른 이의 꿈마저 빼앗거나 없애 버리는 그런 나쁜 어른인 나 자신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The World Of Oz의 후배 격이 될 Whistler의 「Ho Hum」을 들을 때는 시간에 쫓겨야만 하는 사회생활에 한숨지었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모든 것을 포기한 척 하며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지개를 잡으러 당장 모험을 떠날 용기도 없는, 아니 무지개를 보고도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 어떻게 해야 무지개를 볼 수 있는지도 모르는 나, 현재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무지개를 선사해 줄 수 있는 것은 과거 여러분들의 모습이었던 도로시와 이 한 장의 무지개 빛 음반 “The World Of Oz”일 것이다.

(듣 기)

여러분들은 이 음반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의 경쾌한 리듬을 스테레오 음향으로 들으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빨간색(스테레오는 파란색)의 속지를 갖고 있는 이 음반은 모노 음향의 경쾌한 팡파르를 들려주고 있다. 오히려 모노음이기에 들으면 들을수록 조그마하고 소박한 인형극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인형극의 연출 및 주인공은 물론 자기 자신이다. 경험해 보셨으리라, 어린 조카들에게 하루를 강탈당한 채 쫛쫛랜드나 쭕쭕월드의 이곳 저곳을 끌려 다니다, 지친 다리도 쉴 겸해서 잠시 보게 되는 인형극. 어둡고 좁은 극장 안에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 졸 양으로 눈을 감고 있자니, 왠지 친근한 음악에 반쯤 잠든 머리는 어느덧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여기가 어디일까? 여기가 꿈같은 동화의 세상일까? 게으른 배짱이에서 어느덧, 나는 하늘을 비행하는 숏다리의 돼지 비행사가 되기도 하고, 터무니없이 긴 롱다리에 가공할 힘의 발가락을 갖고 있는 소년이 되기도 하겠지만, 휴~우,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번 팔다리가 절단되는 로보트로는 안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 이 음반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일 거야! 힘들게 귀를 쫑긋할 필요가 없다. 머리로 듣기에는 논할 건더기가 전혀 없는 애들 장난일 수도 있다. 굳이 신경 써서 듣고자 한다면 영어 히어링 연습용으로…. 쉽고 편하게 하루의 힘든 일을 모두 잊고 어린 시절의 환상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때론 소년에서 소녀로도 변할 수 있는 그러한 상상력을 청자에게 전해 주는 것이 이 음반의 역할이다.
‘이 음반에선 어떤 곡이 좋을까?’란 생각은 빨리 버리고, 대신 유치원생이 연출하고 학부모가 연기하는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자. 학부모가 자기 자식들의 의도를 어렴풋하게라도 파악하지 못하고, 관객이 배우들과 같은 시각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관객들은 유치함만을 전달받을 것이다.
첫번째 단감은 항상 달지만 백번째 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여러분들이 지금 백번째 단감을 듣고 있다면, 이 음반은 백한번째가 아닌 첫번째 단감이 될 것이다.

글/ 황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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