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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48

YES

alicewonder
추천 수 : 39 / 0
조회 수 : 20055
2003.06.14 (22:52:32)
ARTIST:  YES 
COUNTRY:  U.K 
GENRE:  Symphonic Prog 
ALBUM:  Yes (1969)
Time And A Word (1970)
The Yes Album (1971)
Fragile (1971)
Close To The Edge (1972)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1973)
Relayer (1974)
Going For The One (1977)
Tormato (1978)
Drama (1980)
90125 (1983)
Big Generator (1987)
Union (1991)
Talk (1994)
Open Your Eyes (1997)
The Ladder (1999)
Magnification (2001) 
MEMBER:  Jon Anderson (vocals, 1968-79, 1983-present)
Rick Wakeman (keyboards, 1971-74, 1976-79, 1990-92, 1996, 2002-present)
Steve Howe (guitar, 1970-80, 1990-92, 1996-present)
Chris Squire (bass)
Alan White (drums, 1972-present)
Trevor Rabin (guitar, vocals, 1983-95)
Tony Kaye (keyboards, 1968-71, 1983-95)
Bill Bruford (drums, 1968-72, 1990-92)
Patrick Moraz (keyboards, 1974-76)
Peter Banks (guitar, 1968-70)
Trevor Horn (vocals, 1979-80)
Geoffrey Downes (keyboards, 1979-80)
Billy Sherwood (guitar, 1994-95, 1997-99)
Igor Khoroshev (keyboards, 1998-2000) 
원본출처:   

Blue_jpg.jpg


화려한 색채의 수직적 공간미학 - Y E S

우선...
필자는 간혹가다 상상을 해본다. 1960년대 말, 록 음악의 르네상스가 꽃 피우기 직전인 이 시기, 창조의지로 가득찬 20대 초yes_band2.jpg반(고작 대학 초년생이다)의 젊은이들이 우리가 소위 슈퍼 그룹이라며 경외하는 밴드들을 결성하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을 때이다. 그 당시의 그룹들, 적어도 우리들 인구에 회자되는 그룹들만 하여도 상당수가 된는 것이기 때문에 캠퍼스내에서는 그야말로 음악 좀 한다고 껍쩍대는 친구들로 드글거렸을 것이다.
"어~~이, 로저, 오랜만이야. 너 요즘도 그 시드 뭔가하는 친구하고 어울리고 있니? 그 친구 맛이 간 것 같던데.. 너도 물드는거 아니야? 감수성은 뛰어난 것 같지만..."
"존. 너 그 내시같은 목소리 좀 그만 할수 없니? 남자가 그게 뭐냐? 내 목소리 좀 들어 봐. 얼마나 냉소적이고 멋있니? 요즘 같이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는 이러한 목소리의 노래가 필요하단 말이다. 너 한번쯤 좀더 비관적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있어."
"충고 고맙네. 친구. 노력해 보지. 오늘밤 K대학에 다니는 빌 브루포드란 친구를 만나볼 생각인데 같이 안 가겠어? 그 친구 좀 치는 모양이던데... 하지만 재즈 필드에 있어서 나하고 맞을지 모르겠어 아무튼 크리스가 추천한 친구니 믿을만 하겠지??"
"오늘은 좀 곤란하겠는데... 오늘 밤 시드하고 같이 프립 선배에게 기타 배우기로 했거든. 미안해. 아참. 너 피터 해밀 만나면 꿔간 돈 빨리 갚으라고 좀 전해줘. 그 자식 여자 앞에서 폼 좀 잡으려고 돈 빌려간 모양인데 말이야. 그래도 역시 여자 앞에서는 그 녀석 처럼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제격 아니겠어? 난 저번에 여자앞에서 노랠 불렀더니 다 죽어가는 그 귀신같은 목소리 집어 치우라고 하더군. 제길."
"야. 기운내. 그래도 피터 가브리엘보단 낫다. 그 친군 나이는 어린데 거의 60세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아. 피터한테 빌려간 꽃 가면이랑 여우가면 돌려줘야 하는데 떼어먹을까? -_-;;"
"야. 나 빨리 가 봐야 하겠다. 프립 선배가 얼마나 꼬장꼬장 한지 알아? 지각하면 국물도 없다고. 큰 소리로 야단이나 치면 애교라도 부려보지. 한마디 말도 없이 째려 보는 데는 숨이 컥컥 막힐 지경이야. 나중에 시간되면 키스네 집에 가서 새로 산 무그 뭔지 하는 것 소리나 들어 보자고. 그럼 안녕..."
