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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GENTLE GI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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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U.K |
GENRE: | Eclectic Prog |
ALBUM: | Gentle Giant (1970) Acquiring the Taste (1971) Three Friends (1972) Octopus (1972) In a Glass House (1973) The Power and the Glory (1974) Free Hand (1975) Interview (1976) Playing The Fool (1977) - The Offical Live The Missing Piece (1977) Giant for a Day (1978) Civilian (1980) |
MEMBER: | Derek Shulman (lead vocals, saxophone, recorder, keyboards, bass, drums, percussion, Shulberry) Phil Shulman (lead vocals, saxophone, trumpet, clarinet, recorder, percussion, 1970-72) Ray Shulman (Most bass, trumpet, violin, vocals, viola, drums, percussion, recorder, guitar) Kerry Minnear (lead vocals, keyboards, cello, vibes, xylophone, recorder, guitar, bass, drums) Gary Green (guitar, mandolin, vocals, recorder, bass, drums, xylophone) Martin Smith (drums, percussion, 1970-71) Malcolm Mortimore (drums, percussion, 1971-72) John Weathers (drums, percussion, vibes, xylophone, vocals, guitar, 1972-80) |
원본출처: |
70년대 초반 영국의 프로그레스브 록계를 장식해던 그 수많은 뮤지션들 중에서 자신들의 독특한 음악영역을 창조하고, 여러장의 앨범을 발표 하면서 그 뒤를 잇는 여러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그룹들을 우리는 소위 슈퍼그룹이라 칭하며 그들의 음악성을 프로그레시브 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큰 줄기들로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슈퍼그룹들은 각자의 톡특한 음악 스타일로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으며 슈퍼그룹들의 기본 사운드를 기초로 하여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펼쳐 나갔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을 세계 도처에서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국내에도, 비록 이들의 영향을 받아 연주를 했던 그룹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슈퍼그룹들의 사운드를 사랑하는 음악 팬들이 대단히 많은게 사실이다.
GENTLE GIANT
이들은 초반기에는 영국에서 중후반기에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활동을 하며 영국의 다른 슈퍼그룹 못지않은 인기를 당시에 누렸었던 그룹으로써, 특히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에서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던 그룹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Gentle Giant의 지명도가 다른 슈퍼그룹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듯 하다.
사실 이들의 사운드를 살펴보면(이들이 자신들의 독창성을 가진 연주를 들려 주었던 중반기 까지의 사운드)국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다른 그룹들의 사운드와 비교해 볼 때 다소 국내 취향의 연주가 아님을 쉽게 판단할 수가 있다. 필자자신도 이들의 사운드와 친해지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이들이 들려주는 연주의 맛에 빠져들면 여타 그룹들에게서 느낄수 있는 필링(그 그룹을 좋아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각 그룹 나름대로의 맛) 이상의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Gentle Giant는 비교적 멤버 교체 없이 오랫동안 활동을 하였던 그룹으로써 초반기와 중반기의 음반들까지 좋은 연주를 보여주었으나 후반기에는 음악적 충실도가 떨어지는 음반들을 발표하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초반에는 심포닉 색채를 강하게 띄우면서 강음과 약음의 상반된 두 축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그러면서 자신들의 음악성을 키워나가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중반기에는 종 잡을수 없는 변화 패턴속에서, 또한 멤버들간의 독립적인 각 악기 파트의 연주속에서의 조화를 그들의 연주에 담고 있다. 또한 키보드 연주를 담당했던 Kerry Minnear의 영향에 의한 중세풍의 분위기도 (특히 Octopus 앨범에서 잘 느낄수 있다) 그들의 사운드에서 빼놓을수 없는 부분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8번째 앨범인 "Interview"부터 독특한 그들의 연주가 퇴색하기 시작하였으며 그후의 음반들은 이들을 아끼던 팬들에게도, 다른 대중들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연주를 들려주게 된다.
Pre - History of Gentle Giant
"저희집에서는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었으며 여러 뮤지션들로 붐볐죠. 아버님께서 재즈 트럼펫을 연주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어렸을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수 있었고 직접 레슨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Phil Shulman, Ray Shulman, Derek Shulman - 이들 삼형제는 아버님의 영향으로 일찍이 음악에 눈을 뜨게된다. 비록 정규 레슨은 받지 못했으나 이들은 여러 악기를 어릴때부터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삼형제 모두 연주하기를 그 어느것보다 즐겼었다.
