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락이란 무엇인가?
1. 프로그레시브 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2. 록의 본질은 인간 존재의 전체성 표현
3. 록의 유럽전파와 그 의의
4. 20세기 음악의 정신적 뿌리는 아프리카
5. 프로그레시브 록의 중요한 특징들
6. 프로그레시브 록의 미래, 전망, 운명
[진병관]
서우석교수님이라구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계시는 분인데 엄밀히 얘기하면 매니아로서의 글은 아니구요(클래식을 하시는 분이니까) 관찰자로서의 시각에서 말씀하신 글인데..락의 개념적 설명과 함께..상당히 뚜렷하게 프로그레시브를 기술하셨더군요.
참 제가 이글에 인연이 있는데..뭔가하면..제가 이글을 접한게 고등학교 1학년때(85년경)거든요..그때야 읽고도 이해가 안가는 문체고 내용이었지만 나중에 어떤 책들을 보면서 이분 이름이 나오더군요..
움베르또 에꼬라고 아실런지..
장 자끄 아노의 영화로 소개되었던 `장미의 이름'의 원작자이고 기호학의 대가라구 할 수있는 분인데요..그 에꼬의 글을 서우석씨가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소개를 했더군요..에꼬의 기호학이론 번역서는 물론 한참 이전에 문학과 지성이란 출판사를 통해 소개되었구요..장미의 이름의 경우엔..영화 로 먼저 소개되었지만..에꼬매니아인 이분의 번역으로 소설도 나왔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날..희미하게 기억나는 인물이 동일인물이란것을 알았을때 약간 짜릿하더군요..기호학에 관심 있으신 분은 에꼬의 저서를 읽어보시길..
(말이 넘 길어졌네요..이제 본론으로...!!!)
프로그레시브 락은 크로스오버나 퓨전이나 마찬가지로 명료하게 파악되지 않는 용어이다.음악의 양식을 가리키는 말은 그것이 생성되고 있는 시기에는 항상 그러한 모호성을 지닌다.지금 우리가 분명히 하고있는 소나타,심포니등 의 고전음악형식의 용어도 그것이 발생되어 자라날 때에는 모호한 용어였고 그뜻이 자주 바뀌는 용어였다.
록음악에서 쓰여지는 여러용어에는 형식적으로 차이가 있는 음악을 가리키려 는 의도가 담겨있지만 그보다는 양식적인 차이를 기리키기위한 의도가 더 많 이 담겨있는 듯이 보인다.양식의 차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이해하면 쉽게 파악된다.
우리가 인쇄한 활자에 여러 글씨체가 있는 것을 안다. 지금 독자들이 읽고있 는 이글은 양식적으로 같은 활자들이다.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이 양 식적 공통성은 흔히 보지 못하는 철자가 나타나 그 활자를 새로 만들어야할 때 깨닫게 된다. '쉐'라든가 '묑'과 같은 활자가나타나면 그것이 양식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어졌을 경우 불편없이 지나가지만 양식적으로 다를 경우엔 눈에 띈다.글자는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점이 있다고 느끼는 곳에 양식 의 동일성이 있다.그같은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문제 는 대단히 까다로와진다.
록음악에서도 사정은 같다.프로그레시브 음악은 확실히 서로 다른 음악이지 만 같은 점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그 같은점이 무어냐고 설명하라고 하면 간 단하지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간단히 줄이면 프로그레시브 락의 정의는 간단하지 않으며 지나간 과거의 일 이 아닌,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정의는 더욱 어렵다.우리는 프 러그레시브 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락 음악 일반에 대해 간단히 설명 해야겠다.
빌 헤일리의 '하루종일 록을( Rock around the clock )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록은 세계의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음 악에 묶을 수 있었던 음악의 쟝르로 인정되고 있다.주로 젊은 세대를 묶은 록 음악은 인종과 국가의 차원에서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경우이다.
