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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48
ARTIST: | Equipe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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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Italy |
GENRE: | Italian Symphonic Prog, Pop Rock |
ALBUM: | Equipe 84(1965) - Vedette Io Ho In Mente Te(1966) - Ricordi Stereoequipe(1968) - Ricordi ID(1970) - Ricordi Casa Mia(1971) - Ricordi Dr, Jekyll & Mr. Hyde(1973) - Ariston Sacrificio(1974) - Ariston Una Amore Vale L'altro(1989) - Rose |
MEMBER: | Maurizio Vandelli (1963-1978) : vocals, guitar Victor Sogliani (1963-1978): bass, vocals Alfio Cantarella (1963-1970, 1973-1976): drums, vocals Franco Ceccarelli (1963-1970): guitar, vocals Franz Di Cioccio (1970-1971): drums Paolo Siani (1976-1977): drums Dario Baldan Bembo (1970-1972): keyboards Thomas Gagliardone (1972-1978): keyboards |
원본출처: |
E quipe 84(에퀴뻬 오탄따 꽈뜨로)는 이태리의 Rock역사에 거대한 획을 긋는 수퍼그룹임에 틀림없다. Pop그룹으로서 다섯 손가락에 손꼽는 그룹이며 이태리의 Beatles로 불리워져 왔었던 그룹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Art Rock계열에서 수퍼그룹으로 인식 되어질수 있는가?"라는 의구심 때문에 본란 "Super Group 30"의 그룹 선정에 있어서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래전 Equipe 84의 음악을 처음 점했을 때필자의 느낌은 흔히 들을 수 있는Canzone(깐쏘네) 그 자체였었다. 이러한 첫인상은 고정관념 즉, Equipe 84 =Canzone + Pop이라는 공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New Trolls나 I Dik Dik등과 마찬가지로1970년대 이전의 음악만을 가지고 그들을 판단 한다면 이 지면 위에서의 그들 소개는 한마디로 지면낭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 특히, 'Sacrificio"를 듣는 순간 나의 고정관념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리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이태리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강하게 밀어 닥쳤던 Progressive Rock의 유행을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받아들였던 것이다. 귀여운 공룡(Tyranosaurus Rex)들이 득실거리는 커버아트 자체부터 그들은 무엇인가 변화되었을 암시해 준다. Beat가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 1966년,이태리의 젊은이들은 유행처럼 긴 머리를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들은 젊은이들이 거의 범죄자의 모습들처럼변하고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시 기성세대들이 "불량소년"이라고 불렀던 젊은이들이었다. "우리들의 긴 머리 때문에 우리가 기차역을 빠져나온 후 열차의 충돌이 있었지!"라고 Shel Shapiro가 당시 장발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농담식으로 풍자한다. Shel Shapiro는 'Un'Anima Pura(순수한 영혼)'와 'Che Colpa Abbiamo Noi(우리는 어떤 잘못을 했는가)'라는 곡을 발표했던 Rokes의 前리더였다. 이때부터 Equlpe 84의 멤버들도 역시 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고 60일동안 밤과 낮, 끊임없이 계속 연주하기 위하여 Modena의 한 지하실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당시, 이태리의 상황은 미국, 영국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처럼 살 것을 강요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를 원했고 아버지들의 스타일이며 전통이었던 구두, 정장의 양복등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존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받아들여졌고, 기성세대들과 청년세대들과의 갈등을 표면화 시켰다.소위 Free Style이라고 불리줬던 이러한 유행들을 가장 빨리 받아드린 층은 역시 젊은 음악인들 층이었다. 그들은 긴머리와 거지와 같은 옷차림 새와 더불어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자신들의 독특한 음악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Equipe 84의 리더인 Maurizio Vandelli는 당시 상황(결성 당시)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Maurizio : "우리가 출발할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외국에서 들여온 음악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였다. 