이들 삼형제가 처음으로 그룹을 결성한 것은 Derek Shulman이 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최초의 그룹명을(비록 완전한 프로는 아니었지만) The Howling Wolves라 정하고 제일 큰형인 Phil Shulman이 매니저 일을 맡게된다. Phil Shulman은 처음에는 매니저 일만 하였으나 결국 Saxphone을 가지고 동생들과 같이 연주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The Howling Wolves시절 이들은 Rhythm & blues를 연주 하였으며 곧 Roadrunner라는 이름으로 지방 여러곳을 돌며 자신들의 연주실력을 쌓아 갔다.
이들이 적어도 프로의식을 가지고 연주활동을 하게 된 것은 그룹명을 Simon Dupree and The Big Sound로 바꾸면서이다. 그룹명을 바꾸게 된 이유는 큰 형인 Phil Shulman이 그룹의 멤버로 들어오면서 매니저 활동을 하기가 힘들어 지자 새로운 매니저를 구하게 되는데, 이 매니저가 그룹명을 바꾸기를 권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매니져와는 그리 오래 활동하지 못하고 당시 BBC사의 프로듀서로 있던 이들의 친척, John King이 결국 매니져 일을 담당하게 된다.
John King에 의해 이들은 얼마후 EMI 산하의 Parlophone 레이블과 Recording 계약을 맺기에 이르고 지방의 Club을 중심으로 몇해간 연주활동을 하며 가장 기대받는 화이트 소울 그룹으로써 명성을 쌓게 된다. 그들은 이 시절 5장의 싱글과 1장의 정규앨범 "Without Reservations"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앨범차트 30위 정도에 밖에 이르지 못했으며, 이들 형제가 품고있었던 당시의 Pink Floyd나 Traffic 같은 Physhedelic 그룹에의 관심 고조는 The Big Sound의 존재 자체에 위기를 가져왔다.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 작업 중이던 어느날 매니져인 John King은 "Kites"라는 노래를 가지고와서 이들에게 녹음을 요구하게 되는데 Derek Shulmans은 이 노래가 자신들이 추구하려는 음악과는 너무도 다른 팝적인 사운드 였기 때문에 녹음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John King이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여 녹음을 해달라며 계속 강요하는 바람에 결국 녹음을 하게 되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 곡이 1967년 11월 The Big Sound의 유일한 Top 10 히트곡이 되게 된다.
이들이 The Big Sound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한 것은 1969년 후반기까지 인데, 이때까지 이들은 대중적인 지지도 착실히 얻고 있었으며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을 하던 상태였다. 그러나 항상 이들의 머리를 괴롭히던 생각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려던 음악을 지금 자신들이 연주를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대로 인정 받는 현실에 안주하느냐 - 아니면 벽을 뚫고 자신들의 것을 찾으려 떠나느냐 - 하는 문제속에서 이들은 후자를 택하기에 이르고, 결국 Bath 대학에서의 공연중에 그날로써 자신들의 연주는 마지막이라고 즉흥적으로 이야기해 버린다. 이로써 Simon Dupree and The Big Sound의 존재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고 새로운 출발점을 찾기 위해 Shulman 삼형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오게 된다.
The Birth of Gentle Giant
Shulman 형제들은 함께모여 그들만의 그룹을 구상혀며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함께 연주할 뮤지션을 찾기에 이른다. 기존의 음악지향을 탈피하기로 결시하던 차에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Kerry Minnear를 만나게 되는데 Kenny Minnear는 Shulman형제들에게 대단히 만족스러운 파트너였다.
그는 Royal Academy of Music의 장학생 출신으로써 여러 악기의 연주에 능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클래식적 화성과 편성은 자연스럽게 Shulman형제들에게 좋은 방향으로의 영향을 주게 된다. 이후 Shulman 형제는 필요한 기타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이 오디션을 개최하였는데 이 오디션에서 Gary Green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또한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던 드러머인 Martin Smith를 영입함으로써 기본적인 라인업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라인업으로 그들은 Southompton의 한곳을 얻어 6개월 간의 집중적인 리허설 기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그룹인 Gentle Giant가 탄생하게 되는데 그룹명은 "가벼움(Light)"을 뜻하는 Gentle과 "무거움(Heavy)"을 뜻하는 Giant를 연결시켜 그룹명을 정했다고 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최상의 점을 찾아 만들어낸 이들의 음악성은 록음악 사에 한 획을 긋는 독특한 것이었다. 이들의 뛰어난 음악성은 매니저인 Gerry Bron의 눈에 금방 띄게 되었으며 그는 바로 Philips산하의 새로이 형성된 Vertigo 레이블과 레코딩 계약을 맺게 해준다.