록이 언어,민족,문화권을 넘어서 전세계인구의 상당부분에 영향을 미쳤던 이유가 무엇인가는 아직 쉽게 해명되고 있지 않다.중동이슬람문화와 인도 그 리고 중국대륙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전세계의 청소년들을 음악의 세계로 몰 고 들어간 록은 여러사람에 의해 여러각도로 검토되었다.록이 중동 인도 중국 에 파급되지 않은 이유는 음악적인 이유라기 보단 정치적 이유라고 할 수 있 다.소련에서는 늦게나마 록이 들려지게 되었고 중국은 앞으로의 추세를 보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록음악이 인도에서 어떤 반응을 받고 있는가의 설명은 록음악의 음악적 본질 을 드러내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온몸으로 받아 들여지는 음악,즉 몸과 마음의 전체로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신체적 존재의 전체성이 동원되어 음악과 만나게 된다는 뜻의 록음악은 이미 인도의 음악과 그 정신적 태도가 같음을 알게 해준다.따라서 많은 록음악 연주자들이 70년대 이후 인도의 음악 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록음악에 대한 판단은 그 음악 자체를 검토해 보는 음악 미학적검토가 가능 하고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20세기 정치의 특성을 포괄하는 관점에서 록음 악을 관찰해 보는 음악사회적 관심이 가능하다.그 다음 서양음악의 긴 역사적 맥락에서 음악사적 조명이 록음악에 주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관점에서 록음악과 그 이후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살펴보기로 한다.
음악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소리를 모아 논리적인 구성체를 만들려는 노력과 그 소리를 우리의 신체속에 흡수해 버리는 신체 반응의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이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말의 뜻을 듣는 것과 그 말의 어투를 듣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둘이 항상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우 리는 잘 알고있다. "참 좋다"는 말도 발음의 억양에 따라서 "나쁘다"는 반어 가 된다.
록음악의 신체 반응으로서의 측정은 록 연주자들의 무대위에서의 몸짓으로 나타난다.무대위에서의 몸짓은 다른 어떤 음악적 판단기준보다 록의 특성을 잘 말해 준다.리틀 리쳐드의 건반곡예,기타를 가지고 무대를 가로지르고 쪼그 렸다 뛰어오르는 장기를 가진 척 베리의 오리걸음,머리가 바닥에 닿을때까지 허리를 젖히는 빌 헤일리의 색소폰다루는 재주,오래전에 잊혀진 가수,처비 첵 커의 스포츠적인 몸짓인 트위스트,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 돌리기가 그런 몸짓들이다.이런 몸짓은 기성세대들에겐 창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몸짓은 표현을 위해서라기보단 젊은이들의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그 상징은 비교적 풍요한 상황에서 성장한 이 들이 '노동과 소비'라는 기계적 몰인정성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실체를 밝히 고 싶어하는 반발이었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은 록이 영국에서 금기로 여겨졌던 것은 이와 같은 록음악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분위기(아우라)때문이었다.록큰롤이란 명칭 자체가 블루스언어에서 따온 말로서 성행위를 완곡하게 표현한 용어였기에 청 교도적인 영국인들에겐 충격적이었다.
록이 영국에서 수용되는 과정에서 두가지 특색이 나타난다.
첫째 특징은 미국의 록을 금지시키고 그 대신 클리프 리쳐드나 토미 스틸같 은 영국출신의 가수들이 발표한 히트곡 풍으로 대처하려는 태도였다.두번째 특징은 빅 밴드 재즈(Big-band jazz)로 젊은이들은 열광으로 몰아넣었다.
록음악이 영국에 들어서게된 것은 이 음악을 유럽 전역으로 파급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여타국가에서의 록에 대한 저항은 소련에 록이 전달되는 과정 에 비하면 논의할만한 것이 못 된다.정치적 방해와 그것을 극복하가 위한 오 랜 시간끝에 록이 동구의 여러나라와 소련에 보급됨에 따라 이 음악에 대한 관심은 보다 진지한 성격을 띄게 되었다.
록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의 서구음악이 음건축술적인 기초위에 있었 던 것에 반해 음지각의 강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록의 음량적 강도는 지금까 지의 어떤 음악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성질의 것이다.증폭기와 고성능 스 피커에 의해 가능해진 압도적인 음량을 일상적인 음향세계에 있었던 모든 경 험을 잊게 해주고 삶에대한 포기할 수 없는 현세적 환상을 풀어버린다.소리는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며 또한 그것이 우리를 복종시킴으로써 음악적 현상세 계를 이루어 나간다.다시말해 음악의 소리는 나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지 못 하게 한다.또한 나는 소리를 나와는 무관심한 외부의 사물로서가 아니라 내게 필요하고 유용한 도구로서 소유한다.
