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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6
ARTIST: | Gene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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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U.K |
GENRE: | Symphonic Prog |
ALBUM: | From Genesis To Revelation (1969) Trespass (1970) Nurery Cryme (1971) Foxtrot (1972)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The Lamb Lies Down On Broadwya (1974) A Trick Of The Tail (1976) Wind & Wuthering (1976) ...And Then There Were Three... (1978) Duke (1980) Abacab (1981) Genesis (1983) Invisible Touch (1986) We Can't Dnace (1991) Calling All Stations (1997) |
MEMBER: | Peter Gabriel (vocals, flute, oboe, 1967-75) Tony Banks (keyboards) Mike Rutherford (bass, guitar) Anthony Phillips (guitar, 1967-70) Phil Collins (drums, vocals, 1970-96, 2006-present) Steve Hackett (guitar, 1970-77) Ray Wilson (vocals, 1997-98) John Silver (drums, 1968-69) Chris Stewart (drums, 1967-68) John Mayhew (drums, 1969-70) |
원본출처: |
영국적 아름다움의 미학 - GENESIS
이번호부터 시작되는 영국 그룹중 그 뛰어난 독창성을 지니고 있는 Genesis...
사실 지난 편집집회의때 부여되었던 여러 그룹중 Genesis는 쓰기가 꺼려지는 팀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정거 내려가고 있는 이유는 Pink Floyd, Yes, King Crimson에 비해 이들은 우리들의 관심을 조금은 벗어나 있어서 그 안타까움을 적어보기 위해서 이다.
많은 수의 이태리 그룹들에게 음악적 모티브를 제공했던 Genesis는 필자에게도 어려운 대상이다. 그래서 우선 독자분들게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모아놓은 이들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8년전 발매되었던 Genesis의 “Nursery Cryme"에 삽입된 성시완 선배님의 해설지를 토대로 쓴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물론 이들에 관한 기사를 쓰려면 연재 형식을 빌어 써야만 된다고 본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도 자주 들으면 짜증이 나듯이 이들의 소개가 길면 길어질수록 사실 나열이 될것같아 비록 충분치 못하지만 이번 한회에 소개로 끝을 맺을까 한다.
또한 Genesis의 음악을 영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런던태생의 기고가인 Nigel Harris씨의 글도 실어볼까 한다. (그는 지금 영국의 아트록 전문지인 “Audion"지의 기고가로 활약하고 있다. - Special thanks to Nigel Harris)
Genesis의 역사는 Charterhouse라는 공립학교로부터 시작된다. Charterhouse는 영국 9대 명문학교로 매우 엄격한 규율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수적인 곳이었다.
Peter Gabriel과 Tony Banks는 Charterhouse 학교에 입학할 강시 공포감을 Fags라는 상급학생들의 교내 압력단체를 떠올리면서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Charterhouse는 기숙사 체제의 매우 엄격한 학교의 규율속에서도 rock musician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지닐수 있도록 예술 방면에서 만큼은 널리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Genesis의 모제가 되는 두 개의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 두 그룹은 Anthony Phillips가 결성했으며 Michaek Rutherford거 함께했던 “The Anon", 그리고 Peter Gabriel과 Tony Banks , Chris Stewart가 재적했던 ”Garden wall"이었다. (Peter Gabriel과 Tony Banks는 1963년 9월에 입학한 선배들이며 Mike Rutherford는 1964년 9월에 입학한 후배였다.)
이 두 개의 그룹이 Genesis의 원형이 된 가장 큰 동기는 1966년 여름학기 말에 열린 조인트 콘서트로부터 비롯된다. The Anon의 보컬을 담당했던 Richard Macphail (초기 Genesis의 사운드 엔지니어였으며 현재 Peter Gabriel의 공연 매니저)이 주최했던 이 공연으로 말미암아 두 그룹은 상호 협력하게 되었고 비로소 Genesis라는 그룹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From Genesis To Revelation
언더그라운드 요소가 매우 강한 음악을 창작하려고 했던 젋은 청년들. 그들은 새로운 음악의 창작에 정열을 쏟고 있었으며 음악적인 견해가 일치되고 있었다.