Gentle Giant
1970년 11월에 드디어 Gentle Giant의 데뷔앨범이 탄생하게 되는데 Tony Visconti에 의해 제작된 이들의 데뷔앨범은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유감없이 내보인 걸작으로써 클래식한 바탕위에 심포닉 록과 재즈 록적인 요소를 융합시킨, 또한 멤버들간의 멋진 하모니가 눈에 띄는 앨범이었다. (사실 이러한 독특한 사운드는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픈 음악스타일 이었으며 초반기 그들의 모든 앨범을 지배하고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He is comming :
Here him comming :
Are you ready
For his being ? :
See the Giant :
Feel the Giant :
Touch the Giant :
Here the Giant : - GIANT 中에서
Gentle Giant는 분명 자신들의 존재를, 또한 그들이 추구하고자 한 음악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고픈 생각을 가지고 이 앨범에 임하였다. 그런만큼 데뷔 앨범에서 보여준 그들의 음악적 충실도는 대단한 것이었다. 한곡 한곡에서 느낄수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감흥 뿐 아니라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 또한 뛰어나다.
앨범 전체를 통해서 전개되는 사운드는 자신들의 그룹명에서 바로 느낄수 있는 음의 강약의 조화이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어느하나 놓칠수 없는 훌륭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타파트와 드럼, 관악기를 위주로 형성되는 강음과, 보컬과 바이올린 파트를 위주로 형성되는 약음을 두축으로 하여 두부분을 보조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키보드음으로써 형성되는 이들의 음악은 다른 뮤지션들과는 또 다른 음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국내에서 Gentle Giant의 곡들중 가장 지명도가 높은 'Nothing at all'을 비롯하여(이곡의 중반부에 나타나는 드럼파트와 건반악기의 오묘한 조화는 그들이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의 단적인 예이다), Ray shulman의 운치있는 바이올린, Kerry Minnear의 첼로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보컬이 돋보이는 'Funny ways'나 그들의 연주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Why not?"등은 그들의 역량을 보여 주기에 충분한 곡들이다.
강렬한 사운드로 앨범을 시작하며 그들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가사로 이루어진 첫 번째 곡 'Giant'나 앨범의 끝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국가를 본떠 만든 연주곡들에서 그들의 열정을 또한 느낄수 있다.(사실 이들은 중반기부터 거의 미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러한 그들의 욕심이 데뷔 당시부터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본 앨범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Gentle Giant의 데뷔 앨범은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판매부진을 뒤로한채 Gentle Giant는 자신들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계속되는 공연을 가졌는데 이러한 공연속에서 멤버들간의 호흡과 연주 수준을 높일수 있었다.
또 한가지 특이할만한 사실은 이들이 초창기에는 거의 Single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Album Band"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부류의 그룹들이 그랬듯이 Gentle Giant 역시 분명히 그들의 음악이 이전의 음악들에 비해 좀더 신중하게 대중들에게 받아 들여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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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quiring the Taste
1971년 8월에 그들의 2집 앨범인 "Acquiring the Taste"가 역시 Tony Visconty에 의해 제작이 되어 발표가 된다.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커버 전체를 큰 혀로 장식을 한 이 앨범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이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의 음악적 목적은 대중음악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비 대중성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우리는 한가지 생각 - 독특하면서도 도전적이고 환상적인 -을 가지고 레코딩에 임했다."
그들의 이러한 음악 철학은 앨범 전체를 통해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 어느 한곡도 놓칠수 없는 전체적으로 완성도 놓은 앨범이었다. 특히 중반부의 따뜻한 연주가 돋보이는 'Wreck'과 'Plain Truth'가 돋보이며, 'Plain Truth'와 'Black Cat'에서 들려주는 Ray Shulman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후 라이브 공연때마다 연주되는 고정 레파토리가 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데뷔앨범에 비해 좀더 안정적이고 듣기가 편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데뷔 앨범에서 보여주던 강한 음과 약한음의 상반된 구조 속에의 조화를 찾기 보다는, 건반악기와 바이올린 연주가 전면에 대두되며 기카 사운드로 예쁘게 치장을 한듯한 다소 듣기 편한 곡 구성을 띄고 있다. 물론 'Pantaguel's nativity' , 'The House the street'와 'Plain Truth'에서는 데뷔앨범의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는 곡들이다.