물론 가상의 상황이며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는 픽션이다. 약간은 장난기를 더하였지만(많은 분들이 필자의 글이 너무 무겁다고 해서 그만..) 이와 비슷한 상황이 아마도 그 당시에는 비일비재 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젊은이들의 창조적 에너지로 충만한 시대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것은 예스 특집이다. 예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예스의 탄생
예스 결성의 시발이 된건은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의 만남이다. 당시 존은 그가 보컬을 담당했던 더 워리어스(The Warriors)라는 그룹을 탈퇴하여 새로운 음악 활동을 모색하던 중이었으며 크리스 스콰이어 역시 신(Syn)이라는 그룹을 탈퇴하고 자신의 베이스 연주 실력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활동을 원하고 있었다. 존과 크리스는 서로가 추구하는 음악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즉시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는데 이것이 예스의 전신 그룹인 토이숍(Mabel Greel's Toy Shop)이다. 이 밴드에는 이들 두사람외에도 크리스가 신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기타리스트 피터 밴크스(Peter Banks)와 역시 기타를 연주 하였던 크리브 베이리(Clive Bailey), 그리고 드럼 주자인 존 킴벌(John Cymbal), 세 사람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팝 음악에 기초한 연주를 들려 주었는데 존은 좀더 강력한 연주가 바탕이 되는 컨셉트 지향의 그룹을 원했으며 크리스 역시 이에 동의 하였다.
토이 숍을 결성한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그들은 새로운 드럼 주자를 찾기 시작했고 이때 그들의 눈에 띈 것은 멜로디메이커지에 광고를 낸 빌 브루포드(Bill Bruford)였다. 빌 부루포드는 원래 재즈 드러머였지만 당시 사보이 브라운(Savoy Brown)의 라이브에도 간혹 참가하는등 록이나 블루스에도 관심을 보였었다.
이 젊고 탁월한 드러머를 만난 그들에게 남은 과제는 적절한 키보드 주자를 찾는 것이었고 그 결고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오다 십대에 록 음악으로 방향을 바꾼 토니 케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 다섯명의 만남. 70년대 심포닉 록의 화려한 출발을 예고하는 이 밴드의 이름은 단순하나 스트레이트한 느낌을 주는 '예스'였다.

테크네를 기초로 한 양식미의 록음악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분들 중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으로 고민한 적이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작가가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도피시켜줄만한 작품을 선사하는 작가가 더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 작품에 몰입할 것인가(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자신과 객관화 되는 작품의 대부분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여러분이 양자 간에서 하나를 택일하였다면 그 하나를 만족시켜줄만한 방법론은 어떠한 것이 있을것이며 70년대에 나타는 많은 작가들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러한 것을 이루어 내었는지 말이다.
필자의 편견으로 예스의 음악은 모두 후자에 속하는 것이며 그들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지금쯤 예스의 음반을 하나씩 꺼내어 듣기 시작하고 있을 분을 위하여 필자는 예스 음악의 특징을 결정짓는 몇가지 사항을 우선적으로 간략하게 적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 스스로 이러한 사항들이 예스 음악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되거나 지양되고 있으며 과연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평가하여 보기를 권유한다. 필자도 한 주관적 청자의 입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소리
1) 소리의 속도 2) 소리의 상승과 상승한 상태에서의 지속 3) 다중적인 소리의 중첩과 각 소리의 적절한 위치 4) 공간을 메움과 비움 5) 과장되지 않은 가상의 소리 6) 소리의 여운으로 인한 울림과 그 울림의 영향력 7) 소리(특히 비트로서의)의 강약과 위치 및 두 소리사이의 간격 8) 그 간격의 길이와 그 반복 혹은 비례적 증가 9) 현실 혹은 가상세계를 묘사하게 위해 사용하는 소리와 도구(악기)

2. 작가와 연주가의 세계관과 음악관
1) 자신 내부세계와 자신 외부세계의 관계 2) 합리성(아니면 그 반대)에 대한 선호정도 3) 자연에 대한 관점 -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 혹은 동화 4) 음악의 주된 주제 - 현실문제 혹은 탈현실

3. 커버 예술
1) 눈에 보이나 평상시 잘 인식되지 않는 사물의 한 측면에 대한 강조 2) 현실이 아닌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 세계에 대한 표현