지하실이나 차고와 같은 닫혀진 공간에서 넘치는 의욕과 많은 정열을 갖고 미, 영국으로부터 들어온 음악들을 배워나가면서 우리들만의 독창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우리가 결성되기 1년전인 1961년 Celentano가 Sanremo가요제에서 '24 MilaBaci'라는 곡으로 일대 쇼크를 일으킨 것이 이태리 젊은 뮤지션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넣어 주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다음에 Beatles가 등장했다. 물론, 우리 Equipe 84의 4명 멤버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된 이후 Beatles가 이태리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Emilia Romagna(여기서는 보다 더 전통적인 무도곡이 록큰롤의 보다 더 돌발적인 곡들로 교차되는 지역이다)에서 출발하여Gian Pieretti 덕분에 Equipe 84라고 제목이 붙은 앨범 직후에 우리들의 첫번째싱글을 취입하게 되었다.""우리들의 두개의 기타와 드럼, 베이스의 구성은 전혀 Beatles를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 Equipe 84는 우리가 Beatles를 말하기 전에 그렇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 멤버 구성은 체계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나와 Alfio, Victor 그리고 Franco 이렇게 네명의 멤버들은 누구도 나무랄때가 없는 팀웍을 지니고 있었다. 베이스를 맡고있는 Victor Sogliani 이전에 Remano Morandi라는 멤버가 있었는데 Romano는 'Ora Puoi Tomare(이제 당신은 돌아을 수 있습니다)'와 'Quel Che Ti Ho Dato(내가 너에게 주었던 것)'이라는 성공작을 만드는데 함께 참여했던 인물이었다."1962년(그룹의 결성된 해)부터 1964년까지 Equipe 84는 Rolling Stones의 곡 'Tell Me'를 번안하여 청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태리어 제목은 'Quel CheTi Ho Dato'였다. 이 시기에 그들은 전성기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Pero Come Sono Brutti, (그러나 얼마나 추한가)' 라는 곡을 발표했다. "장신들을 추하게 만드는데 어떻게 성공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Alfio의 답변을 여기에 옮겨본다;
Alfio :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은 감각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들은 아름답게 옷을 입었다. 복장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독창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그들은 이 곡으로 인하여 "추한 소년들"이라는 결코 좋지 않은 예명을 얻었지만, 그 반면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에 보도되었던 "Una Equipe d'assalto"라는 기사는 그들의 초창기 역사를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Una Equipe d'assalto : 공격의Equipe" : "Uaurizio Vendelli, Franco Ceccarelli, Victor Sogliani와 AlfioCantarella등은 추한 모습이다. 모데나 출신의 이들 4명은 모두 추한 모습이다. 단, Alfio는 시칠리아 출신이다. 인기를 모으고 있는 Equipe의 멤버들은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거의 형제들처럼 지내는 것 같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우정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들은 항상 목가적인(전원적인) 4중주로써 남아있다. 칼 대신에 기타를 가지고 무장한 4명의 병사들은 이태리의 대중음악을 대변한다. 그들은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는 문제들을 들고 나왔다. 그문제들은 고쳐야 할 악기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있고, 망가진 Pullmino에 대한 이야기일 순도 있다.""그들은 서로 지어준 별명을 통해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Maurizio Vandelli를 여윈 얼굴과 휘둥그래지는 눈때문에 Principe Amleto라고 불렀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장대이지만 미묘하고 은밀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Victor Sogliani는 Frankenstein이란 별명이 부쳐지게 되었다. 그는 때때로 Nevrotik이라고도 불리웠지만, 마음이 워낙 여리기 때문에 어둠을 두려워한다. Alfio Cantarella는 Piccoletto라는 정반대의 별명을 부여 받았고 Franco Ceccarelli는그의 이상한 손, 발 때문에 Padicello라고 불리웠다. "Equipe 84에 있어서 1966년은 의미있는 한해였다. Equipe 84는 그 유명한 Cantagiro에서 'Io ho in Monte Te' 라는 곡으로 우승했다. 이 노래는 We Five와 Barry McGuire가 세계를 정복했던"You Were On My Mind"의 이태리어 번안곡이었다. 1966년도는 이태리 Beat계의 전성기였고 수많은 그룹들이 등장했던 한해였는데 I Corvi(까마귀들)는 베이스기타의 Neck위에 항상 앵무새를 앉혀 놓고 연주에 임하는 이색적인Beat그룹이었고, 1 Giganti, I Nomadi, I Pooh등이 바로 이러한 beat의 전성기에 탄생되었다. 외부지역에서도 이태리의 Beat붐과 함께 많은 그룹들이 이주해 왔는데 The Motowns, Troggs, The Renegades, The Sorrows, I Rokes 등이 대표적인 그룹들이었다. 그들은 Equipe 84를 압도하는 것 같았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Victor : "우리들의 노래는 자유분방한 리듬을 중요시했었다. 저녁 공연, 레코드녹음, 인터뷰, TV 행사, 사진찰영... 등등 우리는 지금까지 휴식없이 일해왔다. 반복되는 피곤한 일정때문에 결국 무기력함에 빠져들기까지 했다. 