록음악은 소리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소리가 우리를 완전히 압도하는 음악 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다.이 현상은 이미 고전음악의 음반을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의 홍수속에서 감상하는 음반수집가들에게서 나타났던 현상이다.그 것은 스스로를 소리에 복종하도록 유치시키는 행동이다.강한 음량은 음악을 지금까지의 모든 음악과는 다른 바탕위에 올려놓았다.옆사람에게 건네는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소리로 음악을 듣는 경험이 록음악에 이르러 우리에게 처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이 사실은 음악을 음건축적 바탕에서 생명의 원형 적 상태로 옮겨놓았다.
포효와 굉음은 생명의 원초적 상황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쏟아 지는 폭포앞에 서있는 듯한 고성능 스피커의 위력 앞에서 듣는사람은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신체적 동시적 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신체적 반 응의 불가피성과 생명의 원형성으로의 이동은 음악을 추상적 구조로부터 구체 적 구조로 만들었다.심하게 비유하자면 음악을 듣는 것은 아름다운 과일의 그 림을 보는데에서 과일을 먹는일로 바꾸었다.
록음악이 생명의 원천적 상태에 우리를 이르게 했으나 그 성립의 모든 과정 을 자본주의적인 회로속에 포함시키고 말았다.그것은 록음악이 탄생하기 이전 이미 제도로써 굳어진 음반산업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에대한 수정은 불가능했 다.초기의 록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음반산업과의 관련성은 록 음악을 "소외된 형태로 소외된 여가와 관련맺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록음악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전환된 상태에서 대중으로 하여금 그 사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상업적 상황에 도전하는 양상은 록음악 자체가 합리성을 띠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유럽음악의 발달사에서 보듯 음악 의 양식적 변화는 합리적이고 어느정도 예견가능적이다.그러나 록음악은 지각 적 신체적 경험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운동이미지와 같은 성격의 것이고 신 체운동으로서 그 형태가 드러나는 비반성적 음악이다.록음악만큼 우리의 기억 능력을 도외시 하는 음악은 없다.모든 음악은 우리가 보통 현재라고 말하는 시간적 폭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기를 요구한다.즉 음악 역시 우리에 게 일차 기억을 필요로 한다.그러나 모든 음악은 우리에게 이차기억을 요구한 다그것은 30초 전에 들었던 선율과 지금 듣는 선율이 유사하다는 확인을 가능 케해주는 기억력이다.일상적 용어로 말하자면 일차기억은 심리적 현재를 파악 하는 능력이고 이차 기억은 회상해 내는 능력이다.모든 음악은 이 두기능을 발판으로 그 파악과 감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록은 이차기억을 필요로하지 않는다.록음악은 그 음악을 지각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심리적 현재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따라서 록음악의 지각은 본질적으로 신체적이다.그리고 록음악을 신체적인 음악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요인은 증폭기와 스피커이다.과학기술적 요인이 음악의 본질을 변화시킨 것이다.마이크와 스피커가 발명되었을때 아무도 그것을 악기라고 생 각하지 않았다.그러나 마이크와 스피커는 지금까지 어떤악기도 가지지 못했던 성능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와 스피커와 더불어 음반이라는 복제수단은 음악의 양적팽창에 결정적 인 역할을 했다.음반이 과거의 예술에서 양적팽창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변화 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생각은 잘못되었다.