1969년 예스의 데뷔 앨범이 아틀란틱(Atlantic)레이블을 통해서 발표되었다(워너 브라더스 소속인 아틀란틱 레이블을 통해 오리지널 앨범으로 발표된 영국의 아트록 계열 음악은 타 메이져 레이블인 버티고(Vertigo), 데카(Decca), 데람(Deram), 카리스마(Charisma), 아일랜드(Island)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예스가 유일한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다). 데뷔 앨범으로는 상당한 완성도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각 멤버의 기량이 이미 일정 수준을 상회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특히 리듬 파트에서 그러한 면은 더욱 더 두드러지는데 빌 브루포트의 면도날 같이 정교한 다이나믹 드러밍이나 단순히 리듬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닌 크리스 스콰이어의 베이스 연주가 그러하다. 예스의 특징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슈퍼 그룹들과는 달리 한 카리스마적 리더에 의 해 주도되는 음악이 아닌 멤버 전원의 조화가 중시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는 제네시스가 피터 가브리엘의 백 밴드이로 킹 크림슨이 로버트 플립의 프로젝트 그룹인 것과는 매우 비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스의 같이 폴리포닉을 중요시하는 그룹에서 이는 마땅히 지향하여야 할 바일 것이며 또한 어느 정도 성곡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예스의 데뷔앨범에는 더 버즈(The Byrds)의 'I See You'. 그리고 비틀스의 'Every Little Thing'이 커버 버전으로 담겨 있는데 이러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창기 예스가 지향하려 했던 것은 기존의 팝과 록큰롤에 기초한 하모니 중심의 음악인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이에 머무르려 하였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킹 크림슨이나 ELP의 데뷔 앨범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과거 대중음악에 대한 극심한 단절에 비해 그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었다. 또한 다른 그룹들이 자신의 데뷔 앨범에 클래식이나 재즈 혹은 현대음악과의 차별화를 이루었음에 비해 예스의 데뷔앨범은 기존의 록 음악을 지지하면서 조금씩 그 한계를 확장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들의 데뷔 앨범은 성공적인 것이었으며 아마 이 작품만 발표한 후 그들이 해산하였더라도 이 작품은 브리티쉬 록 명반중 하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데뷔 앨범 발표후 예스는 그들의 음악에 오케스트레이션적인 것을 가미하여 기존 록 음악이 가지는 음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화성 중심의 음악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를 첨가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당시 여러 아트록 그룹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 같이) 코니 콕스(Tony Cox)를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자로 기용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전에 다른 일로 그와 알게된 프로듀서 토니 콜튼(Tony Colton)의 제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인 예스의 두 번째 작품 "Time and a Word"가 1970년 3월에 발표되지만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에 의한 새로운 시도는 결론적으로 말해 완전한 실패였다. 데뷔 앨범에서 추구하려던 록 음악의 경계 확장과 이에 따른 긴장감, 그리고 풍부한 음공간감은 오케스트레이션의 도입으로 상당히 반감되어 버리고 말았다. 리치 헤븐스(Ritch Havens)곡의 커버 버전인 'No Opportunity Necessary, No Experience Needed'에서 나타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시도는 이후 예스의 진보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듯 하다. 한마디로 'The Big Contury'(윌리엄 와일더의 1958년 영화)의 테마 음악이 재미 있게 쓰였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될 곡이다. 이 앨범은 첫 번째 앨범에 비해 더 나은 것이 없는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못한 작품은 아니다(빌의 드러밍을 들어보라!). 특히 충만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으며 클래식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The Phrophet'의 도입부 오르간에 연주는 그들 음악의 미래 모습을 '예언'하는 듯 하다. 팝과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존 특유의 낙관적인 목소리로 뒤범벅이 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제 그들은 이러한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아마 지금쯤 두 번째 앨범을 듣고 계신 독자들 중 눈치 cos 분도 계시겠지만 이 작품에서 그 역할이 가장 왜소한 파트는 바로 기타 파트였다. 존이 꿈꾸는 장대한 심포니로서 록음악에 피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기타주자였던 것이다. 결국 두 번째 앨범의 레코딩이 끝나자마자(발표도 되지 전에!)존은 피터에게 탈퇴를 권유했다고(이러한 상황에서 남아 있을 연주자가 어디 있겠는가) 즉시 그를 대체할 새로운 기타 주자를 찾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일화로(저번 킹 크림슨 특집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와중에 존은 조심스럽게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 선생에게 가입을 권유했다고 한다. 물론 거절 당하시는 했지만 이 얼마나 다행인가. 존에게 그리고 예스에 있어서 말이다.