우리는 모두 방황하기 시작했고 잠시 결별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후 충분한 휴식이 흐른뒤 우리들은 다시 모이게 되었고, 더이상 밤 공연을 하지 않고오직 앨범제작에만 몰두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휴식은 결코 허용될 수가 없었다."그후 Equipe 84는 Italian Rock계에 남을 명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예를들어 'Bang Bang', 'Nel Cuore', 'Nell' Anima', 'Auschwitz'등에 이어 Beat계의 최후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Battisti, Mogol이 작곡, 작사한 '29 Settembre'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Equipe 84의Beat계열의 곡들에 대하여 비평가들은"Beatles의 'Sgt. Peppers LonelyHearts Club Band"와 버금가는 작품이다"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문화적인배경에 있어서 저명한 평론가 NicolaSisto는 Beat계열에 대해 논한 그의 저서에서 Beatles의 "Sgt. Pepper..."와Equipe 84의 '29 Septembre'를 동급의작품으로 평가한 바있다. 이러한 평가에도불구하고 신문지상에는 "이태리에서 그룹들이 인기를 잃고 있다"라는 식의 걱정과불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따라서인기를 얻고 있었던 밴드들은 마땅히 받아야될 보수를 받지 못하고 공연을 하게 되었다. 여러 그룹들이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고수한 반면, 다른 그룹들은 머리를 깎고 옷을 고쳐 입고그리고 그룹명과 연주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근근히 어려운 생활을 이어 나갔다.이러한 상황속에서 Modena 출신의Equipe 84 네명의 멤버들은 부업을 해야만 했었고 그들은 부업으로 옷가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Milano의 중심가에개장했던 Boutique에는 "잡화 상점 - 향수-술"이라는 간판이 붙었으나 진열장에는 향수병, 위스키병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회화적인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상한 옷, 넥타이, 신발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상점의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매우 독특하고 광적인 것들이 강조되고 있었다. 이 상점을 무심코 찾았던 일반적인 방문객은 누구나 악몽을 경험하게 된다. '29 Settembre'의 성공이후 Equipe84는 거의 해산상태에 이르게 된다. 당시 'Pomeriggio Ore Sei', 'Nel Ristorantedi Alice'를 비롯,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Un Angelo Blu'와 'Tutta Mia laCitta'등 인기 정상을 향하여 가고 있었던 곡들이 발표되었지만 그들의 분열의 골은점점 깊어가기만 했다. 결국, 그들은 일시 그룹을 해산시킨다. 당시, 리더인 Maurizio Vandelli와 그의 집을 찾은 한 음악기자와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다.
기 자 : 나는 그가 집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아무튼 무조건 그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그의 집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그 인기척의 주인공은 바로 Maurizio Vandelli였다. 그는 직접 문을 열어 그가 일하고 있는 녹음실로 안내했다."변했구나!"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나아졌어!" 나는 보다 더 동그랗고 편안한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나를 환영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24Track녹음기가 있는 그의 거대한 녹음실을, 주의 깊게 조사하고 살펴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태리에 이와 같은 스튜디오는 오직 3개만이 존재할 뿐인데"라고 내가 감탄을 하며 살펴본 그 스튜디오에는 Console이 그대로 켜져 있었다. 그가 작업을 하고 있었음이 틀림 없다.
기자 :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죠?" (그는 나의 첫 번째 질문을 회피했다)기자: "누구의 것을 제작해 주고 있습니까?"
M.V. : "내가 항상 관심있는 사람들의 작업에 종사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겠죠...? 누군가를 찾아야 되는데..."(이번에도 역시 Maurizio는 능숙하게 나의 질문을 피했다)
기자 : "당신은 새로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군요!" (이번에는 아주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M.V. :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행스럽게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비밀로 접어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여기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 자 : "당신은 아직도 그룹의 전 동료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지요?”
M.V. : "우리들은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현 시점에 있어서 우리들의 관심사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 자 : "그렇다면 당신들이 그룹을 다시 결합한다는 것은 뜬 소문입니까?"