이 앨범 역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기대에 못미쳤다. 사실 Gentle Giant의 진가는 영국보다는 독일과 이태리에서 먼저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힘입어 Gentle Giant는 Jethro Tull의 공연에 함께 참가하게 된다. 당시 Jethro Tull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Gentle Giant의 사운드를 그들만이 지닐 수 있는 독창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그룹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후 그들은 이태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국 그룹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2집을 발표한 후 멤버교체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드럼을 맡던 Martin Smith가 그룹을 떠나고 새로이 Malcolm Mortimore가 드럼을 맡게 된다. Martin Smith는 현재까지도 지방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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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Friends
1972년 7월 그들의 3번째 앨범 "Three Friends"가 발표가 된다. 이 앨범은 컨셉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앨범의 내부 그림에서도 알수 있듯이 3명의 동창이 장성한후 그들이 어린시절 나누었던 꿈과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환경속에서의 느낌을 음악화 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또한 그들의 최초의 Self Production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결과는 놀랍도록 좋았고 새로운 녹음기술도 성공적으로 평가 되었다. 또한 특이한 사실은 이 앨범에서 Ray Shulman의 두 살배기 아들 Calvin Shulman의 백 보컬로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다. 그리고 이 앨범은 드디어 Gentle Giant가 미국시장에 데뷔하게 되는데(Columbia Records를 통해서), 미국에서의 이 앨범이 커버 디자인을 데뷔앨범에서 따오는 바람에 그들의 첫 번째 앨범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었다. 또한 미국에서 그들의 홍보용 Single 앨범인 Prologue, Working all day, Three friends는 후에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Gentle Giant는 Hendrix plays berkeley라는 영화를 통한 불규칙적인 연주활동을 펼쳐 앨범을 홍보하던중, 드러머 Malcolm Mortimore가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오래 입원하게 되는 불행을 겪는다. 그러나 그들은 John (Pugwash) Weather라는 떠돌이 드러머를 고용하여 공연을 해나갔다. John은 이때부터 Gentle Giant의 정식 드러머가 되어 4집인 "Octopus"에는 그가 드럼을 맡고 있다.
세 번째 앨범인 "Three friends"에서 들려주는 그들의 사운드는 이전 앨범들에서와는 조금은 틀려 보인다. 기타와 Saxphone을 중심으로 하는 강한 사운드와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는 약한 사운드를 두 축으로 전개해 가는 방식은 그대로이나 전체적인 진행이 강음과 약음의 조화면에 중심을 두었다기 보다는 각 파트간의 자유로운 연주속에서 서로 연관되는 아기자기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듯 한다.
특히 'Working all days'에서 들려주는 Kenny Minnear의 키보드 연주가(이들의 다른 앨범이나 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싸이키풍의 키보드 연주) 들을만하며, "Peel the piant"에서 들려주는 Ray Shulman의 바이올린 연주와 Gary Green의 하드한 기타 연주를 비롯한 중 후반부의 연주도 매우 좋다. 'School days'에서 사용한 효과적인 녹음방식(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가사부분에서 에코 비슷한 효과를 사용하여 회상하는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이 특이하며 'Mister class and quality?'에서의 멤버들간의 자유로운 연주도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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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pus
1973년에 이들의 다음 앨범인 "Octopus"가 발표되어 이전의 다른 앨범들과는 달리 상업적으로 이들에게는 큰 성공을 가져다 준다. 이 앨범은 Gentle Giant가 발표한 앨범중 곡 구성이나 연주면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세련된 작품으로 평가되는 앨범으로써, 영국에서는 Vertigo-Swirl(6360series)을 통해 발표가 되면서 당시 Vertigo-Swirl 시리즈의 앨범 커버를 담당했던 Roger Dean의 Inner Sleeve 디자인으로 더욱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 주고 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도 Columbia레코드를 통해서 발매가 되었는데 독특한 커버디자인 (표지 그림은 유리병 안에 octopus가 갖혀있는 그림이며 유리병 마개와 병을 따라 가위로 오려진 형태를 취하고 있고 마치 햇볕에 바랜듯한 희미한 색채를 띄고 있다)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앨범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때 까지 Gentle Giant의 사운드가 각 악기 파트의 공존 속에서 조화를 찾는 것이었다는 점에 비해서 Kerry Minnear의 건반악기 파트와 Ray Shulman의 바이올린 파트가 앨범 전체에 걸쳐 전면적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주 뿐만 아니라 Kerry Minnear의 역량은 작곡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중세의 음악을 곡들에 도입을 시켰고(Raconteur troubadour라는 곡에 잘 나타남) 또한 대부분의 곡들의 작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 앨범은 대중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고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에 Gentle Giant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음악적 스타일도 이들의 다른 앨범들과도 구분이 되는데, 특히 Side A를 장식하는 곡들을 들어보면 각 악기 파트의 독립된 영역을 유지시켜 주면서 불협화음 속에서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러한 각 악기 파트의 조화는 이들의 음악을 단순한 락음악이 아닌 클래식적 구성속에서 새로운 영역으로써의 진보적인 록 사운드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집고 넘어가야할 점은 다른 그룹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Gentle Giant만의 보컬의 묘미이다. 이들의 보컬은 가사전달의 목적뿐 아니라 키보드. 바이올린등과 마찬가지로 곡을 전개해 나가는 하나의 완전한 독립된 부분으로써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개해 나가는 하나의 악기로써 여겨진다.