예술의 복제성 앞에 대중은 단순히 양적차원에 머물지 않았다.자본주의적 경 제상황은 작품을 시장지향적으로 성격을 변화시켰고 사용의 가치와 교환의 가 치를 섞어버렸다.이러한 자본주의적 의미의 반 예술성의 색채를 띤 음악에서 나타낼 수 없었던 상황을 예술복제의 위력앞에 선 무력해보이는 대중이 드러 낸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록음악이 전통적인 히트곡의 환상을 깨면서 시작되었다.방송국 디스 크쟈키의 설명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이곡은 너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대량생산품의 위선적 선전은 히트곡이란 명목으로 개인의 환상적이고 허위적 인 실현을 앞에 내세운다.그러나 록은 이내 그 시작에서부터 사용과정에 있어 서의 집단경험을 이끌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개인이 수퍼마킷에가서 자신이 원하는 식품을 하나하나 골라서 가질 수 있는 개인적 생의 꿈을 수많은 군중과 광장에 어울려 같은 술을 마시 고 같은 음식을 먹는 리오 축제에서 경험하는 집단적 생의 꿈으로 대치시킨 것이다.즉 개인적인 환상적 자기실현의 꿈이개별적으로 배달되는 싱글 음반에 서 록음악의 컨셉트 음반(Concept album)으로의 전환은 음악이 국경을 넘어서 고 종족을 만드는 일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전의 음반은 원형으로부터의 복제였으나 이제 음반은 그 자체가 원형이 되 었다.즉 복제가 원형이 된 것은 음악의 사회적 결정 요인인 과학기술적 수준 이 20세기에 이루어 놀은 가장 놀라운 결과이다.기술은 이제 원형과 복사의 관계를 넘어 서서 창작과정의 일부로 포함되었다.록에서 특히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이제 기술은 악기와 같은 음악의 한 요인이 되었다.음악은 리듬과 멜 러디로 되어있다는 말은 이제 음악은 리듬과 멜러디 그리고 증폭기로 짜여져 있다고 말해야 되게 되었다.음반이 작품이 된 것은 마치 판화가 작품인 것과 같은 상황이다.이 개념은 많은 록 아티스트들이 한정판의 음반을 만들고 그 것을 그들의 프로그레시브 록이라 말하는데서 나타난다.그것은 달력에 찍어서 팔린 판화와 진정한 의미의 판화와의 차이에 해당한다.현재의 많은 록 그룹 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온 정성이 담긴 한정판의 프로그레시브를 내놓고 싶어 한다.그러나 록이 대규모의 청중집단과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자본집 중현상을 가져올뿐 아니라 정치적이용이라는 현상을 수반하여 이는 미국에서 보았듯이 반전운동과 관련을 갖고 이탈리아에서처럼 정치성을 띤 록그룹을 갖게 하였다.
서양음악사의 긴 맥락에서 볼 때 록 음악은 어떤 시야에 들어올것인가에 대 한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인 감이 있다.그러나 록이 세속음악으로서 세계적 현 상이고 지속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 현상은 역사적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음악은 항상 이분법에 의해 나누어졌다.희랍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음악의 이분법은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이다.그리고 19세기이후 시민사회가 사 회계층으로서의 중요성을 띠면서 예술음악과 세속음악의 이분법을 낳았다.이 이분법은 잠시 고전음악 안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어 요한 시트라우스로 대변되 는 비엔나 왈츠라는 쟝르를 낳기도 하였다.음악을 둘로 나누는 일은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의 근원적 현상과 관계있다.쉽게 말하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 다.또한 세상에는 흔한 것과 귀한 것이 있으며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정신과 육체가 있다고 생각한다.이 모든 이분법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볼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이다.
음악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 역시 인간의 사고의 근본과 관련이 있다.서양음 악의 발전은 세속음악과 교회음악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이 발전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그러나 그러한 발전이 이루어 진 장소는 바뀌어져 왔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시작된 음악 즉 지중해 동부에서 시작된 음악은 로마로 옮겨져 지중해 서부로 자리를 바꾸었고 뒤이어 파리의 노틀담사원으로 옮겨졌 다.르네상스이전에는 네덜란드지역에서 발전된 음악이 그 이후 르네상스시대 에 이르러 이탈리아로 옮겨왔고 바로크시대가 시작되면서 음악은 북쪽의 독일 로 옮겨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음악은 어느지역에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그 요소로 보아서 음악은 아프리카에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뜻은 장소로서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음악의 정신적 영토로서의 아프리카이 다.세속음악에서의 아프리카음악의 영향은 미국대륙에서 일어나 1950년대 이 후 록음악으로 한가락의 집대성을 이룬다.1970년대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은 아프로-아메리칸적인 세속음악이 유럽각나라의 전통적 예술음악과 만나는 장 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만남은 과거의 음악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과학기술적 매체를 통해 일어나고 있지만 서양음악의 모든시기에서 세속음악이 종교음악에 영향을 주 었고 종교음악이 세속음악에 영향을 준 예외없는 역사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 고 있다.록이 프로그레시브라는 이름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지리적 한계는 남 미,북미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프랑스등의 전 북부유럽과 서독 ,동독,체코,유고,폴랜드,헝가리등의 모든 동구제국과 소련 그리고 터키에까지 이른다.터키에서 전통음악과의 종합으로서의 록의 영향이 끝나는 점에서 볼 때 프로그레시브 락은 서구음악의 역사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희랍의 록 아티스트인 반젤리스가 이슬람 음악과 인도음악의 요소를 도입하고 중국의 음 악까지 흡수하는 예외를 제외하면 이들 음악의 직접적 영향은 터키에서 더이 상 동쪽으로 오지 않는다.물론 그들의 음악적 정신이 인도음악에 크게 뿌리를 두고있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문제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록음악의 박자적 특징인 비트를 벗어 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물론 모든 프로그레시브가 다 비트를 벗어나 있지는 않다.그러나 그 벗어남이 그들의 꿈처럼 음악에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된다.