결국 예스의 새로운 기타주자는 이전 투머로우(Tommorrow)라는 그룹에서 활동했던 스티브 하우(Steve Howe)로 낙점된다. 이제 이 착한 심성의 천재 기타리스트를 얻게된 예스는 아트록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그룹으로 그리고 심포닉 록의 새로운 장을 열게되는 그룹으로 발전하게 된다.

예스 음악의 구축과 완성 - 긴장과 상승의 수직적 구조 미학
1970년 중순 예스의 다섯 멤버는 영국 서부의 한 시골에서 이개월동안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곧장 런던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녹음에 착수한다. 이 작품은 '이것이 바로 예스의 작품'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The Yes Album'이라는 타이틀로 1971년 3월 발표된다.
기존의 팝-록적인 요소를 기초로 하여 화성과 속도감, 그리고 상승된 음의 장시간 유지 등 여유 있는 긴장감으로 충만된 이 작품은 이전의 다른 어떠한 작품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가 넘쳐 흐르는 탁월한 수작이었다. 라이브에서 꽤나 오랫동안 그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Yours is no disgrace'에서 예스는 이 앨범에서 그들이 원하였던 모든 것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스티브 하우의 꿈꾸는 듯한 기타 속주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적재적소의 비트로 예스라는 스포츠카를 절벽으로 가속시키는 빌의 그러밍은 예스의 사운드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 앨범에서 엔지니어를 담당하였고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에디 오퍼드(Eddie Offord)의 탁월한 기숙과 감각 없이는 개성이 뚜렷한 이들 각 멤버의 독자적 연주를 '예스 사운드'라는 한 결정체로 승화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예스의 음악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긴장감(sence of tension)'이다. 'tension'이란 역학적으로는 '끌어당기는 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물체가 선에 매달려 있다고 하였을 때 그 물체에 주어지는 중력 방향으로의 힘과 동일한 양의 반대 방향 힘이 선에 주어지게 되고 이를 끌어당시는 힘 즉 '장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양의 또 다른 장력이 반대 방향으로 선에 가해지게 된다. 힘의 평형이 이루어지면서 선과 물체, 그리고 선을 지탱하는 지지물은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선에 가해지는 장력이 선의 강도를 초과하게 되면 선은 파괴된다(혹은 끊어진다). 그렇게 때문에 전술한 힘의 평형 상태는 얼핏 안정한 상태로 보이지만 돌발의 상태를 예고하는 '위기의 상태'이며 이는 'tension'의 또 다른 의미인 '긴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신체와 의식의 평상시 리듬과 속도. 그리고 일상적 소리의 질감에 위배되는 音이 외부에서 청각을 통해 인지될 경우 몸은 그 평상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반작용의 하나로 불쾌함과 공포감 등 그다지 자신이 원하지 않는 현상을 나타낼 것이다. 이를 총칭하여 청자와 음악 사이의 '외적 긴장성'이라고 하자. 이와 함께 음악 내적으로도 그 속도와 높이, 그리고 그들의 변화주기를 계속 유지하려 하는 긴장이 존재할 것이며 이를 '내적 긴장성'이라고 하자. 내적 긴장성과 외적 긴장성이 모두 강할 경우 청자는 음악에 몰입하기 보다는 자신과 음악을 객관화하려는 경향을 나타낼 것이다.
하지만 내적 긴장성에 외적 긴장성(혹은 거부감)을 완화시킬만한 어떠한 유혹적 요소가 개재되어 있을 경우 청자의 의식은 그 내적 긴장성이 가지는 어떠한 방향(아마도 그것은 그 음악이 제시하는 세계로 향한 것일 것이다)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이때 몰입의 속도와 깊이는 내적 긴장성의 강도와 내구성에 의지한다. 전자와 같이 외적 긴장성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한 음악이 존재하는가 하면(노이즈 음악이나 그룹 너스 위드 운드(Nurse ith Wound)의 음악 같은) 유혹적 요소를 끊임없이 제공하여 몰입을 촉진시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예스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럼 예스 음악이 가지는 강도 높은 긴장성과 유혹의 요소는 무엇인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필자의 과제이기도 하고 예스의 음악을 좀 더 깊게 연구해 보길 원하는 독자들의 과제이기도(아무튼 이상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일반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중반기 예스 음악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일 것이다. 세 번째 앨범을 발표한 후 존 앤더슨은 그가 구상하는 음악과 기존 음악의 확장을 달성하기에는 키보드 파트가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존은 멜로트론이나 새로운 무그 신디사이저와 같은 건반 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키스 에머슨 스타일의 키보디스트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토니 케이는 멜로트론 따위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반발한다. 결국 토니 케이는 그룹을 탈퇴하게 되고 데이브 커즌즈(Dave Cousins)의 그룹 스트롭스(Strawbs)에서 활약하고 있던 릭 웨이크먼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각 음악지뿐 아니라 연주인들 사이에서도 릭 웨이크먼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아서 키스 에머슨의 유일한 라이벌(사실이다)로 인식될 정도였다. 당시 릭의 수많은 세션중에서 우리에세 매우 익숙한 것이 하나 있는데 혹시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에 등장하는 유려한 멜로트론 음향을 기억하시는지. 바로 릭의 연주이다.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수하학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테크닉적인 면뿐만 아니라 고전과 현대의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를 맞이한 예스는 이제 최상의 라인업(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릭 웨이크먼, 빌 브루포드, 크리스 스콰이어)을 가지고 심포닉 록의 새장을 열게된다. 그 시작은 197년 1월 4일 통산 네 번째 앨범으로 발표된 "Fragile"이다.
