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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Museo Rosenba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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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Italy |
GENRE: | Italian Progressive Rock |
ALBUM: | Zarathustra (1973) Rare and Unreleased (1972) Exit (2000) |
MEMBER: | Stefano "Lupo" Galifi (vocals) Enzo Merogno (guitar, vocals) Pit Corradi (keyboards) Alberto Moreno (bass, piano) Giancarlo Golzi (drums, percussion, vocals) |
원본출처: |
Museo Rosenbach
프랑스 국경과 이태리 국경을 가로 지르며 해변과 암벽을 따라 달리는 열차여행은 아마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사치스러운 여행일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의기투합되어 완행 열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을 떠났던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상황 즉, 사업상의 임무를 띠고 있었지만 기분만큼은 학창시절의 완행 열차를 탄 즐거움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 날씨가 무척 좋아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 펼쳐지는 절경들을 두 눈과 하나의 가슴으로 맞으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이태리인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들뜬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나의 첫번째 이태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모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의 열차칸 앞쪽에는 못생긴 일본 관광객 한명이 소형 비디오 카메라로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들을 담고 있었는데, 그의 행동을 쳐다보고 있던 한 이태리 청년이 껌을 씹으면서 그에게 차가운 웃음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태리 국경에서 간단한 입국절차를 밝은 후 열차를 갈아 탔을 때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뒤바뀐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언어와 생김새, 공기 그리고 냄새까지도… 싼레모는 해양 휴양도시답게 모든 곳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카지노와 비싼 보석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의 니스 해변가처럼 붐비지는 않았지만 사람들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속에서 나를 위해 마중나온 친구는 Mauro Moroni였다. 그는 나를 위해 호텔을 예약해 주었는데 아마도 그는 내가 한국에서 온 재벌인 줄 잠시 착각 했었나 보다. 내가 묵을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의 입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그곳은 싼레모 훼스티발에 참가하는 유명한 가수들이 묵는 고급 호텔인 것 같았다. 등급에 고급을 의미하는 L(Luxury)문자까지 쓰여진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어마어마한 궁과 같은 호텔의 자태에 자칫 기절할 뻔 했다. “드디어 레코드 몇장을 잃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최대한 여행경비를 줄여 고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몇장의 레코드들을 선물해야겠다는 나의 계획이 여기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몇일 더 지냈다가는 귀국하는데로 시완레코드는 곧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객실에서 대강 짐을 정리하고 Mauro Moroni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태리 흑백 영화에서 보았던 좁고 긴 골목들과 언덕을 지나 그의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는 그의 동업자이며 Celeste의 전 키보드주자인 Ciro Perrino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처음 만났던 이태리 뮤지션으로 그는 기록된다. 약간은 수줍음끼가 있는 대머리형의 사나이인 그는 깨끗한 마스크를 가졌고 이제는 뮤지션이라기보다 비지니스맨에 가까운 인물로써 내 기억속에 머문다. 그 다음으로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뮤지션은 늘 만나고 싶어 햇었던 Museo Rosenbach의 베이스주자 Alberto Moreno였다. 그는 Mauro Moroni와 Museo Rosenbach의 미 발표곡을 발표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옛 Museo Rosenbach시대에 관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 곳을 방문하였는데, 우연히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는 백발의 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눈의 초점이 흐렸고 자주 말을 더듬거렸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약물과용으로 거의 패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Museo Rosenbach의 유일한 작품 [Zarathustra]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해내왔던 인물이었다. 작품의 80%이상이 그의 창작으로부터 비롯될 정도로 사실상 그가 Museo Rosenbach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그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무기력한 인간 그 자체였다. Museo Rosenbach라는 그룹의 음악에 심취 되었을 때, 앨범 커버속에 단도로 처리된 단 한장의 멤버사진을 보며 “이들은 괴물들인가?...”라고 감탄햇었던 당시의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와의 만남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다. Mauro Moroni에게도 나의 심정을 전한 바 있다.
그 이후로 Museo Rosenbach의 앨범 [Zarathustra]는 나의 턴테이블에 다시 놓여지지 않았다.
아래 지면에 소개되는 Museo Rosenbach의 역사는 필자가 Mauro Moroni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당시 Museo Rosenbach의 베이스 주자 Alberto Moreno가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내용은 얼마전에 CD로 발매된 Museo Rosenbach의 미발표 작품집 [Rare & Unreleased]에도 기록되어 있다.
Museo Rosenbach Story 무제오 로셈바흐의 역사
이 그룹의 역사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이태리 북서부의 도시들인 싼레모와 임빼리아 지역에서는 The Kites, The Sextons 그리고 The Kidnappers등과 같은 그룹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1969년 “Quinta Strada”라는 그룹이 결성된다. 멤버는 Giancarlo Golzi, Corradi, Alberto Moreno 그리고 기타파트와 보컬담당의 Walter Franco가 있었다. 공연무대에서 그들은 The Animals, The Spencer Davis Group, Cream, Led Zeppelin 그리고 Santana의 레파토리를 연주했다.
