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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Il Balletto Di Bronz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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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 Italy |
GENRE: | Italian Symphonic Prog |
ALBUM: | Sirio 2222 (1970) YS(Orgrinal Version) (1972) YS(English Version)(1992) |
MEMBER: | Marco Cecioni (guitar, vocals, 1969-70) Michele Cupaiuolo (bass, 1969-70) Lino Ajello (guitar, vocals 1969-73) Giancarlo Stinga (drums, 1969-73) Vito Manzari (bass, 1971-73) Gianni Leone (keyboards, vocals, 1971-73, 199?-?) Romolo Amichi (bass, 199?-?) Ugo Vantini (drums, 199?-?) |
원본출처: |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이태리 한 음악지에 Il Balletto Di Bronzo의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린다.
; [Il Balletto Di Bronzo의 Guitarist인 Lino Ajello의 짧막한 잡담 ; 그룹 Yes의 연주기법과 함께 런던에서 녹음되어질 이태리풍이면서도 영국적인 그들의 새로운 앨범에 대한 예견.. 불운했던 그들의 옛시절을 전달할 수 있는 소박한 음악]
이러한 머릭기사가 당시 Il Ballento Di Bronzo의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새로운 앨범 즉, 그들의 세 번째 앨범은 결코 발매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사가 실린지 정확히 10년이 지난후, 한국의 FM방송매체로부터 Il Ballento Di Bronzo의 두 번째 앨범 YS가 최초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당시 Disk Jockey는 YS를 Il Ballento Di Bronzo의 유일한 앨범이라고 잘못 소개한다. 물론 이 앨범속에서 청취자들에게 가장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수 있는 ‘Epilogo’ 부분만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1991년 ! 국내에 새롭게 불어닥친 European Progressive Rock의 국내 라이센스 발매붐과 함께 이 앨범이 드디어 국내 라이센스로 소개된다. “Printed In Korea”라는 인쇄글자와 더불어 본래의 자켓에 충실한 “성의있는 제작”이 돋보였던…
-우리들의 슬로우건은 소박함-
-Rimani에서 Altro Mondo에 의해 개최되었던 젊은이들의 축제 Jam Session “Controcanzonissima’72”의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Il Balletto Di Bronzo의 기타리스트 Lino Ajello(당시 26세, 나폴리태생)는 무대를 빠져나오면서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대기실의 조그만 방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공연장에서는 한창 Osanna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그룹은 좋아하지 않아… 아니야, 그들은 훌륭해… 그들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 그들은 위안없는, 휴식이 없는 광적이지 못한 음악을 행할뿐이야… 그들은 전형적인 나폴리인들이 행하는 풍부한 제스츄어를 할뿐이지… “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무대에서는 Osanna의 새로운 작품 “Palepoli”가 연주되고 있었다. 그는 2년 반전 Il Balletto Di Bronzo가 출발했을 때의 의욕이 넘치던 시대의 기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우리가 음악을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Rock만을 고집했었지, 그러나 우리들만은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박자에 지쳐있었지… 그래서 우리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7/4, 5/4, 3/4 박자로 비롯되는 부조화스러운 리듬을 선택하게 된거야… 그래서 우리들의 작품 YS(입실론 엣세)가 탄생된 것이지…” 그룹의 리더인 Lino Ajello는 결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적 욕망과 집념속에서 연구와 탐구를 계속했고 그는 무대와 앨범을 통해서 그의 음악적 구상을 결국 실현시키고 만다. 주위의 냉대와 더불어 여러 악조건속에서도 모방속에서 창조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는 힘에 겨운 연구를 거듭했다. 그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적은 바로, 빠지기 쉬운 타락한 메너리즘이었고 그는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Il Ballento Di Bronzo가 몇몇 비평가들의 비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음악적 독창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데뷔작은 비난을 결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진 Hard Rock풍이었고 그들을 영원히 잠재울 만큼의 쓰라린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Underground그룹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Il Balletto Di Bronzo는 1969년 ‘New Calda/Comincio Per Gioco’라는 싱글로서 데뷔하게 된다. 이 싱글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데뷔앨범에 수록되지 않았을 만큼 멤버들간에도 만족감을 주지 못햇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0년, 그들의 초반기 작품들을 모은 데뷔앨범 “Sirio 2222”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후기 Beat풍의 대표적인 산물로서 Sound는 거칠고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후에, Il Balletto Di Bronzo의 명성이 고조되자 이 작품은 레코드수집광들에게 단지 수집품으로서만 인기를 얻었다. 한차례의 음악적 시행착오를 거친 Il Balletto Di Bronzo는 당시 이태리 음악계에 서서히 불어오고 있는 새로운 음악조류 Progressive Rock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들은 두 번째 싱글인 ‘Si Mama/Meditazione’를 발표하게 된다. 실험성과 도전적인 자세를 굽히지 않았던 그들은 1년간이라는 공백기를 통해 보다 실험적이고 고향악적인 경향으로 치닫게 된다.