로져 딘의 커버 아트가 예스의 앨범에 최초로 사용된 이 작품은 커버아트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새로운 가상세계로의 항해 시작을 의미한다. 이 가상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추상적인 세계는 아니다. 이 세계는 언 듯 평화로와 보이지만 항상 위기감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이후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무너질듯한 구조물을 보라). 바로 예스 음악의 시각적 표현이다.
이 앨범에는 그들의 70년대 곡중 싱글로서 가장 성공을 거두었으며(미국 차트 13위) 아트록의 고전이 된 'Roundabout'과 'Heart of the sunrise'등 그룹 전체의 폴리포닉적 조화가 중시된 곡들과 이와는 반대로 각 멤버의 개성이 강하게 표출된 소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브람스 교향곡 4번 3악장을 다양한 키보드 음색으로 앙증맞게 편곡한 릭 웨이크먼의 'Cans and Brahams', 성숙하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주는 빌 브루포드의 'Five Percent for Northing', 존 앤더슨의 고음 보컬이 반복되는 'We Have Heaven'(아마도 존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중 하나는 'Heaven'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내세의 천국이 아니라 현세에 이루어 질수 있는 천국, 예를 들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과도 연관되어 있는 이러한 세계관은 참으로 소박(native)하지만 어쩌면 예스가 가지고 있는 '유혹적 요소'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의 곡으로 맺고 끊음이 명확한 베이스 연주를 들을 수 있는 'The Fish', 그리고 스티브 하우의 'Mood for a Day', 천동과 같은 드럼과 베이tm 연주로 시작되는 'Heart of the Sunrise'는 예스가 그들의 음악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가를 보여준다. 빠른 주기로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의 멜로디, 정확하나 힘에 넘치고 짧은 간격을 가지지만 그 간격의 변화가 눈부신 드러밍, 그리고 이들을 감싸는 멜로트론과 무그 음햑. 여기에 고음의 보컬은 이러한 각 파트의 연주를 더욱 더 공간적으로 상승시키려 하고 이에 맞서는 각 파트의 연주는 더욱 가속된 속도와 파워로 예상 불측하게 하늘로 치솟는 보컬을 잡아 당긴다. 존의 보컬은 하늘과 신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목소리이며 드러밍과 베이스는 원시적 땅의 소리이다.
그리고 키보드는 예언자의 목소리이다. 땅의 음악에 하늘을 향한 인간의 목소리가 첨가된 음악. 바로 '예스 사운드'의 완성이다. 더불어 '예스 사운드'를 더욱더 '예스적'으로 '보이고 들리게'하는 것은 로져 딘의 커버아트 이다. 로져 딘과 예스가 다루는 세계는 이 세상에 속한 그러한 세계가 아니다.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 속의 여러 형상들과 그것들의 움직임. 그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갑작스러우며 역동적이다. 하지만 형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스의 음악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작품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히려 사이비 진실만이 판치는 현실에 접근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의 음악은 순수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단순하고 여기에 없는. 우리가 속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멤버를 유지하면서 제작된 5번째 앨범 "Close To The Edge"는 분명 음악적인 완성도나 실험적인 측면. 그리고 연주면에서 예스의 최고작임에 분명하다. 한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조곡 'Close to the Edge'에서 보여주는 폴리포닉의 극치는 전 아트록을 통틀어 최고라고 할만하다. 급격한 코드변화와 중첩되는 소리들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치의 허술함도 눈에 띄지 않는 완성도는 각 멤버들의 연주 기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에디 오퍼드의 탁월한 제작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심포닉 록 최고의 프로듀서인 그가 제작한 작품중 영국 그룹 Pallas의 "The Sentinel"이 얼마전 국내에도  수입되었으니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이다).