록음악을 그토록 강하게 지배하고있는 비트는 무엇을 뜻할까? 비트는 다음 의 세가지 관점에서 파악된다.
1.혼돈된 음향세계를 파악하기위한 질서로서의 시간적 단위
2.사회적 통치체계로서의 강력한 질서를 상징하며(다시 말해 민중을 지배하 는 이데올로기적 상징)
3.성적 격렬성의 간접적 상징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이거나 간에 강렬한 음향은 청소년이나 도시근로자가 도시에서 접하는 모든 소음을 무력화시킬만큼 강렬한 것이다.도시의 소음은 역사적으로 20세기 이외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소리이며 공장의 소음역시 인류 가 지상에 태어난 이후 만나본 적이 없는 지속적인 자극이다.
이 혼돈의 음향세계를 압도하며 그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록의 비트 이다.
그러나 규칙적 박자에 대한 복종은 정치적 상징일 수 있다.
시간의 패턴화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비트로서 그 엄격 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체계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도식일 수가 있다.일반 적으로 모든 음악은 시간적 반복패턴을 갖지만 그패턴은 항상 표면에 나타나 야할 필요는 없다.때론 표면에 나오지만 때론 뒤에 숨게되고 그 변형을 겪게 된다.그러나 록음악에서의 비트는 지칠줄 모르는 반복이다.
이 지칠 줄 모르는 반복이 성적흥분을 자아낼 수 있다.록의 강한 비트는 탄 력있는 가죽을 끊임없이 두들기는 느낌을 준다.그리고 그것을 두들기는 물체 역시 돌과 같은 고체가 아니다.
피차가 탄력을 가진 것이며 그 하나는 인간의 신체적 구성의 모든 곳에 퍼져 있는 막이다.
결코 뚫리지 않는 막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바닥에 가 닿고싶은 욕망을 더 욱 부채질 할 뿐이고,음악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타악기는 성적 상 징을 지닌다.이 상징은 록음악으로 하여금 세계의 젊은이를 하나로 통일시켰 다.다른 문화에 속해있는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음악은 오직 성적 상징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의미에서 프로그레시브가 비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세계인식 의 상투성에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고, 정치,사회적 속박에서의 자유를 상징 하는 것으로 성으로부터의 해방 즉 초월적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을 뜻한다.프로그레시브가 인도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또한 70녀대 미국을 휩쓸었던 초월적 명상의 유행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록이 신체반응의 동시성을 강조한데 비해 일 부 프로그레시브가 전원적 성격을 띠고 명상적 성격을 띠는 것은 감상적 음악 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로 해석될 수 있다.프로그레시브는 말하 자면 록의 이단이다.이 이단이 새 양식의 출발이냐 아니면 지난 양식의 마지 막 장면이냐에 대해서는 성급히 말할 수 없다.그것은 정신적 태도의 문제이면 서 동시에 그와 얽힌 사회-음악적 요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음반산업 에 의해 엄격히 감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그레시브는 단순히 그 음악적 양 식변천의 관점에서만 예견될 수 없다.
그러므로 70년대 중반의 프로그레시브의 쇠퇴는 음악의 내적요인에서가 아니 라 레코드업계의 질서문란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한 곡 씩 불러서 이름이 알려진 다음에 앨범이 나오는 음반계의 관행을 깨뜨리고 3 0분의 연주시간을 요하는 프로그레시브 기악음악이 앨범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하나의 상념(Concept) 에 의해 통일되어있다는 사실은 기존음반기업을 심리 적으로 위협했던 것이 사실이다.기업의 이 의구심은 프로그레시브를 의도적으 로 쇠퇴시킬 수 있었다.간단히 말하면 시장지향성 음악이 비시장지향성 음악 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손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술로서의 자율성을 얻기위한 록음악과 기업과의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그 계속을 우리는 유럽각국에 퍼져있는 프로그레시브의 음반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유럽각국의 프로그레시브는 자국의 특징을 드러낸다.이탈리아 음악의 전통을 현악기에 드러내는가 하면 교회 오르간의 소리와 록의 비트를 섞어 수난곡을 만든다.이탈리아의 IL PAESE DEI BALOCCHI와 LATTE E MIELE가 그러한 그룹이 다.