Genesis가 음악형태를 체계적으로 확립했던 1967년 여름 그들은 어려운 항해에 돌입했다. 데모 테잎을 제작하고 Charterhouse의 선배인 Jonathan King(후에 10CC의 제작자겸 매니저로 유명해짐)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차기 데모 테입의 제작과정은 다른 무명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피할수 없는 대암흑기로서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조건과 아마츄어적인 성격을 벗어 버려야 하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1967년 12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에게 Denmark Street에 위치한 Regent Sound Studio A가 제공되어 본격적인 프로그레시브 음악에로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Jonathan King은 제작을 담당했고 Arthur Greenslade가 String 편곡을 담당하여 앨범제작에 참가한다.
그들의 행운은 계속되어 록 음악 기고가인 Chris Welch가 그들을 음악화제로 다뤘으며 Kenny Evertt라는 DJ를 통해 라디오 방송에서 Genesis의 음악이 최초로 방송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룹명에 대한 문제를안고 있었다. 그들 이전에 이미 미국의 팝 그룹인 Genesis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Decca레코드사는 Jonathan King에게 그룹명을 바꿀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으며 결국 데뷔앨범은 그룹명 없이 “From Genesis To Revwlation"으로 발표하게 된다. 후에 미국 그룹 Genesis가 해산되자 다시 그룹명을 확고하게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8년 2월 22일 Genesis는 ‘The Silent Sun'과 ’That's me'가 담긴 싱글로 데뷔했으며, 같은해 5월 10일 ‘A Winter Tale'과 ’One eyed Hound'란 곡이 담긴 싱글을 발표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두 장의 싱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Jonathan King은 Genesis의 앨범 제작을 결심하고 1968년 여름휴가 기간의 10일동안 Regent Sound Studio B의 사용을 계약했다. 여기에서 제작된 앨범이 바로 Genesis의 데뷔작인 “From Genesis To Revelation"이다. (Decca Records 1969년 3월 발매) 이 앨범은 매우 적은 분량인 600장만 발매되었으며 1976년에 ”Roots"라는 타이틀로 재발매 되었다.
이 앨범이 녹음될 당시 Genesis의 멤버들 나이는 15~17살의 틴에이저들이었으며 그들의 연주와 노래는 평범했으나 나이에 비해 노련미가 엿보였따. 이 앨범에서는 결성 멤버인 Chris Stewart 대신 John Silver (1969년 말 탈퇴)가 드러머로 참가했다.
데뷔앨범을 발표한 후 Genesis는 자신들의 음악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상업성이 농후한 음악업계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Genesis의 음악적인 대변혁기이며 어려움속에서 거대한 힘을 농축 시킬수 있었던 황금과 같은 기간이었따. Genesis는 이 기간 동안에 놀라울 정도로 음악적인 차원이 높아졌고 난해하지만 음악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때 버블검 스타일의 제작자인 Jonathan King과 관계가 끊어져TDmau 그들은 런던으로 진출하여 악기 보강에 심혈을 기울이며 연주력 향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Trespass
1969년 7월 Genesis는 본격적인 직업밴드로서 출발을 다짐했다. 그들에게는 경제적인 조건이 매우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여름 기간동안에 그들은 개개인의 집을 이용하여 음악적 연구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고 'Dust'와 ‘White Moutain'의 데모테잎을 Regent Sound Studio B에서 제작했으며 9월의 2주동안 리허설을 갇고 공동생활과 함께 적극적인 연주 활동에 들어 갔다.
Genesis는 적극적인 연주활동으로 호평을 받기 시작했으며 1970년 2월에 런던 Queen Mary College에서 가졌던 공연은 대성곡 이었다.