그당시, “Quinta Strada”와 음악적으로 경쟁상대가 되었던 “Il Sistema”는 Penio, Cavanna, Roggero, Enzo Merogno 그리고 Lagorio라는 다섯명의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음악은 주목할만 했다. 특히 Lagorio의 Flute과 Sax연주 파트는 그룹에 있어서 구심점이 될 만큼 중요했다. 그들은 악기구성에 있어서 영국 그룹들 특히 Jethro Tull과 Van Der Graaf Generator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그 당시 이러한 악기들의 도입은 이태리 대중음악계에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Quinta Strada”와 “Il Sistema”의 경쟁은 1970년에 들어서면서 “Quinta Strada”의 승리로 판가름난다. Il Sistema는 Cavanna, Merogno 그리고 Lagorio의 탈퇴로 해산되고 이 멤버들은 곧 Quinta Strada에 합류했다. Premiata Fomeria Marconi 그리고 Banco Del Mutuo Soccorso를 쫓아 같은해 Quinta Strada는 Museo Rosenbach라는 그룹명으로 Rock그룹에서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에 앞서서 Museo Rosenbach의 데뷰무대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그룹명은 Otto Rosenbach라는 독일의 편집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에서 Rosenbach의 의미는 장미빛의 시내(개울)을 뜻한다.
결성된지 얼마되지 않아 Walter Franco가 직업상의 이유로 그룹을 떠났고 그의 후임으로 Stefano “Lupo”Galifi가 참가했다. 그는 전형적인 블루스 창법을 지니고 있어서 Genesis나 King Crimson에 유사한 그룹의 진보적인 사운드 성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보컬리스트였다.
실질적으로, Museo Rosenbach의 작품들은 Merogno와 Lagorio가 재적햇엇던 그룹 Il Sistema의 작품들로부터 많은 음악적 테마와 요소들을 빌어왔다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모니 부분들뿐만 아니라 곡 편곡에 있어서 <Zarathustra>는 Pemino와 Lagorio에 의해서 작곡된 초창기 두 작품들 <Il Tempio Per Una Verdespirale>와 <Gladiatoria>로부터 비롯되었다 게다가, Museo Rosenbach의 곡들을 이끌고 있는 모든 기본적인 테마라인 분만 아니라 그에 관계된 편곡들은 Lagorio의 플룻과 섹스폰의 작곡 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몇 차례의 무대 경험 후 Lagorio는 그룹을 등지게 된다. 오늘날까지 Museo Rosenbach의 주요 작곡가인 Moreno는 그들의 유일한 앨범 [Zarathustra]가 원래의 플룻과 섹스폰 요소를 축소하여 완성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Lagorio가 그룹을 떠난지 한달이 지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완성시켰고 커다란 기대감 없이 Dischi Ricordi레코드사로 그들의 데모테이프를 보냈다. 그러나 당시 Dischi Ricordi의 음반제작자였던 Angelo Vaggi는 그들의 음악에 매료되었고 그는 Museo Rosenbach의 연주를 직접 보기위해 밀라노의 스튜디오로 그들을 초총했다. 이 당시의 세션이 카세트 테이프로 기록되어 그 스튜디오에 보관 되었고, 올해에 CD로 발매된 [Rare And Unreleased]에 수록되게 된다. 공식 앨범으로 제작되었던 원래의 사운드와 이 당시의 세션 사운드는 편곡과 보컬파트에서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성공적인 녹음세션과 함께 Museo Rosenbach는 Reale Accademia Di Musica, Banco Del Mutuo Soccorso와 같은 기대되는 유망주들과 같은 레코드사를 통해 레코드 계약을 마쳤고, 1973년 그들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발매된 앨범의 가사는 원래의 가사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제작자의 제의로 하루만에 가사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커버 디자인도 여러 개가 추천되었지만 그중에서 우스꽝스러운 남성 머리를 그린 커버디자인과 원형극장과 원형경기장을 그린 작품들이 커버로 채택될 예정이었다.
아무튼, 위의 커버들은 매우 취약해서, 사진작가인 Caesar Monti가 검은 바탕에 무쏠리니의 파멸을 의미하는 조각사진을 붙여 새로운 작품을 구성했다. 이 작품이 Museo Rosenbach의 앨범 커버로 채택됨으로써 Museo Rosenbach는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게 된다 잘못된 정치적 견해로 그들의 앨범은 이태리 방송협회 RAI로부터 금지조치를 받았다.
이러한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앨범은 대중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성공을 얻어내었고 그러한 조치가 더욱 커다란 홍보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 효과는 1973년 6월에 있었던 그들의 “Festival Di Nuove Tendenze Di napoli”라이브 무대를 통해 더욱 강력하게 들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멤버들간에 불화가 생긴다. 이 불화의 요인은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찾는데 있어 비롯되었다. 그들은 Piazza Delle Erbe와 Alberto Motore의 보컬리스트와 접촉을 가졌고 게다가 여성 보컬리스트를 내세울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바로 직후, Giancardo Golzi는 군복무 때문에 그룹을 떠나야만 했고 결국 그룹은 해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군복무 후 Golzi는 그룹 JET의 재구성으로 형성된 Martia Bazar에 참가했고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