이 곡이 전 앨범에 수록된 'Heart of the Sunrise'와 흡사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곡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좀 더 음공간적으로 확대된 느낌과 클래식적인 감상이 들게 하는 것은 릭 웨이크먼의 키보드 파트가 이전에 비해 훨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은 상승과 하강의 미학적 완성(이러한 의미에서 예스의 음악은 수직 구조를 중시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화려한 색채감과 역동성으로 충만한 심포닉 록 최대의 걸작인 본작으로 예스 음악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목소리와 혼돈
예스의 최고작 "Close to the Edge"가 발표된 즈음 그들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바로 존 앤더슨과 빌 브루포드의 음악적 대립니다. 빌에게 가장 불만이었던 것은 예스가 이미 확립된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미 기존의 방법론으로는 예스 음악이 정점에 달하였기 때문에 좀 더 진보적인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빌은 자신이 리더가 되는 것을 제안했으나 이에 존은 강하게 반바하였다. 빌이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론에 재즈적인 측면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고 탐구정신이 충만한 이 천재 드러머에게 있어 예스란 유기체는 상업적인 성공과 망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결국 빌은 로버트 프립의 새로운 킹 크림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예스를 탈퇴한다. 그의 나이 겨우 22세때의 일이다. 갑작스런 빌의 탈퇴로 멤버들은 모두 당황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후 6개월 동안의 투어가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드러머를 찾기 위해 성급히 오디션을 행하였고 1000 여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결국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존 레논의 플래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등과 함께 활동하였던 팝음악의 세션맨 앨런 화이트(Alan White)였다. 여기에는 존 앤더슨과 크리스 스콰이어의 강력한 추천(크리스가 추구하는 음악적 기초는 실험적인 것이 아닌 순수 록큰롤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이해가 될것이다)이 주효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그것은 예스로서는 커다란 실수였다.  
예스 음악에의 드럼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폴리포닉의 복잡한 곡 구조 속에서 각 파타의 흩어지기 쉬운 소리들을 정확히 구획하여 질서를 부여하고 더불어 그 역동감과 다이나미즘을 살리기 위함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대부분 록 음악의 리듬파트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예스에 있어서는 약간 의미가 다르다.
예스 음악과 같이 빠른 속도와 급격한 변화를 가지고 전개되는 각 파트의 연주를 장황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타 파트를 지우너하는 것이 아닌 독립된 연주로서 되도록 무표정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분할하여 이들의 무질서한 진행속도를 제어 할 수 있는 드럼 연주가 필요하다(필자의 견해로는 오직 빌 브루포드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예스 음악에서 드럼 파트에 일반적 팝 음악과 같은 지원의 역할이 강조되거나 느낌과 같은 감정적인 측면이 개입되면 타 파트의 소리는 단숨에 연결고리가 끊어져 흩어지고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빌의 드러밍은 예스 음악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으며 그를 완벽하게 대체할 연주인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지만 앨런 화이트와 같이 팝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연주인을 가입 시킨 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아무튼 예스는 앨런과 함께 투어를 행하고 여기에서 녹음된 곡들과 함께 세장의 라이브 앨범 "Yes Songs"에 수록되게 된다.
앨런 화이트는 최선을 다하여 연주하였고 그 결과 큰 무리는 느낄수 없었지만(하지만 역시 무리였다) 이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몇몇 곡들이 앨런의 드럼으로 인해 이전의 스튜디오 곡들보다 훨씬 떨어지는 완성도를 보려주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 뿐이 아닐 것이다(특히 'Close to the Edge'를 비교해 보시길 바란다. 전술한 필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라이브 앨범은 사실 새 앨범 발표까지의 긴 공백(약 1년 4개월)을 매꾸기 위한 아틀란틱사의 상업적 기획이라는 인상이 짙지만 아무튼 예스의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필자의 관점으로는 발표되지 않았어도 될 앨범이었다).
투어 도중 존 앤더슨은 새로운 앨범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였고 "Close to the Edge"와 같은 대곡 중심의 곡들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좀 더 대곡 위주의 앨범을 계획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1974년 1월 일곱 번째 앨범 "Tales From Tophographic Oceans"가 발표된다.