그들은 Decca 레코드와의 인연을 끊고 당시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신흥 레코드회사들인 Charisma나 Island와 같은 회사들과 계약하는 바램을 갖고 있었다. 결국 당시 Charisma 레코드사의 사장 Tony Stratton Smith와 손을 잡고 Genesis는 새로운 앨범의 제작을 시작했는데 그 앨범이 바로 Genesis의 걸작앨범이며 두 번째 앨범인 “Trespass“이다. 이 앨범에는 Genesis의 세 번째 드러머인 Jonathan Mayhew가 잠시 참여 했으며 Anthony Phillips는 이 앨범 녹음후 건강상의 이유로 그룹을 탈퇴했다.
런던Trident studio에서 녹음된 “Trespass"는 Genesis를 Charisma레코드에 소개했으며 Van Der Graaf Generator와 Rare bird를 발굴해 냈던 John Anthony가 제작을 담당했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은 Genesis의 또 하나의 데뷔앨범이라 할 만큼 “From Genesis To Revelation"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앨범이 녹음되는 상황속에서 Flaming Youth 출신의 드러머 Phil Collins와 Steve Kackett이 가입되었다. 앨범 “Trespass"는 로맨티시즘과 중세 봉건 사회를 풍자한 내용과 더불어 그리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Paul Whitehead의 앨범커버로 유럽지역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Nursery Cryme
본 앨범의 리허설은 Charisma 레이블의 사장인 Tony Stratton Smith 의 전통이 어린 옛 가옥에서 행해졌는데, 이 가옥에서는 VDGG의 리허설 뿐만 아니라 Neil Diamond, Leonard Cohen, Bert Jansch등과 같은 거물들이 머물고간 유명한 곳이었다. Crowborough에 위치한 Tony Stratton Smith의 튜터 양식으로된 Luxford House는 대자연으로 덮여진 환경 때문에 음악인들이 창작활동을 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장소였다. 하지만 “Nursery Cryme"의 작곡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으며, 앨범의 녹음 제작에도 기자재 문제로 인하여 커다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1971년 11월 Charisma 레코드사는 “Nursery Cryme"을 발매했다. ”Trespass"를 제작했던 John Anthony가 제작을 다시 맡았고 앨범 커버는 초반기 Paul Whitehead의 이색적인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Trespass"보다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ELP의 Keith Emerson 만큼은 Lynceum에서 가졌던 Genesis의 공연을 보고 기고한 1971년 11월 20일자 Melody Maker지에서 Genesis의 새로운 앨범 “Nursery Cryme"에 대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Charisma 레이블은 1972년 6월 자기 레코드사 소속인 Lindisfarne, VDGG 그리고 Genesis의 투어공연을 기획하고, 6월 26일 프랑스 파리의 올림피아에서 그 첫 테잎을 끊는다.
이로 인해 유럽, 특히 벨기에, 이태리 등지에서의 Genesis의 인기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1972년 1월 벨기에 인기차트 1위에 “Trespass"가 이태리 쪽에서는 ”Nursery Cryme"이 오르고 있었다.
이태리에서는 청중들 뿐만 아니라 음악인들까지도 Genesis를 추종하기 시작했는데, 이태리의 거물 그룹 PFMdms 그들의 음악형태에 초점을 맞추었고 Acqua Fragile과 같은 그룹들은 대표적인 팀으로 등장했다.
Foxtrot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Island 스튜디오에서의 녹음 작업후에 72년 11월 4집은 “Foxtrot"를 공개한다. 이 작품은 록음악의 변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중 하나로 Genesis가 미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가 된었다.