1971년말과 1972년 초반, Il Balletto Di Bronzo는 자신들의 연주에 과감한 변혁을 시도했다. Lino Ajello가 주도하는 Guitar 위주의 Sound로부터 그룹에 새롭게 참여한 나폴리태생의 재능이 넘치는 다중악기주자 Gianni Leone의 음악적 세계로 진로를 변경한 것이다. Gianni Leone, 그는 Citta Frontale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었고 Classic에서 Rock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에 정통해있었던 훌륭한 뮤지션이었다. Leone의 가입으로 Il Balletto Di Bronzo는 무섭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그들의 대표작이며 Italian Progressive Rock역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 “YS(Ipsilon Esse)”이다.
신비로운 제목 “YS”는 그리이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을 듯하며, 이 앨범은 그녀의 밤생활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내용은 상징적인 만남과 혼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불가능할 것만 같은 해방과 자유를 향해 긴장된 주인공의 매혹적이고, 에로틱한 꿈의 여정을 담고있다. 마치 1900년대초 무성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YS”의 네가지 포즈와 함께 Il Ballento Di Bronzo멤버들의 초창기 모습을 담은 누런 앨범커버는 고풍스럽다 못해 신비감마저 들게 한다.
에로틱하게 또한 무시무시한 YS의 모습들을 삽화로 처리한, 앨범의 원문을 재인용한 4 Page의 책자가 앨범에 부착되어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듣는이로부터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고있다 난해하게 접근해 오는 Jazz와 Classic의 불협화음과 공포스러운 보컬이 이러한 음악에 익숙하지못한 청취자들에게 자칫 거부감과 기피현상을 일으킬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Epilogo’부분은 지루함을 느끼게하는 초 중반부까지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통쾌하고 웅장한 오프닝과 엔딩을 지니고 있다. 레코드 홈의 막바지에서 커다란 감동을 전해주는 Leone의 건반예술과 독특한 코러스가 모든 것을 압도시켜 버린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들의 음악스타일은 단순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위에 상징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하여 불명료하고 모호한 효과금들을 불어넣고 있다. 기교넘치는 연주와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독특하게 구상된 음악적 아이디어들은 그들이 치밀한 악보를 설계해 놓았음을 입증시켜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여러행태의 건반위에서 모자이크식으로 한편의 회화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달콤하고 마치 꿈을 꾸는 듯한 Mellotron에 의해서 그려진 프래스크벽화는 드럼의 싱코페이션(Syncopation)과 하몬드 오르간의 경과음으로 채색되어진다.
Il Balletto Di Bronzo는 두명의 나폴리 청년들 Lino Ajello와 Gianchi Stringa에 의해서 탄생되었지만 유능한 다중음악가 Gianni Leone와 로마출신의 베이스주자 Vito Manzari가 유입되면서 값나가는 청동제품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70년대 초반, Italian Rock의 만화경에 의해 비쳐진 그들의 모습은 강렬한 색채를 띠고 있는 이태리의 빛나는 청동제품으로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는 유일무이의 청동으로 조형된 발레이었다. 혼란과 여러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 마치 피나는 연습으로 발가락과 발목이 부어오른 발레리나의 투혼처럼, 창작열 불타올랐던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음악으로 투영되어 살아숨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장의 앨범과 네장의 싱글을 통해서 명성을 얻었던 Il Ballento Di Bronzo !같은 로마출신의 Banco Del Mutuo Soccorso처럼 매우 개성이 뚜렷했던 그룹 Il Balletto Di Bronzo ! 그들은 영.미국으로부터 부과되어 왔었던, 보이지 않는 음악적 종속관계 – 서약의 관계들을 깨뜨려 버리기 위해 이태리 음악시작에 등장했던 이태리 그룹들의 대표적 상징이기도 하다. 그들의 걸작 “YS”의 독창성은 이미 Rock과 Pop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그룹 Il Balletto Di Bronzo는 1970년대초 많은 이태리 그룹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너무 빨리 해산되었다. 그룹의 조기적인 해산이후 재결합을 위해서 노력했던 유일한 멤버는 Gianni Leone였다. 그는 Il Balletto Di Bronzo의 재결성이 불가능해지자 Leo Nero라는 가명을 내걸고, 커다란 음악적 야심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77년, 그는 EMI-Harvert 레코드사에서 “Vero”라는 데뷔솔로작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그룹활동 당시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무겁고 암울한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담았다. 곧, 그는 이태리 로마로 되돌아와 상업적인 싱글들과 앨범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