M.V. : "결코 사실이 아니지요"기 자: "그러나 당신들이 만약 다시 모이게 된다면 어떤 음악방향을 추구할 예정입니까?"
M.V. : "결코 우리는 재결성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29 Settembre'와 같은 곡을 다시 선보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연주만 잘한다면 괜찮은 곡들도 몇곡 만들수 있겠지요"기 자 : "연주만 잘한다면... 이라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당신은 그룹이 연주했었던 방식을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M.V. :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너무나 연주를 못했었습니다..."
기 자 : "그러나 당신들은 매우 충실한 팬을 확보했고 만족스러워 했지 않습니까?"
M.V. : "우리는 거의 아무런 준비없이 그 당시 대부분의 밴드들이 연주했던 것처럼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오락성을 띠고 있었고 청중들은 흥분상태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것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 자 : "Equipe 84가 지금 재결합한다면 어떻게 연주하고 싶습니까?
M.V. : 나는 과거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있습니다. 나는 혁신주의자입니다. 나는 과거중에서 전부는 아니지만 가치있는 일들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음악분야에서 있어서는 다시 만들어진, 편곡되고 번안된 곡들이 가치있게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 의미는 오늘날의 감각을 터득하면서 현대의 기준과 함께 옛것을 변화시킨다는 뜻이지요."
기 자 : "사람들은 당신들 4명 모두가 다소 다른 방향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인상을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M.V. : "나는 더이상 그룹의 일원이 아니며 내 자신의 음악적 환경속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나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과거의 Equipe 84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너무나 변했습니다."
기 자 : "우리는 당신들을 매우 좋아했었죠... 당신들이 무대로 되돌아오는 날을 나를 비롯한 대중들이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M.V. : "당신은 항상 그렇게 향수에 젖어 있나요?"
기 자 : (나는 잠시 충격에 사로 잡혔다.나는 지난 시절, Equipe 84의 팬들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에 대해 결코부인하고 싶지 않다. Equipe는 그러한사랑을 받았던 유일한 팀이었다. Italian Rock 史에 있어서 그들은 너무나도 중요한 그룹이다.)1968-69년사이에 Equipe 84는 Lucio Battisti라는 매우 유능한 제작자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갑작스럽게 그들의 동질성이 얇게 벗겨지기 시작했고 그룹은 해산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Equipe 84의 해산은 이태리 Rock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리더였던 Maurizio Vandelli는 그룹 분열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M.V. : "당신도 알겠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은 계약이나 돈 지불과 같은 다른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이러한 문제들이 Studio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우리 자신들 사이에 개입되기 시작하자 우리들은 결국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그룹의 모임을 꺼려하기 시작했고, 더이상연주하거나 작곡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기 자 : "Nuova(새로운) Equipe가 역시 결성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M.V. : 나와 Victor는 이미 두명의 유능한 뮤지션들과 함께 새로운 그룹의 활동을 개시했었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성공하지 못했죠. 아주 잠깐 연습을 하다가 해체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개막과 함께 이태리의 신진그룹들과 1960년대부터 맥을 이어온 Beat그룹들은 미, 영국에서 불어온 Psychedelic Movements를 흡수, 변형시켜 Italian Progressive Rock을 탄생시킨다. 새롭게 탄생한 Equipe 84도 예외는아니었다. Equipe 84의 재결성과 함께1970년에 발표된 앨범 "ID"는 기존 Equipe 84의 팬들을 깜작 놀라게 만들었다. 환상적인 그림을 담고 있는 앨범커버부터 그들의 음악이 달라졌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데, 아마도 그들의 옛팬들은 이 앨범커버만으로는 Equipe 84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의 내용도 예전의 음악보다 성숙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험성과 음악성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짧은 곡들로 일관되었던 그들의 예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 앨범은 Concept앨범으로써 모든 곡들이 서로 연결되는 일체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Equipe 84는 또다시 공백기를 갖는다. 그동안 가져왔었던 짧은 휴지기와는 달리 앨범 'ID" 이후의 공백기는 무척 길었다. 그 후 ART ROCK계열에서의 그들의 또 하나 걸작이 될 "Sacrificio"가 발표된다. 아래의 내용은 당시의 인터뷰 내용이다. ,
기 자 : "당신들의 최근 앨범 "Sacrificio"는 4년전에 당신들이 잠시 시도하였던 음악방향과 일치하는 것인가요?