Tony Banks의 서정적이면서 웅장한 멜로트론 연주가 돋보이는 ‘Watcher of the sky', 유러피안 아트락에 있어서 테크니컬 사운드의 정형을 세운 명작 'Supper' Ready'는 명곡으로 멤버 전원의 혼을 담은 결정체로 평가할수 있다. Peter가 뛰어난 감수성과 자신의 영혼으로 노래하였다고 평하는 이 곡은 그 자신도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의미가 담긴 곡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어떤 심령적인 사건을 계기로 선과 악의 진정한 의미를 표출해 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정수라고 표현된 이 작품은 영국 음악에 있어서의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클래시컬한 요소, 그리고 그러한 것들과 어우러지는 여러 전자 악기들의 완벽한 조화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Steve Hackett의 아르페지오 선율의 기타. Mike Rutherford의 단발적이고 기습적인 베이스 연주 등이 독창성 있는 사운드 구성에 크게 기여했다.
1972년 Genesis는 첫 미국 공연에 참여한다. 이 공연을 계기로 무대에서 Peter Gabriel의 의상은 쉴새없이 변화하기에 이른다.
“Foxtrot" 앨범을 완성한 Genesis는 미국 뉴욕에 있는 필하모닉 홀에서 뇌성마비 어린이를 위한 기금마련 공연에 참여하게 되는데, 한 겨울에 거행된 이 공연은 Genesis가 미국에서 가진 최초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관해 한가지 숨은 얘기가 있다.
Genesis의 공연은 오후 7시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 갑자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오케스트라 연습을 결정하여 Genesis는 오후 4시까지 이 공연장에 들어갈수 없게 된 것이다. 7시에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3시간 이상의 준비시간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결국 3시간 안에 무리하게 조절된 음향기자재들은 이들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했다. 이로인해 이들은 모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몹시 지친 상태에서 공연을 진행시켰다. 공연을 끝내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Mike는 자신의 베이스 기타를 냉동댕이쳐 버렸고, Peter는 울상이 된 얼굴로 곧바로 되돌아 가려고 런던행 비행기 시간을 물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공연장에 모인 많은 청중들은 이들에게 그때까지도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신문들을 통하여, 또 많은 DJ들의 입을 통하여 훌륭한 공연으로 극찬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 Genesis 선풍을 몰고 왔다. 이후 미국 동부해안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가져 자신들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당시 최고의 실황공연 그룹으로 손꼽혔다.
73년 “Foxtror"의 프로모션 투어로 다시 유럽 순회공연을 가지게 되었고. 4월 두 번째의 미국 공연에 참가한다. 이 당시 공연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이 같은해 발표된다.
이들은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와 73년 10월에 6번째 앨범인 “Selling England By The Pound"를 발매한다. Peter Gabriel재적시 Genesis가 내놓은 앨범 가운데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앨범으로 평가되는 이 음반은 사운드가 단순해지고 맑아졌으며 대중성을 함축하고 있다.
앨범 발매 직후에 가졌던 영국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74년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를 순회한 투어에서 Genesis의 공연은 청중들에게 매우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 공연에서 새 앨범을 구상한 Peter Gabriel은 영국으로 돌아와 스튜디오에서 고심해서 만든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를 74년 11월에 더블앨범으로 발표한다.
Genesis가 발표했던 수 많은 작품 가운데. 뛰어난 독창성을 보인 이 음반은 metatheatrical group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으로 그 초현실적인 이야기 전개는 팬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많이 있었다.