서독의 FAUST의 강력한 전자음향과 동독의 KARAT에서 느낄 수 있는 바하의 냄새는 이들이 독일의 프로그레시브임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스페인의 LOS CANARIOS의 4계는 비발디와 록비트를 무섭게 큰소리로 섞어 놓 았으며 프랑스의 ONIRIS, 그리고 벨기에의 UNIVERS ZERO는 프랑스 음악의 섬 세한 전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에게서 기대해서 안되는 것은 조용한 섬세함이다.프러그 레시브 음악에서 우리가 기대해야할 맨 마지막 사실은 조용함이다.즉 프러그 레시브 그룹들은 음악 안에서의 조용함을 싫어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조용함은 그 음악이 끝난 다음에 찾아온다.음악이 끝난 다음 의 이 세계의 조용함은 다른 어떤 음악이 주지 못하는 '일상으로 돌아옴'의 효과이다.
체코의 COLLEGIUM MUSICUM과 네덜란드의 PITAGORAS는 북구와 동구의 같은 지 역의 나라이지만 서로 다른 차이를 드러낸다.피타고라스가 보여주는 굉음의 연속은 콜레지움 뮤지쿰이나 독일의 KLAUS SCHULZE의 예상을 벗어난 폭음 아 에 자신의 섬세함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그리스의 VANGELIS 이다. 반젤리스의 음악이 얼마나 상상력에 가득 차 있는가라는 사실은 그가 던지는 음향의 압도적인 강도에 일단 익숙해지고 난 다음 발견된다.그 폭음 속에는 터키풍의 리듬이 섬세히 감추어져 있는가 하면 휩쓰는 빗자루의 소리 를 천배나 크게 만든 쏟아지는 소리 뒤에 중국의 음악이 깔려있다.히말라야의 바람과 구름이 사원을 휩싸는 풍경이 그 폭음속에 숨겨있는 것이 그의 음악 이다.나는 반젤리스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상상력이 중국에 까지 미친것을 보 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반젤리스의 음악은 그 쟝르에서의 차이를 제외하고 나면 서양의 모든 다른 음악으로부터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록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킹 크림즌에 나타나는 명상성과 비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다.비트로 부터의 완전한 독립은 록 세 계로 부터의 이탈을 뜻한다.이 이탈이 역사적 가정으로 성립되고 있지 않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음악의 발달 역사를 볼때 20세기의 한 아이러니이다.
어느시대이건 음악의 연주기술적 발달에 족쇄를 건 통치체계는 없었다.음악 의 발달을 꺾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이 인간정신의 자유의 표상이며 실 현이라는 점 외에도 봉건제도의 귀족이나 상류층이 음악을 구체적으로 조종할 만한 음악적 능력(연주능력,독보능력,작곡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음악에서 음악가들의 익살스런 장난기 속에서 완전히 끌어내지 못한 역사가 르네상스 이후 교회작곡가와 교황과의 관계였다.
이점에서 볼 때 20세기는 음악전달의 매개체인 음반산업에 의해 음악가는 그 발표자체 즉 전달을 방해받고 있다.이 전달의 장애는 이전에는 심각하게 나타 나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다.인간의 가장 자유로운 정신적 영역이 충 고받고 조종되고 금지되는 경우를 우리는 20세기의 대중음악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한다.음악에 대한 검열이 19세기 이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대 부분 오페라의 대본,노래의 가사,구체적 연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선율 등에 제 한되어 있었다.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예술검열 이 앞으로 어떤상황에 놓일 것인가에 대한 고찰 일 수 있다.그 검열도 눈에 보이는 금지조치가 아니고 보이지 않게,느껴지지 않게 이루어지는 과정일 것 이다.모든 생산체계와 산업체계 안에 은밀이 숨어 있는 상품생산의 이데올로 기적 측면이 음악에서는 음반산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프로그레시브가 텔레비젼 방송과 무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예술분 야의 앞으로의 운명은 매스미디어의 모든 분야에 의해 운명지워질 것이다.이 에 대한 현재의 도전은 한정부수의 음반을 제작하고 숨어버림으로써 매스컴에 게는 신화적 전설적 존재로 남으려는 유럽의 많은 프로그레시브 아티스트들이 다.