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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 Genesis Archive 1967-75

피터 가브리엘 시절 제네시스의 미발표 라이브 곡과 싱글 커트곡을 담은 박스 세트 CD가 발매된다는 소문은 2년전부터 있어 왔다. 제네시스의 팬들은 당연히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우선 피터 가브리엘 시절 공연을 담은 부틀렉 라이브 LP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도 대부분 구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단지 이 브틀렉 LP들을 복각한 CD들이 소량 유통되었지만, 그 음질 상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로 열악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자를 설레게 한 것은 앨범을 통해 발표되지 않은 싱글 커트 곡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Happy The Man'같은 싱글은 영국에서도 150~200파운드 정도로 거래되는 희귀 음반이었다. 아무리 제네시스의 열광적인 팬이라 할지라도 싱글 한 장에 이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다. (’Happy The Man'이 카리스마의 컴파일레이션 앨범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지만 이 또한 이미 입수 곤란 상태였다). 하지만 [Nursery Cryme] 발표 시기 제네시스의 싱글이라니, 궁금증이 커져 잠자리에 누워서도 싱글 커버가 눈 앞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박스 세트 CD 소식을 접했으니 그 반가움이 우죽했겠는가. 하지만 곧 발매되리라 기대했던 CD가 아무리 기다려도 무소식, 외국에서 보내 오는 리스트에서도 몇 번에 걸쳐 “Coming Soon"만을 연발하더니 그쪽에서도 지쳤던지 아예 리스트에서 삭제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부틀렉 라이브 음반이나 몇장구해 들어 보았지만, 부풀대로 부풀어 버린 가슴을 만족 시키기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aucqauc 인터넷 사이트에서 각 CD에 담길 곡 리스트까지 기재하며 이 박스세트 CD발매 예정 소식을 제법 구체적으로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드디어 올해 여름, 대망의 박스 세트 CD는 [Genesis Archive 1967-76]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매 되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지면 본 CD는 그 내용의 충실도나 음질 그리고 자료적 가치에 있어 기대 이상이다. 아마도 아트록 팬들에겐 킹 크림즌의 [Great Deceiver] 이후 가장 좋은 선물이 될 듯 싶다. 총 네장의 CD중 두 장은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의 공연을, 그리고 나머지 두 장에는 각각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발표 이후 행한 1973년 라이브와 싱글 커트 곡들 그리고 [Trespass]발표 이전 제네시스의 초기 미발표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The Lamb...]는 1975년 1월 22일 미국 LA에서의 공연으로 [As Though Emerald City]등의 부틀렉 LP등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사실 이전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제네시스 음악은 무대에서 더욱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역시 라이브 연주가 그들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수록된 연주 역시 스튜디오 곡에선 느낄 수 없었던 현장감으로 가득하다. 특히(개인적으로 좋아해 마지 않는) [The Lamb...]의 3, 4면의 연주는 스튜디오 곡을 훨씬 상회하는 뛰어난 것이었으며 피터 가브리엘의 극적인 보컬은 더욱 짙은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초 중반기 제네시스에 열광했던 분들께는 아마 세 번째 CD가 하이라이트이지 않을까 싶다. 앞 부분은 1973년 10월 20일 영국 런던의 레인보우 씨어터에서의 라이브로 [Selling England By The Pound]에서의 네곡과 [Foxtrot]의 명곡 ‘Suppers Ready'를 담고 있다. 이 음원은 이미 제네시스 매니어들 사이에서 명연으로 익히 알려진 것으로 역시 부틀렉 LP인 [Live 82], [In Concert 73]등에 수록되기도 했다. 물론 음질은 본 CD가 월등히 뛰어나다 이어 데뷔 당시 BBC ’John Peel Session'에서 연주한 ‘Stargnation'이 수록되어 잇으며 나머지 세 곡은 [Nursery Cryme]에서 [Selling England By The Pound]사이에 싱글로 발표된 곡들이다. 우선 ’Twilight Alehouse'는 싱글 ‘I Know What I Like'의 뒷면에 담긴 곡이며, 필자를 그토록 애타게 만들었던 ’Happy The Man'도 당시 버전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 두 곡은 연극적이고 장중했던 당시 제네시스 곡들에 비해 차분하고 파퓰러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그리고 ‘Wather Of The Skies'는 ’Foxtrot'앨범 수록 원곡을 리믹스한 것으로 원곡의 도입부에 담긴 장엄한 멜로트론 연주가 생략되어 있다.

마지막 네 번째 CD에 수록된 것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1967년에서 1970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이다. 이중 일부는 그들의 데뷔 앨범 [From Genesis To Revelation]과 [Trespass]에서 소개된 것들이나 여기에 담긴 것은 모두 당시 데모 버전으로, 앨범에 수록된 것들과는 다른 음원들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중심의 어쿠스틱한 사운드 그리고 피터 가브리엘 특유의 보컬이 묘한 조화를 이룬 독특한 음악을 들려준다. 전성기 제네시스의 작품들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지만 초기 제네시스의 서정성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로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던 진귀한 음원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CD들과 함께 첨부된 부크렛이다. 비록 핑크 플로이드의 박스 세트 CD의 하드 커버 책자 같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제네시스에 대한 기사와 스토리 그리고 계보도가 공연 당시의 사진들과 함께 잘편집되어 실려 있다.

온통 호평 일색인 것 같지만 [Genesis Archive 1967-75]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제네시스의 팬들에겐 대단히 훌륭한 자료이자 연주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197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의 라이브 음원도 조만간 공식 발매되길 소망해 본다.

글:전정기(A.R.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