이웃 일본에서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 앨범의 평을 써놓을 정도로 Peter Gabriel의 천재성과 다축적시간체험 (多軸的時間體驗) - 시간감상의 왜곡분열, 그리고 정합(整合), 즉 시간감상의 변증법적 지향 -을 의식적 구성의 형태로서 보여주고 있다. 자아형성 과정에 있어서 융(Carl Gustav Jung - 스위스의 정신병 의사이지 심리학자)적 해석이 가능한 이 앨범에서는 정신기능의 일부분인 자기 소속성을 읽어 보린 John과 Rael이라는 이름의 자아를 끊임없이 창조하려는 한 인물 - 일므은 두 개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내부 심리에 잠재하고 있는 두가지의 양면성을 지칭 - 의 이중자아를 기반으로, 환청(幻廳), 체험환상, 추적망상등의 병적체험과 인지(認知)주의, 시간적 인식의 왜곡, 지각현상의 과민등을 표현해 내고 있다. 앨범 끝에서 John과 Rael의 분열된 자아의 합치되는 장면을 설정하고, Gabriel이 “It is real - it's real"이라고 외치는곡 ”It"에서 Rael과 Real의 스펠링이 바뀌는 anagram(time을 emit, mite 등으로 만드는 철자를 바꾸는 것을 지칭)적 구상과 실제 주인공인 Rael이 현실 (Real)의 허상으로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것은 당시 Peter Gabriel이 솔로 활동을 계산한 r의 정신분열적인 심리상태를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Peter Gabriel과 다른 멤버들 사이의 (특히 Tony Banks)불화가 심했던 기간에 등장한 이 앨범은 그러한 상황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Genesis는 이 앨범의 소개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74년 12월부터 75년 1월까지 공연을 갖는다. 성곡적인 이 공연동안 Peter Gabriel은 다른 4명의 뮤지션들보다 월등히 뛰어남을 보였다. 그래서 75년 여름 Peter Gabriel은 그룹과의 작별을 고했고 이에 따라 Genesis는 그룹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이로인해 Genesis는 Peter Gabriel과 거의 흡사한 목소리를 가진 드러머 Phil Colluns가 보컬을 맡게 되었고. Tony Banks와 Mike Rutherford가 곡을 쓰기에 이른다.
75년부터 시작도니 새 앨범의 녹음작업은 12월에 끝나 76년 8번째 앨범인 “A Trick Of The Tail"을 발표한다. Steve Hackett의 기타. Tony Baanks의 뛰어난 창작력과 건반연주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도 Phil Collins의 탁월한 재능이 그 빛을 발휘했다.
그해 4월 Genesis는 미국 공연을 가지게 되었는데, Phil Collins가 보컬을 맡게되어 빈약해진 드럼파트를 보강하기 위해 Bill bruford가 동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5~6월에 가진 유럽공연에서 Phil Collins는 Peter Gabriel에 버금가는 ‘연기자(Performer)'로서의 진가를 보였다.
공연에서 돌아오자마자 새 앨범 작업에 착수한 이들은 77년 1월 “Wind & Wuthering"을 공개한다. 사운드가 매우 가벼워지면서 요소요소에 아름다운 전개 부분이 예전의 Genesis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 앨범은 다이나믹하면서도 서정적인 면으로 인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드러머를 Chester Tompson로 교체한 뒤 미국, 호주, 일본엥서 공연을 가졌고, 6월 파리의 Palais Des Sports에서 3차례의 콘서트를 포함한 유럽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녹음한 ”Second Out"이 발매되었는데, 이 음반에서는 Steve Hackett의 마지막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77년 가을 탈퇴) 리듬면에 있어서는 Brand X를 연상시키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Second Out"앨범 이후 탈퇴한 Steve Hackett의 후임으로 78년 Mike Rutherford가 기타 파트를 맡는다. 이어 내놓은 11번째 앨범 ”And Then There Were There"는 곡 전체에서 Phil Collins의 강한 개성이 드러나 있어 Genesis 그룹컬러가 그의 영향력하에 있음을 본여준 작품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Follow You Follow me'가 팬들의 큰 호응을 받은 곡으로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둔 곡으로 기록된다.
10번째 작품인 “Second Out"에서부터 대중성 지향의 사운드를 보여주었던 이들은 유럽풍의 애수가 투영된 파퓰러한 작품인 ”Duke"를 발표하면서 프로그레시브 그룹으로서의 Genesis의 이름은 퇴색하기에 이른다.
80년 “Duke"앨범 이후 81년 ”Abacab", 82년에 공개한 라이브작 “Three Sides Live", 83년의 ”Genesis“ 그리고 86년의 ”Invisible Touch"등은 초창기 Genesis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수 없지만, 철저한 프로정신에 입각한 앨범제작. 연주의 다이나믹함 그리고 독자적인 멜로디의 추구는 팝밴드로 전락해 버린 이들을 아직도 최고의 록 그룹으로 평가하게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또한 86년 16번째 작품인 “Invisible Touch"이후 멤버들은 각자 정력적인 솔로 활동을 해나갔으며 그 와중에 6년만인 지난 92년 새 앨범 ”We Can's Dance"를 발표했다.