앨범 전체에 수록된 곡중에서 어떤 곡이 좋고 나쁘고를 언급하기 힘든 음악적으로 충실한 곡들로 가득한 명실공히 그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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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Glass House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두며 확실한 기반을 다진 Gentle Giant에게 항상 행운만이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큰 형이자 그룹에서 Saxphone과 Trumpet 그리고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Phil Shulman이 늘어나는 연주 여행에 지친 나머지 그룹을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룹을 떠나 옛날 직업인 교정 선생님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Gosport, Hampshire에서 선물가게를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Gentle Giant는 소속을 영국의 Vertigo에서 미국의 WWA(World Wide Artists)로 옮기게 되고 곧이어 1973년도에 그들의 5번째 앨범인 "In a glass house"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 또한 커버 디자인이 아주 특이한데 바깥 표지에는 투명한 판위에 멤버들의 연주하는 모습이 찍혀 있고, 앨범 안쪽에 또 다른 판이 있는데 이 판위에도 멤버들의 연주 모습이 찍혀 있어 바깥쪽의 투명한 그림과 안쪽의 연주하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이 앨범의 디자인을 이들의 전 앨범인 "Octopus"를 디자인했던 Roger Dean의 형인 Martyn Dean에 의해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In a glass house" 앨범은 이들이 선보인 앨범 중 의외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앨범으로써, 첫 부분과 끝부분이 유리가 깨지는 소리로 장식이 되며 음악적 무게감이 이전 앨범들에 비해 다소 가벼워진 듯한 인상("The Experience"에서만은 강약의 조화를 이용한 이전 스타일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을 지우기가 어렵다. 또한 앨범 전반에 걸쳐서 퍼커션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으며 각 악기 파트의 역할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악기를 이용한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 앨범에서도 역시 보컬의 비중은 매우 크며 이 보컬을 하나의 악기로 인식해야 할 정도로 보컬은 이들의 사운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들의 비상업적 사운드에 WWA 레코드 측에서는 이 앨범의 제작을 선뜻 수용하지 않았었다는 후문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영국내에서만 15만장이나 팔리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러할 즈음 미국의 Columbia레코드사에서는 이들에게 사운드를 조금 부드럽게 하여 다음 앨범을 자신들의 레이블을 통해서 발표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Gentle Giant는 영국에서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공연을 가지게 되는데 이 공연은 이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대 성황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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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and The Glory
1974년 WWA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이 되는 "Power and the Golry"를 발매한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Water Gate이후의 사회 분위기에 걸맞는 정치적인 내용의 가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음악적 분위기 자체도 전 앨범과 비교해 그리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앨범에서의 사운드는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A 면에서는 다소 부드럽게 곡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반면 B 면에서는 비교적 강한 사운드로 곡을 전개해 나간다. 'Playing the game' 후반부에서 들려주는 Kerry Minnear의 싸이키한 키보드 연주가 인상적이며 'The Face'의 도입부의 산뜻한 바이올린 연주도 들을만 하다. 전체적으로 A 면의 곡들보다는 B 면의 곡들이 곡의 완성도 면이나 음악적 충실도면에서 더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다음해인 1975년에 Phonogram 레이블에서 이때까지의 그들의 활동을 집약한 2장짜리 편집앨범을 제작하자는 제의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계획은 실천에 옮겨졌고 이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Giant Steps(The first five years)"이다. 이 앨범의 가치는 당시에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이 되고 있었던 "The power and the glory"의 싱글버젼이 수록되어 있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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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Hand
이럴즈음 Gentle Giant에게 Chrisalis 레이블로부터 새로운 앨범 계약이 들어오는데 이 일을 추진한 사람이 Terry Ellis로써 그는 Gentle Giant가 Jethro Tull과 함께 공연을 가질 때부터 이들을 눈여겨 보아 왔었다. 그리하여 미국 내에서의 공연을 가질 때부터 이들을 눈여겨 보아 왔었다. 그리하여 미국 내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Gentle Giant는 Chrisalis 레이블에서의 첫 번째 앨범을 준비하게 되는데 바로 1975년 8월에 발매된 "Free Bird"이다.