M.V. : "아닙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옛 세월들은 이미지나간 것이지요... 우리는 더이상 후회하거나 옛 향수에 젖어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옛 시절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고 하더라도 지난 시절의 향수에 젖어 지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Equipe 84는 이번에새롭게 탄생되었고 어제 느졌던 것을, 아니 지금 현재 느끼고 있는 것들을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음악은 현재의 음악입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과거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음의방향을 바꾸었을 뿐 커다란 음악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모든 것이시대와 함께 변해가듯이 우리도 변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결코 'Nel Ristorantedi Alice'를 들고서 Canzonissima에 참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 자 : "왜 당신들은 Canzonissima에 참가했습니까?"
M.V. : "솔직하게 대답할까요?!... 우리는 단지 TV방송을 위해 참가했을 뿐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TV를 회피하는 일은 바보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광고가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죠. 우리는 청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달할 방법이 TV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선전이 될 것 같은 모든 가능한일들을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후원해주는 일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레코드 회사가 뮤지션들을 후원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만..."
기 자 : "그러나 레코드 계약을 위해 Canzonissima에 가려고 했었던 그룹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Canzonissima참가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M.V. : "우리는 Canzonissima 제작현장에 간 본래의 목적 외에도 사회적인 문제들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이슈는 심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음반으로는 결코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인기라는 굴레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상업적으로 계약된 노래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팔고자 하는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집니다."
기 자 : 그들의 새로운 작품은 현재 좋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지 않다. 청중들은 아직도 그들의 새로운 존재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예전의 음악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는 Equipe 84의 용기와 그들의 새로운 앨범의 제목처럼 "Sacrificio(회생)"을 각오한 그들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Equipe 84는 인기챠트 정상에 자주 올랐던 그룹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들의 인기는 꾸준했다. 별다른 광고 없이도 그들의 새로운 앨범이 발표될 마다 수 천장의 앨범이 팔려나갔다. 거의 모든 그룹들의 음반판매고가 감소했던 반면 그들의 음반 판매고는 항상 이전의 판매고를 윗돌았다. 즉, 팬들은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Equipe 84에 대해서 나쁘게 평하는 것을 꿈꾸어 본 적이 없었다. Equipe 84는 결코 평범한 그룹으로 남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 없는 연구를 통하여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들이 만약 잠시 인기를 누렸던 깜작 스타들이었다면 결코 이 지면을 통하여 소개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Super Group이었으며 음악적 조류를 뒤따르는데 있어서 매우 영리했다. 영국의 비틀즈가 했었던 것처럼 그들은 이태리에서 커다란 음악 업적을 남겼다. 또한, 그들은 음악시장을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음악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다른 그룹들과 Equipe 84는 크게비교가 되고 높게 평가 받는 것이다.
Equipe 84 : "우리들은 이태리 뮤지션들로써 이태리 청중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몇 안되는 행운아들이었다. 이태리 그룹의 공연은 이태리 청중들에게는 단지 잠들게 만드는 수면제였다. 왜냐하면 이태리에서는 가치있는 가사와 음악이 함께 곁들여진 가치있는 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중간계층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단지, 이태리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노래들을 받아들여 왔을 뿐 선택이란 자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는 방황했었다.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들이 밀물처럼 유입되었을때 그들의 음악이 낙후되지 않고 오히려 새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사도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고 우리가 반드시 연구해야될 산물이었다. 그때 이태리의 수많은 노래들은 외국 노래들을 개작하거나 보다 더 낙후되게 단순한 모방을 했을 뿐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청중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뮤지션들과 중간자(매체)들에게 보다 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좋은 음악으로 청중들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태리 음악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Battisti, Guccini, De Andre와 같은 많은 이태리의 훌륭한 작곡가들에게 그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음악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작곡, 작사가들은 과감하게 과거의 고정관념을 포기하고 새롭고 가치있는 곡을 만들 필요가있다. 물론, 초기에는 판매고에 있어서 부진할 것이고 경제적으로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운명인 것이다. 이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 높은 수준의 음악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눈치를 보며 구걸하는 음악은 사라지게 될것이다. 한편, 우리 뮤지션들은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들으러 갈 수 있는 장소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