이들 멤버중 Phil Collins는 대단한 솔로활동 성공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에 질세라 Peter Gabriel 역시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고, 2매의 솔로작품을 발표한 Mike Rutherford는 Mike & The Mechanics를 결성해 활약중에 있고, Tony Banks는 4장의 앨범을 내놓고 현재는 영화나 드라마의 사운드태랙 앨범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Steve Hackett은 86년 Asia의 Steve Howe와 GTR을 결성해 활동한 바가 있고, Anthony Philips는 Genesis의 탈퇴 이후 영국적 소박함을 표현한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이제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영국의 컬럼리스트인 Nigel Harris가 본 Genesis 음악에 있어서 표현하고자 했던 영국적인 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필자의 완벽하지 못한 번역의 양해를 구한다)
초기 Genesis음악에 있어서의 영국적인 모습 (by Nigel Harris)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받아 들여진 앨글로-아메리칸 록의 탁월함은 국제적인 형태의 음악으로 변모해 갔다. 전세계적으로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각국의 음악적 사고에 반대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브리티쉬 락에 이TDj서는 영국문화의 진수를 반영한 음악들이 만들어졌다.
그중 70년대 음악활동에서 두드러진 그룹으로는 King Crimson, Yes, Renaissa nce, Canterbury scene 그리고 다른 여러팀을 꼽을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특별한 중요성을 띄고 있는 그룹은 바로 Genesis였다.
70년대 수퍼그룹 가운데 아마도 Genesis는 ‘영국적’취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77년에 발표된 “Wind & Wuthering”까지 초반기의 모든 앨범들은 그러한 본보기가 될만하다. 특히 커버 디자인에 있어서 “Trespass"의 중세적이고 신화적인 그림. ”Nersery Cryme"의 빅토리안 시대때의 죽음의 선택, “Foxtrot" 커버에서 보여준 영국 귀족들의 난폭하고 유혈적인 스포츠인 여우사냥 그림, ”Selling England By The Pound"에서의 잔디깎는 기계와 함께 묘한 형태로 배치된 정원모습, 초현실적 사진의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가짜 빅토리안 계열을 그린 ”A Trick Of Tail"등 그 독특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모든 거버 디자인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내부적 요소로 작용하였고 가사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곡은 영국적 포크와 낭만적인 클래식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플롯,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멜로트론 같은 악기로 처리된 꿈의 순간은 전원적인 영국의 모습을 잘 묘사해 내고 있다.
Genesis 음악의 가사는 영국의 문화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다. 즉, 터무니없는 시, 구어체 영어의 악센트와 표어, 신화, 전설, 동화, 동요로 되어 있다. 어떤 곡들은 음에 있어서 코믹함과 가사의 어처구니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가사들은 Lewis Caroll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Lewis Caroll은 명작동화인 Alice In Wonderland의 저자로 Genesis 음악의 가세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Peter Gabriel은 자주 영국의 지역적인 악센트(사투리)와 표현을 사용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런 다양한 억양의 구사로 Gabriel은 곡에 담긴 여러 가지 개성있는 성격을 적절히 묘사해 내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와 연극의 소도구에 불과했던 노래가 이들 무대 공연에 있어서는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성곡적인 본보기는 “Selling England By The Pound"에 수록된 'The Battle Of Epping Forest'로서 잔인한 악등들에서부터 매우 고상한 영국 성직자들까지 광범위한 인물들의 성격을 담고 있다.