이 앨범의 한면을 차지하는 4곡의 대곡으로 구성된 컨셉트 형싱의 작품으로 가사와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존 앤더슨에 의한 것이었다. 이 작품의 컨셉트를 이루는 주제는 힌두교 성전에서 따왔으며 '한 요기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Yogy)'이라는 책에서 묘사의 힌트를 얻어 왔다고 전해진다.
이 앨범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 새로운 시도이지만 음악적 측면에서는 완전한 실패작으로 당시 예스가 당면한 문제점이 모두 드러나 있다. 존의 과잉의욕으로 인해 곡 자체으 l길이는 늘어났으나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속도감과 긴장감은 상실되었으며 그의 독자적 결정에 따른 구상이라 각 멤버들의 의욕적인 연주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릭 웨이크먼의 키보드 연주는 매우 축소되어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에너지고 느낄 수 없는 소극적 연주로 일관하고 있다(그는 그가 추구하던 클래시컬하고 웅장한 음악과 거리가 먼 이 작품에 대해 매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엘럼의 드럼은 이 '곤란한'작품을 더욱 장황하게 만들어 보리고 있다(1면과 2면의 곡은 최악이다). 하지만 한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The Ancient'와 'Ritual'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이다. 특히 'The Ancient'에서 우리는 과거 예스 음악과는 상반되는 어떤 '역동적 혼돈'이나 '주술적인 것'을 느낄수 있다.
필자의 私見으로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발전시키며 완성도 측면에서 좀 더 힘썼다면 새로운 걸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존 앤더슨의 능력은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예스는 이 시기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다. 바로 릭 웨이크먼의 탈퇴 선언이다. 당시 "Tales......."에 대한 그의 불만은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그의 솔로 활동이 예상외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그는 이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예스를 탈퇴한다. 이 당시 발표된 그의 솔로 작품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Journey to the Centre of the Earth"이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그의 솔로 활동중 가장 큰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된다.  갑작스럽게 탈퇴한 릭의 후임으로 반젤리스(Vangelis)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룹 레퓨지(Refuree)의 유일한 앨범에서 클래식과 재즈가 결합된 탁월한 건반 연주를 들려준 스위스 출신의 키보디스트 패트릭 모라즈(Patrick Moraz)로 결정된다. 패트릭을 기용하게 된 것은 예스에게 있어서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한에서 그것은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존 앤더슨이 이때 구상하고 있던 음악에 있어서 오히려 릭 웨이크먼 보다 페트릭 모라즈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게 해주는 예스의 새 앨범 "Ralayer"가 1974년 12월 발표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테마로 한 대곡 'Gate of Delirium'에서 들려주는 긴박감 넘치는 키보드 연주와 "Tales...."에서 시도된바 있는 원시적 리듬이 복합되어 이전의 작품에서는 전혀 느낄수 없었던 새로궁 패턴의 음악을 제시한다(이 작품에서만은 앨런의 드러밍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특히 패트릭이 구사하는 재즈 스타일의 건반 연주는 릭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이 앨범에 무질서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특히 로져 딘의 커버아트에서 보여주는 구도와 질감은 이 앨범이 들려주는 공격적이고 불한안 소리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이 이전에 추구하던 수직 구조의 양식미에서 벗어나 천상의 음악이 아닌 땅의 음악(하지만 여기서의 땅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 세계의 땅이다)으로 한걸음 더 내딛은 이 작품은 아마도 예스의 앨범중 가장 이색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가상에서 현실로
앨범 발표후 이듬해인 1975년 4월에서 7월까지의 투어를 마친 예스는 당분간 휴지기를 거치게 되는데 이 당시는 각 멤버의 솔로 활동이 가장 활발할 때였다. 스티브 하우가 동년 10월 "Beginnings"를 크리스 스콰이어가 "Fish Out of Water"(당시 크리스의 별명은 'Fish'였으며 이는 그가 목욕탕에만 들어가면 한참동안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2월에는 앨런 화이트가 "Ramshackled"를, 그리고 3월에는 패트릭이 "The Story of I"를 발표하였다. 존 앤더슨도 이에 맞서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를 기초로한 "Olias of Sunhillow"를 6월에 발표하여 타 멤버의 솔로 작품에 비해 가장 예스 음악에 가까운 것이라는 평가를 받게된다.
활동을 재개한 예스는 76년 5월 말부터 8월까지 투어를 행하였고 패트릭은 릭 이상으로 잘 해내었지만(이 당시의 연주는 그들의 두 번째 라이브 앨범인 "Yes Shows"에서 들을수 있다) 그는 솔로활동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동년 11월 그룹에서 탈퇴한다.