이 앨범은 레코드사측의 홍보에 힙입어 앨범 챠트에서는 하위를 기록하였으나 Gentle Giant의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앨범에 들어 있는 'Just the same'과 'On reflection'은 그들의 라이브에서 즐겨쓰는 레파토리가 된다.
사운드를 살펴보면 이전까지의 독특한 그들만의 사운드를 기본적으로 간직하고는 있으나 곡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그들이 이전까지 써왔던 약간의 파격적인 맛이 없어지고 다소 편하게 곡 전개를 함으로써 좀더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어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수록된 대 부분의 곡에서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나 타이틀 곡인 'Free hand'에서는 다시금 독특한 그들의 사운드를 엿볼수가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듣고 나면 이들이 여러 스타일의 곡들을 시도해 본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물론 Gentle Giant의 골수 매니아들에게는 이 앨범이 조금의 실망을 느끼게 할지 모르나 그러한 편견없이 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보면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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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 다음해인 그들의 8번째 앨범인 "Interview"가 Chrisalis를 통해 발매가 된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기는 하나 B 면의 곡에서는 과거 그들의 스트일로 약간 돌아간 듯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A 면은 특색이 전혀 없어 대중에게의 어필도 그들의 예전 사운드를 원하는 팬들에게의 만족도 주지 못하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앨범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하여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Another show'나 'Empty City'와 같은 곡들은 이들에게서만 느낄수 있었던 예전의 감흥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는 곡들이다.
이 앨범 발표이후 이들은 영국을 비롯한(결국 영국에서의 마지막 라이브가 되지만) 유럽에서 공연을 가지게 되고 이때의 실황을 담은 앨범인 "Playing the fool"이 1977년 1월에 발매가 된다. 이 앨범은 그들의 음악활동 중에서 상당히 획기적인 앨범으로 기록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스튜디오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그들의 연주를 라이브에서도 완벽하게 연주하는 그들의 연주실력을 높이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new wave와 punkrock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분위기에 Gentle Giant역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그들의 음악적 변화는 다음 앨범인 "The missing piece"에서 여실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는 예전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다.
이 앨범에서 'The weeks in spain'과 'I'm turning around'가 싱글로 컷트되었으나 팬들의 반응은 역시 냉담했다.
이 앨범 발표후 Gentle Giant는 영국에서의 그들의 마지막 연주가 되어버린 "Sight and sound in concert"(BBC방송)에서의 연주를 가지게 되며 Phonogram 레이블에서는 그들의 2번째 모음집인 "Pretentious(For the sake of it)"를 발표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매된 "Giant for a day", "Civilian"과 미국에서 발매된 싱글들은 Gimmix cover형태로 앨범이 발매가 되었으나 커버가 특이하다는 것 이상의 것을 주지 못한, 음악적으로는 여전히 실망만 안겨준 앨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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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맺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발표된 수 많은 뛰어난 뮤지션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한번만을 듣고도 그들의 사운드에 흠뻑 젖어들에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의 음악은 그들의 사운드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 시간의 정도와 자신에게 오랫동안 감동을 주는 것과는 또한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여러 뮤지션들의 음악을 모두 이해하기란 역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인지 처음들어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음악에게 가끔은 쉽게 홀대하는 경험을 한번씩은 기억을 하게 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신에 의해 묻혀져 버리는 과오를 조금씩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상자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은 관심을 던져주는 더 큰 감동을 한번 경험하는 것은 음악을 계속해서 감상하는데 가장 유익한 경험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글 : 맹경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