영국은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같은 로맨틱한 신화에서 J.R.R Tolkien의 현대의 허구적인 얘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설의유산을 가지고 있다. Tolkien의 걸작은 3부작 구성의 서사시인 “The Lord Of The Rings"로서 70년대 Genesis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인기있는 작품이었따. 그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영국 소설가의 작품과 Genesis의 곡 사이에는 각별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Tolkien의 상상속 세계인 Middle Earth는 신화적 인물들이 실재로 존재하는 곳이며, 마법이 과학으로 대치되며, 많은 Genesis의 노래에 등장한 이상적인 세계로 특히 ”Nursery Cryme"에 수록된 대곡 ‘The Fountain Of Salmacis'에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이 노래는 영국의 이교도적인 영향을 언급한 nymph와 hermaphrodite를 담고 있다. 19세기(심지어 현재까지도) 보육원(아이방)은 부유한 영국 부모들의 아이들이 가질수 있는 비밀의 세계였다. 유모(보모)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고용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Genesis의 또다른 곡인 ’The Musical Box'에서 보여주고 있다. Genesis는 그러한 특권의 세계에 매료당했고. 동시에 그것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다음 가사에서 전하고 있다.
“and the nurse will tell you lies, of a kingdome beyond the skies'
- 보모는 하늘 너머 왕국에 대한 거짓말을 들려줄 것이다.
동화 내용을 암시하는 문구는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지속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Peter Gabriel과 Tony Banks는 부유츤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인 Charterhouse의 틀에서 향유되는 특권 지역의 개인적 경험을 체험한다. 인터뷰에서 Gabriel은 그당시 생활은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부유한 사립교육 체계는 이들의 냉소적인 면의 이상적 목표가 되었고. 작곡에 있어서 반항적인 측면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영국인이라면 ‘Old King Cole'이라는 동요 리듬이 곡에 포함된 것을 알아차릴수 있을 것이다.
“Nursery Cryme"의 ‘Return of The Giant Hogweed'에서 Gabriel은 이곡에 연관된 특이한 현상을 설명해 주고 있다. 빅토리안 시대때 식물한자는 기괴한 풀을 외국에서 가져와 소개하였다. Gabriel은 이러한 식물학적 사실을 소설화한 John Wyndham의 SF소설인 ”The Day Of Triffids라 불리는 육식성 식물을 주제로 쓰여진 소설이다.
Genesis의 많은 노래는 한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장의 컨셉트 앨범인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몽속에서 전개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도 영국인이라면 이것에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가장 흔한 형태의 예술이 문학이라면 이야기를 쓰는 것이 - 심지어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있어서는 - 음악인들에게 흔한 일인 것이다. 그 이야기의 요약은 가사에 담겨 있다. Genesis가 클래식 레코드에 담겨있는 줄거리를 풍자화 시킨다는 느낌도 받을 것이며. 영국적 전통의 영역에서 자라는 음악과 시의 독특한 작가로서 그들이 평가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Watchers Of The Sky' 같은 드라마틱 하면서 코믹한 곡을 듣고 나서는 그것을 의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의 가사내용은 음악을 영국적인 사운드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Genesis는 때때로 초현실적이며, 영국적 개성을 넌센스한 형태의 절묘한 변형으로 관련되어 질 것이다.
이상으로 Genesis의 음악에 관한것들을 살펴 보았다. King Crimson에는 Robert Fripp이, Pink Floyd에는 Roger waters가 있듯이 Genesis에는 천재 Peter Gabriel이 있었기에 그들의 음악은 찬란한 꽃을 피울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Peter Gabriel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전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다른 멤버 역시 뛰어난 실력으로 Genesis를 빛내 주었지만...
전통과 혈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뿌리깊은 테두리 안에서 발전한 Genesis의 음악은 다른 그룹들이 만든 영국적 사운드와는 달리 문화적 유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어느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영국적(Englishness - 사전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로 British가 거시적 표현의 의미라면 Englishness는 미시적 의미의 사용을 지칭하는 필자가 만든 단어)인 아름다움과 섬세함의 미학을 담고 있다.
(글 : 이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