그 무렵 존은 릭 웨이크먼을 다시 만나고 이 둘은 이후 각자가 추구하려는 음악적 방향성이 일치함을 깨닫게 되어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그동안 서로가 다른 길을 갔다가 결국 같은 자리에 돌아온 것이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릭보다도 존이 훨씬 더 멀고 다른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결국 릭은 예스로 복귀하게 된다. 그들은 즉시 새 앨범의 녹음에 착수하고 1977년 7월 "Going For The One"을 발표한다. 예스의 작품중 가장 정연한 앨범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지난 두 작품에서 보여준 실험지향에서 180도 선회하여 과거의 양식미지향으로 돌아선 작품으로 완성도 측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그들이 이리 구축해 놓은 방법론에 기초하면서 어느정도 대중성을 가미한 곡들로 가득찬 이 앨범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특히 "Tales....." 이전 작품에서 들려주었던 스티브와 릭의 화려한 연주가 재생되고 있는 'Parallels'와 스티브의 어쿠스틱 및 일렉트릭 기타가 조용한 음공간을 메우는 아름다운 발라드 'Turn of the Century'는 예스의 곡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들이 될 것이다.
존이 꿈꾸는 무공해 자연의 감상(일명 소녀적 취향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곡들과 이전과 같은 극도의 긴장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매우 원숙해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특히 스티브의 기타) 높고 빠른 속도의 소리들이 아름다운 멜로디에 실려 그들의 수직적 음공간을 환하게 비추는 이 앨범은 팬들에게는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매우 높은 점수를 받게된다 (당시 이 앨범은 멜로디 메이커,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 기타 플레이어 같은 메이저 음악지의 상을 휩쓸었다).
이와 더불어 투어시 연주장들의 표는 연속 매진을 기록하는 등 예스는 과거의 명성을 재빨리 되찾고 있는 듯 보였다. 여러면에서 이전의 두 자품들과 구분되는 작품이지만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커버아트의 제작자가 로져 딘에서 또 다른 탁월한 아티스트 집단인 히프그노시스(Hipgnosis)로 바뀌었다는 점과 프로듀서인 에디 오퍼드의 이름이 크레딧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실은 예스 음악의 변화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예스의 음악은 가상세계를 맴돌지 않을 것이며 그 가상세계 여행을 가능케 한 장대한 심포닉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1978년 새롭게 다시 태어난 예스는 동일한 라인업으로 새로운 앨범은 제작한다. 제목은 "Tormato". 1978년 9월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이전 작품 "Going For the One"에 환호하였던 예스의 골수 팬들에게는 큰 실망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고래를 보호하자는 'Don't Kill the Whale', SF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Arrving UFO' 등 전부 8분을 넘지 않는 곡들로 구성된 이 앨범은 전작에서 들려준 새로운 예스로의 가능성 보다는 대중적인 측면에 치중한 작품으로 초기 예스를 선호하는 매니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곡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전과 같은 장대한 가상의 세계에서 돌아와 동심과 소박한 사랑을 노래하는 존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 보다도 안정을 찾고 있으며 릭이 연주하는 폴리무그(PolyMoog)소리는 단순하지만 매우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 앨범 발표 직후 예스는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서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갖는등 활동을 개시하지만 이때 그룹내에는 심각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존과 릭, 그리고 나머지 세 멤버 사이에 음악적인 견해차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원래 79년 9월에 예전된 새 앨범의 녹음은 결국 무산되고 결국 크리스와 나머지 두 멤버는 릭과 존을 제외시킨 상태에서 트레버 혼(Trevor Horn)과 제오프 다운스(Geoff Downes)를 기용하여 새 앨범을 녹음한다. 반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존과 릭은 사실상 그룹에서 축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새로운 예스는 앨범 "Drama"를 발표하고 존 앤더슨은 반젤리스와 공동작업을 시작한다. 사실상 예스의 붕괴인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도 예스는 '예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른 여러 앨범을 발표했지만 이제 여기서 예스 특집은 막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지면이 모자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필자에게 이 이후의 예스는 한번도 예스로 기억된 것이 없다. 이후의 작품도 객관적으로 훌륭한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예스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 뿐이다.
예스는 이미 70년대에 죽었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70년대 심포닉 아트록의 광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예스의 죽음은 이렇게 허무한 것이었다.

(글 : 전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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